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것도 중요할 것도 없는 생일

일 년마다, 그래도 한 번씩 찾아오는 날

by 최물결

경칩(驚蟄).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인 경칩. 나는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가 속해 있는 삼월에 태어났다.


어릴 때는 나름 ‘생일’이 연례행사라고 생각했는데……. 서른 살 중반이 넘은 내게는 조금 불편하다. 분명 무슨 날이기는 한데 중요하지도 않고 특별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생일이어서 뭔가 억울했다. 반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생일을 맞이하고 싶은데 잘 모르는 아이들이 섞여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초등학생 때는 극 I 성향이라 더더욱 친구들에게 말하는 게 조심스러웠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카카오톡 생일이라고 뜨면 어쩌지?라는 막연한 걱정이었다.


나는 부엌으로 가 미역을 잘라 물에 불렸다. 생일이니 기분이라도 내기 위해 미역국을 끓이려는 것이다. 아빠가 끓여준 것 보다 내가 직접 하는 편이 맛이 좋기에 손수 미역국을 끓였다.


지인들이 케이크과 커피 마카롱 같은 것들을 보내줬다. 십 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생일을 이유로 서로 안부를 묻는다. 제일 큰 안부는 ‘건강’ 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기도 했다. 결혼한 친구들인데 결혼하면 바빠지고 신경 쓸 게 많아지니 연락이 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쉽게 먼저 안부 인사를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내가 인스타에 마지막으로 올린 글이 암 수술 후 병원에 입원한 모습이었는데 적잖이 당황했는지 안부를 묻기가 조심스러운 건지 종종 대화를 하다 말이 없어진 지인도 있었다. 내가 그랬듯 ‘그들도 각자만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 싶다가도 먼저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하필이면 생일 부근에 아빠와 크게 싸웠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화가 크게 났다. 하나는 네이버에 로그인한 적이 없는데 로그인 기록이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사진을 옮기고 싶은데 휴대폰에 유에스비 포트를 연결하면 사진이 안 뜬다는 게 논점이었다.


유에스비 충전 모드에서 연결 모드로 바꾸는 법을 알려주고, 어떤 걸 눌러서 들어가서 옮기는지까지
다시 설명해 줘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아빠는 내게 반복적으로 물었다.


물을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겠지만 어떨 때는 ‘키보드가 안 돼’ ‘마우스가 안 먹어’ 아주 사소한 것부터 내가 모르는 분야까지 묻고 있다. 처음 한두 번은 알려주지만 반복될수록 내게도 참을 인이 새겨지고 폭발하게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오래된 노트북과 핸드폰이 문제라고 좀 바꾸라고 화를 냈다.


아빠와 한 번씩 겪는 연례행사라기에 이번에는 꽤 크게 싸웠다. 강아지가 아빠와 나 사이에서 눈치를 봤다. 말을 하다 언성이 높아지기 마련인데 아빠의 답답한 모습이 내 단전 아래쪽을 세게 누르는 것 같았다. 화를 참는 건 정말 곤욕이다.


한차례 언쟁이 끝났다. 불처럼 솟아올랐다가 지나간 것 같은 하루의 끝, 생일날 싸움이라니. 서로 화를 내놓고 갑자기 아빠가 냉장고에 있는 케이크를 먹자고 말했다.


그래 아무튼 생일이니까. 싸움은 늘 불처럼 타올랐다 빠르게 식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화를 반쯤 머금은 채로 초 하나에 불을 붙였다. 가까스로 타협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생일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특별할 것도, 거창할 것도 없는 생일날. 엄마가 있었으면 아빠와 못 싸우게 중재 했을텐데. 모르는 걸 나 대신 알려줬을 텐데라는 괜한 아쉬움만이 남았다. 그럼에도 또 생일은 찾아오겠지. 특별할 것 없어도 사람에게는 태어난 날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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