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낯선 손님을 맞이한 날

까마귀가 카페 매장으로 들어왔다

by 최물결

일하는 카페 매장으로 까마귀가 들어왔다. 들어온 건 둘째치고 나가면 되는데 나가질 못하고 주위만 빙빙 돌았다. 불행 중 다행처럼 매장에는 점장님이 계셨다.


처음에는 ‘어 까마귀가 들어왔네? 나가겠지 싶었으나 나가지 못하니 자동반사처럼 소리를 질렀다.


'왜 안 나가? 빨리 나가'

원 맨 쇼를 방불케 하는 것처럼 까마귀를 향해 말을 걸었다. 이미 강아지 산책을 하며 벌레며 새는 단련이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까마귀는 무서웠다. 입구가 어딘지 찾지 못한 채 서성이는 까마귀…….


나가려고 부리를 곧추세우며 가다가 주저앉고 또 주저앉았다.
정확히는 출입구를 못 찾아서 막혀있는 창문에 얼굴을 찧고 있는 셈이다. 까마귀가 이렇게 멍청했던가? 아니면 눈이 안 보이나?

나는 매일 강아지 산책을 하며 까치를 만난다. 우리 아파트 화단 주변에는 이상하게 까치가 많은데 이놈들은 내가 익숙해졌나 엄청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한 잘 도망가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징조를 보면 상징적인 무언가를 떠올리곤 한다. 정확히는 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박혀있다.


까치를 보면 새로운 소식이 온다거나 까마귀를 보면 재수가 없다거나 앵무새는 사람처럼 똑똑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가끔 까마귀가 깍깍 울어대면 ’불길하게 왜 울어대고 그래‘라며 괜히 까마귀를 무시했었다. 그리고 녀석은 지금 내가 일하는 매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점장님이 베란다 쪽으로 유인하기 위해 손으로 쿵쿵 벽을 내리쳤다. 이쪽으로 돌아서 나오라는 신호다. 네가 있는 곳은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으니 돌아 나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점장님은 까마귀를 보며 손님들을 내보내라고 했으나 오히려 손님들은 나가지 않고 구경거리라도 된 것처럼 날아다니는 까마귀를 바라보았다.


여자 손님이 미소 띤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주문을 했다. 생각해 보면 공원에서 비둘기한테 과자를 주는 사람도 있는데 뭐. 까마귀 한 마리라고 큰일이겠거니 싶었다.


길을 헤매며 돌아다니는 아이처럼, 까마귀는 몇 번을 헤매다가 출구를 향해 날아갔다. 그제야 나와 점장님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람 손님이 아닌 까마귀 손님을 맞이한 날. 손님이 다녀간 흔적은 처참했다. 그 뒷 감당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아까 벽과 창문으로 돌진하다 놀랐는지, 적잖이 당황한 것일까?


새똥을 맞아본 적은 있는데 똥이라기엔 그냥 놀라서 지린 것 같은 흔적이었다. 흑갈색 토사물 같기도 하고 언뜻 보면 에스프레소 농축액이 떨어져 있는 모양이다. 물걸레를 빨아 바닥을 닦으니 바로 닦였다. 닦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걸레에 묻은 녀석의 똥을 또 닦는 건 내 몫이겠지.


왜 사람도 놀라는 일이 있으면 한 번씩 바지에 찔끔 실례를 하지 않는가. 아마 까마귀 녀석도 그러했을 것이다. 길을 잘 못 들었겠지.




흉조라고 생각했던 까마귀라는 녀석에 대해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집에 가는 길에 ’까마귀‘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까마귀의 영리함과 고차원적인 지능은 실로 놀라웠다. 까마귀는 자신에게 위협을 가했거나 잘해줬던 사람의 얼굴을 기억한단다. 시각적 인지 능력이 뛰어난 데다가 동료 까마귀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기도 한다.


나는 그동안 앵무새가 제일 똑똑한 새라 생각했는데 까마귀 지능이 더 높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또한 까마귀는 다른 새들과 다르게 새끼가 태어나면 어미가 육십 일 동안 먹이를 물어다 주는데, 나중에 다 자란 까마귀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반포지효라는 사자성어의 유래로 쓰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까마귀를 흉조로 여기지만 영국에서는 왕의 새라는 좋은 의미로 통한다.


그러니 새에 대한 상징은 나라마다, 사람마다,
믿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낯선손님의 작은 해프닝을 통해 까마귀라는 녀석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녀석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듣고선 불길하다고 기기보다는 괜찮냐고 물어봐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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