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 이웃나라
어릴 적 세계사 시리즈로 나왔던 먼 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을 기억하는가. 만화책이었는데 나라 별로 쉽게 풀이돼 있어 한 권을 읽고 나면 다음 권에는 무슨 나라의 이야기가 펼쳐질까 기대하곤 했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책 이야기냐고? 책 한 권에 나라를 들여다볼 수 있는데 지금은 가까운 이웃도 누가 사는지 무얼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나는 가끔 층간 소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적이 있었다. 벽간 소음, 천장을 타고 울리는 아이들의 발소리, 청소기 소리 등등. 이틀 전 벽간 소음으로 내 신경을 긁었던 아래층이 이사를 갔다. 생각해 보면 이삿짐 정리를 하느라 밤새 청소와 짐 정리로 내 소리 세포를 깨웠는지도 모른다. 이사 가는 소리, 오는 소리, 도배장판을 하는 소리에 아침에부터 강제 기상을 했었다.
조금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다음날에 또 이삿짐 차량과 사다리차가 와 있었다.
층간 소음, 정확히는 아이들이 쿵쿵거리는 소리로 나를 속 썩였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참을 인 세 번을 가슴에 쓰고 일 년 반 정도 참고 있다가 집을 찾아가서 간곡히 말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해주어 일순간에 마음이 풀렸던 집이다. 위층과 대화 후 가끔 소리가 나면 나도 좀 참았고, 위층도 조심해 주니 역시 ‘대화’하는 편이 빠른 편이라 느꼈다. 뭔가 소음을 오랫동안 참고 있던 기간이 억울해졌다.
아래층과 위층, 그러니까 4층과 6층이 격일로 각각 이사를 하며 불안감이 들었다.
‘이상한 이웃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주변 지인을 통해서나 티브이나 뉴스 기사로 이웃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때면 무서울 때가 많았다. 정상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피해망상이나 조현병에 걸린 것 같은 여자가 집 문을 두드려 댄다든지, 고성을 지른다든지. 반려견이 짖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이웃, 소음 문제를 이야기해도 적반하장으로 잘못한 게 없다고 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사를 가고 올 때 나는 소리 때문에 며칠간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덕분에 강제 기상을 해서 잠 대신 아침에 할 일들을 챙길 수 있었다. 아래층 도배장판이 끝나니 이제 위층 공사구나. 아빠는 위층이 이달 말까지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보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집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전동, 드릴 소리를 들으면 뇌가 뚫리는 기분이 들어 별로 좋지 않다. 또 소리를 의식하지 말자 할수록 그 소리는 더 강하게 귓속에 박힌다.
오늘은 하루 종일 외출할 일이 있어 오전부터 오전까지 집에 없었다. 문 앞에 택배는 쌓여있고, 상자 위에 모르는 과일 봉투가 있었다. 오렌지였다. 출처가 불분명한 택배나 음식은 조심해야 되라고 몸이 먼저 반응했다. 문 앞에는 포스트잇 메모 하나가 붙여져 있었다.
위층 공사로 시끄러울 수 있으니 양해를 부탁한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위층 이웃을 만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시끄러운 건 맞는데 메모 하나로 마음이 조금 누그러뜨려졌달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말이 이런 경우에 생기는 것 같았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만 해도 이웃은 친형제보다 더 끈끈했다. 집을 드나들며 반찬을 나눠먹을 정도로 친했으니. 한여름에 문 열고 생활해도 뭐라 하는 사람 없었으니 말 다 했지 뭐. 지금은 이웃이야 말고 정말 먼 나라의 이야기 같다. 정상인을 만나면 감사하다고 해야 할 정도니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타인에게 어떤 이웃일까.
위층에서 건넨 오렌지를 까먹는다. 껍질에서 올라오는 찡한 향이 코끝에서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