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떠올리지 않으려 밀어낼 수록 더 선명해진다
나는 소리에 매우 예민한 사람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으로 들어오면 바로 좌측에 내 방이 있다. 윙윙, 쿵쿵, 가구 끄는 소리, 아이들 떠드는 소리 등 ……. 남들은 집중해도 못 듣는 소리를 잘 듣는 편이다. 피곤하고, 예민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 많은 날은 소리에 더욱이 취약해진다. 특히 소리를 의식하기 시작하면 머릿속에서는 ‘너 한번 걸려봐라’라는 심정으로 신경이 칼날처럼 곤두서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소리를 피하려 할수록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사건의 출발점은 내 방이었다. 아래층에서 저주파 소리가 들렸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집에 왔는데 분명 방 안은 조용한데 깊은 울림이 둥둥둥 혹은 웅웅웅 소리를 내며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티브이 속 층간 소음은 영상 속에 담기기라도 하지’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얕은 숨을 내뱉었다. 일전에 아이들이 쿵쾅대고 떠드는 소리는 육안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바깥으로 나가 소리가 들리는 지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깊어진 화를 누그러 뜨리기 위해 본능적으로 더 센 소리를 찾았다. 유튜브 검색어에 청소기 소리, 고주파 소리, 저주파 소리 등을 검색했다.
서칭하다 보니 저주파 소리가 스트레스를 유발해 몸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기사를 읽으며 내 화는 더 크게 번졌다. 안 그래도 면역력이 약한데 고작 소리 때문에 내 몸이 망가진다고?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쪽에서 더 큰 소리를 틀어봤자 보복하는 거 밖에 더 되겠나 싶어 금방 소리를 껐다. 혹시 혼자 착각하는가 싶어 아빠에게도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는데, 아빠는 들리지 않는단다.
아주 미세한 소리가 들리지만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라며 참으면 된다고 간단 명료한 답변을 했다. 결국 나는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 돼 있었고, 나중에는 “네가 망상하는 걸 수도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상담을 받게 되었고, 선생님의 분 홍코끼리 이야기가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선생님은 내 상황을 들으며 이런 예시를 들었다.
“분홍 코끼리를 떠올리지 마세요”
하지 말라고 통제할수록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오히려 분홍 코끼리가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무엇을 생각하지 말라고 할수록 생각은 더 또렷해지고 머릿속에 머문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회색 코끼리를 보세요”라고 말하고 시선을 옮기는 편이 낫단다.
‘신경 쓰지 말자’ ‘보지 말자, 떠올리지 말자’ 마음속으로 되뇔수록 대상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우리 마음도 청개구리인가 보다. 하지 말라면 하고 싶어지고 더 생각하게 되니까.
보복 소음을 내기 위해 유튜브를 검색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틀어놨던 모습을 생각했다. 내가 시끄러운 만큼 상대도 시끄러워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맞대응하려던 나를 떠올렸다. 내가 튼 소음에 몸과 마음이 얼룩덜룩 해진 것 같은 느낌이 가득했다. 그러니 보라색 코끼리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회색 코끼리를 보아야 한다. 상담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마음은 참 단순한 방식으로 움직이는지도 모른다. 억지로 밀어내려 하면 그 대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 의식하게 되고, 마음의 중심에 가까이 자리 잡는다. 왜 노래 가사도 있지 않는가.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라죠. 때로는 문제를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시선을 다른 곳에 두는 게 답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나는 걱정인형이었다. 걱정한다고, 문제에 대해 찾아본다고 해도 당장 해결되지 않는데 사서 걱정한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느라 아무것도 못할 때도 있었다.
예민함 역시 코끼리를 보는 문제와 맞닿아 있지 않을까. 예민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단, 다른 생각이나 장면으로 마음의 방향을 옮겨 보는 것.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곳을 바라보려고 노력 중이다.
소리에 맞서기 위해 시끄러운 소리를 찾기보다는 ‘백색소음’ ‘낭독유튜브’ ‘야야기 유튜브’등을 듣는다. 소리로 인해 마음이 피폐해졌으니 좋은 소리를 들으려고 한다. 보라색 코끼리를 지우기 보다 회색 코끼리를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마음을 다루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시선을 어디에 두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