납골당에서 만난 개냥이의 온기

엄마를 보러 간 날, 애교 많은 고양이를 보았다

by 최물결

또 일 년이 지났다. 시간은 지났고, 나이는 한 살 더 먹었다. 달력이 한 장 넘어갔는데 아무 감흥이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 시간이 무뎌진다는데 그게 맞나 싶었다. 뭐 하나 완벽하게 이루었다고 말할 거리는 딱히 없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렀다.


딱히 계획된 일정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그냥 지나가다가 가봐야지 하고 엄마를 보러 갔다. 집에서 삼십 분만 걸어서 가면 불교식 사찰형 납골당이 하나 있다. 아빠는 꽤 자주 방문하던데, 나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미뤘다. 엄마를 마주하고 생각하면 눈물이 터질까 봐 그랬을까. 정확히는 반대다. 오히려 슬픔에 담담해져서인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냥 소풍 온 기분으로 다니다 보니 덤덤했다.


사찰 형태의 납골당은 맘을 편안하게 해준다. 맑은 목탁소리가 귓가에서 소리를 냈다. 사찰은 조용하고 햇빛이 잘 들어 이곳에 올 때만큼은 시계의 분침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다. 소원초 두 자루를 사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뭉근해진 마음이 초와 함께 녹는다.


사진 속 젊은 모습의 엄마와 아빠 나는 햇빛 때문에 인상을 쓰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잠들어 있는 납골당 사이에 엄마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납골당은 장소가 협소해 돈이나 편지, 작은 조화를 넣어두기도 하고 가족들만의 의식처럼 잠시 초를 키며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는 사람도 있고, 영정사진을 보며 허공에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를 이곳에 모신 이유는 조용하고 나긋한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끼는지 몰라도 절이 주는 편안함과 포근함 그리고 산책에 온 듯한 기분 때문이리라.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고양이 몇 마리가 보였다. 사찰 밥을 먹어서 그런 것인지 털의 윤기도 빛깔도 건강 상태도 양호한 것 같은 고양이……. 내가 다가가자 새끼 고양이와 황토색 빛깔에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는 나무 밑으로 숨었다. 역시 사람을 경계하나 보다 싶었는데 유독 피하지 않는 검은색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납골당 앞 잔디에서 느리게 기지개를 키는 고양이 한 마리. 사람을 피할 줄 알았는데 유독 그 고양이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쪽으로 다가왔다. 고양이가 궁둥이 팡팡을 좋아한다고 해서 손으로 쓰다듬다가 엉덩이를 토닥였다. 기분이 좋은지 몸을 쭉 늘어트리는 모습이 꼭 젤리 같다. 그러고는 천천히 아주 자연스럽게 배를 드러냈다. 일광욕을 하듯 햇살이 고양이의 몸 사이를 비추고 있었다. 엉덩이를 쳐주는 게 좋은 것인지 몸을 배배 꼬듯 얼굴을 돌리며 꼬리와 몸을 축 늘어트린다.


2222.jpg 애교많은 고양이라 그대로 줍줍하고 싶었다는


내게 얼굴을 비빈다. 강아지와 다르게 젤리처럼 늘어나는 몸이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키우는 자두보다도 더 애교스러운 고양이가 있다니. 아니 이건 강아지일 거야. 앙증맞은 고양이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놀아줬다. 이럴 줄 알았으면 통조림 캔이나 츄르라도 가져올 걸 다음번에는 꼭 가져와야지 하고 다짐했다. 여기가 절인지 납골당 앞인지 고양이 카페인지 녀석의 애교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음만 새어 나왔다.


나는 엄마를 보러 왔는데 갑자기 고양이를 보고 있었다. 죽음을 마주하러 온 공간에서 이렇게 생기 넘치는 존재를 만나도 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망설임이 없었다. 사람 손길이 익숙한지 머리를 비비고 눈을 가늘게 뜨고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굴었다.


고양이는 내가 만질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몸을 더 뒤집었다. 마치 “여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상한 기분이다. 납골당이라는 장소는 늘 끝과 정리를 떠올리게 하는데 정말 소풍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남은 사람과 떠난 사람 이미 끝난 이야기들, 고요하고 엄숙해야 하는 곳. 화장실에 잠깐 다녀온 사이 엄마 아빠와 어린 딸이 고양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다시 다가가 아무렇지 않은 듯 녀석의 털을 쓰다듬자 어린 여자아이가 말했다.


“엄마 병균 있어서 만지면 안 되는 거야?”


아마도 앞전에 아이가 만져보고 싶었는데 엄마가 병균 이야기를 하며 못 만지게 한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만져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기라도 하듯 녀석을 만졌다. 녀석과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보며 웃어넘기라고. 납골당이 너무 슬퍼하고 경건할 필요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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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내가 방문한 날은 사람이 많았다. 주말이기도 했고, 합동 천도재를 지내는 날이란다. 절을 내려오기 전 고양이와 인사했다. 츄르를 들고 다시 오겠다고. 몸을 뒤집고 배를 내미는 고양이처럼 아무 설명 없이 다가와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조용히 마음을 풀어놓았다. 나는 그날 엄마를 보러 갔다가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생명을 만났다. 녀석의 배와 천천히 흔들던 꼬리가 머리에서 이상하게도 빙글빙글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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