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마주친엄마와 딸의 한 장면
어제 강남의 카페에 세 시간가량 있었다. 알바를 가기 전 붕 뜨는 시간 때문에 시간을 때워야 했다. 나는 카페에서 햄 치즈 치아바타와 아메리카노로 점심을 대충 먹었다. 책을 읽을 요량으로 가져온 책을 꺼내 읽고 있었는데 책장이 몇 장 넘어가기도 전에 큰 목소리에 시선이 갔다.
원체 눈치도 빠르고 소리도 잘 듣는 극 예민한 나.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뚫고 모녀의 목소리에 레이더망을 집중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 바로 뒷자리였으므로 들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엄마와 딸. 딸은 내 나이보다는 열 살 정도는 많아 보였다. 왜 그런 사람들 있지 않은가.
본인은 그냥 대화를 한다고 말하는데 제삼자가 보면 꼭 화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말이다. 건너편에 있는 딸의 억양이 그랬다. 딸은 통장과 영수증을 챙겨 와 엄마에게 사용 용도를 말해주는 듯했다.
이해 안 가? 더 설명해 줘야 돼? 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생활비 통장과 체크카드, 신용카드 등에 대해 각각 설명해 주는데 엄마는 이해가 잘 안 가셨나 보다.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목소리에 귀를 활짝 열 수밖에 없었다.
딸은 클릭 몇 번으로 인터넷뱅킹도 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법이 많은데, 할 줄 알아야 한다며 씩씩대고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머니는 헷갈리는 눈치였다. 뒤이어 그녀는 자신이 일일이 신경 쓸 겨를도 시간도 없다고 한탄했다. 이렇게 시간 빼서 오는 것도 겨우 한 거라고 매번 해줄 수 없지 않냐며 투덜거렸다.
‘이해됐어?’ ‘ 이해된 거 맞아?’
엄마가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자 닦달하듯이 말을 길게 늘어뜨렸다.
우측에 앉은 여사님들 모임의 목소리가 다 묻힐 지경이었다.
처음부터 대화의 흐름을 몰랐다면 싸우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말이다.
꼭 저렇게까지 설명해야 할까.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할 수는 없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는 나는 조금 모순적인 사람이다.
나는 얼마 전 아빠와 싸운 일을 떠올렸다. 장소와 상황만 다를 뿐이지 ‘나도 저 딸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를 생각했다. 아빠와 내가 대부분 싸우는 원인은 ‘컴퓨터’ 혹은 ‘휴대폰’ 문제였다.
휴대폰에서 사진을 옮기거나 문서작성을 하고 뭔가 더 해야 할 때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른다. 하는 방법을 알려줘도 아빠는 다시 되묻는다. 더블클릭을 하라고 했는데 뭘 누르면 되냐고 화면을 한참 쳐다본다.
노트북도 제발 새로 사자 했는데 오래된 구형을 몇 년째 쓰고 있다.
아빠는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라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른다. 그게 내 스트레스를 키운 것이다.
며칠 전에는 오늘 더 이상 나를 부르지 말라고 세 번 말했는데, 또 불렀다. 참을 인이 폭발하는 순간 가슴에 있는 울분이 튀어나왔다.
아빠는 가르쳐 주면 되지 왜 맨날 너는 화를 내냐고, 다른 집 자식들은 다 알려준다고 말했다.
남과 나를 비교하자 화가 더 치밀었다.
자식이라면 꼭 그렇게 해야 하나. 나는 분명 오늘 그만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 나는 다 예예 하며 전부 받아줄 수 없었다. 어쩌면 한 명만 굽히면 끝날 일이었을 텐데 서로를 존중해 주지 못하다 보니 아빠도 나도 기분이 상할 때로 상했다.
딸이 신세한탄을 하다 다시 나지막이 말했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모녀 사이에는 내가 알 수 없는 배경과 둘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답답함과 짜증 나는 감정 사이에서 위험하게 줄타기하고 있었다. 얼마 전 아빠와 내 모습처럼 말이다. 대화라기보다는 확인과 지적에 가까운 모습들.
우리는 언제부터 부모에게 그렇게 말하게 되었을까.
설명하려는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이해하기보다 안 된다고 말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가까운 사이일수록 조심하지 않게 된 순간부터 일 것이다.
그날의 난 얼마나 큰 목소리였을까. 아빠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우리는 종종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그게 상처인지도 모른 채 지나버린다.
화나면서도 돌아서면 짠한,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고 속이 시원해진 뒤에야 획 돌아보게 되는 사람들……. 아빠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 어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