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는지가 무엇을 보는지 결정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한다. 종이처럼 널브러진 인생의 여러 날들에 대해서. 잠시 후 몇몇의 장면들이 그려졌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내가 겪고 있는 상황, 속 사정, 아픔을 떠올리면 한도 끝도 없다.
하늘은 내가 성공하기도 전에 "암"과 "면역 질환"을 주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연이어 데려갔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생각했다. 내 운명이 기구한 건가. 모든 게 정말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을까.
무언가를 받아들이기에는 모든 고난들이 연이어 터져서 울 시간도 없었으니까. 주변 사람들은 암 수술 후 방사선과 약만 먹으면 되니 얼마나 다행이냐라고 심심찮은 위로를 해줬지만 달갑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나‘라는 사람을 알고 싶었다. 잘 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원망하기보단 운명이란 게 있다면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쉬는 동안 타로를 배우고, 지금은 틈틈이 명리학 책을 보고 있는데 내게 잘 맞는 학문인 것 같다. 특히 명리학은 알면 알수록 깊은 골이 깊은 계곡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타로는 78장의 기본 원리와 내용을 알고 있으면 되는데 명리학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좋아한다. 질문을 하면 명쾌하게 대답해 주는 스님의 대답이 살아가며 여러 상황에 통용될 때가 많으니까.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건강 문제로 그만두게 된 사례자가 있었다.
엄마는 점집에서 그때쯤 시험을 포기할 거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고 삶의 신조가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단다. 열심히 산만큼 보상받는다고 믿었으나 사주팔자나 운명이 있냐는 질문이었다.
법륜스님의 대답은 어떠했을까?
쉽게 요약하자면 일리는 있으나 진리는 아니다였다. 사주, 명리는 오랫동안 믿고 의지하고 또 전해 내려 온 풍습인 만큼 일리 있는 학문이다. 몇 백 년 전에 쓴 고전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회자되고 읽히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법륜 스님은 일리 있는 것들이 모두 진실인 건 아니라고 말했다. 삶에는 가변성이란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미래는 백 퍼센트 예측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우리의 삶은 필연도 우연도 아닌 필연과 우연의 복합체일 것이다.
자, 이 선이 어떻게 보이는가? 뭐가 더 길게 보이는가?
사실은 똑같은 선인데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처음엔 명리 책을 읽은 이유가 잘 살기 위해, 내 인생을 들여다보기 위함이었다면 지금은 같은 것이라도 무엇을 어떻게 보는지를 터득하기 위해 공부를 한다.
사주팔자를 해석하다 보면 내 성향이나 성격이 나오니 그에 맞는 직업과 일들도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겠다. 하지만 운명이 꼭 진리는 아니란 것이다.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며 확신을 가지고 노력하면 합격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맞다.
그러나 해당 연도에 운이 좋지 않아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부적을 쓰고, 기도를 드리며 합격운을 바라겠지만 믿음의 문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다.
그러니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자책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기로 한다... 는 거짓말이고.
그래도 사람인지라 몇 퍼센트는 슬퍼하거나 하늘을 원망할 수는 있겠다.
노력하고, 내려놓고, 기다리는 일은 참 어렵다. 나는 항상 빠른 결과와 보상을 원하니까.
즉각적인 결과를 얻지 못하면 실망과 포기도 빠른 편이다. 나의 이런 빨리빨리 성향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세상을 보는 방법을 알기 위해 오늘도 명리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