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와 J 그 어딘가의 사람

by 최물결



요즘 사람들은 성격, 성향을 묻기 전 엠비티아이유형부터 물어본다.


“물결님 혹시 엠비티 아이가 뭐예요?”


서먹서먹한 사이거나 이제 막 안면을 트고 아는 체를 할 때 많이 쓰는 단골 멘트 소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연의 일치로 소개팅을 한 남자가 상대방 여자가 마음에 들었는데 엠비티 아이까지 맞는다면 절호의 찬스를 외치며 미소를 지을 것이다.


나는 오 년 전 검사한 엠비티아이 테스트에서 INFP(인프피) 유형이라고 나왔다.
감성적이고 일상이 피곤하지만 의지가 타오를 때가 있으며, 약속을 잡고 막상 당일이 되면 귀찮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놀 줄 안다.


엠비티아이는 사소한 부문부터 행동 양상까지 나오는데 계속 읽고 있으면 무릎을 툭 치며 놀란다. 마치 저 멀리에 시시티브이로 나를 훔쳐보는 것처럼 놀랄 만큼 정확할 때가 많았으니 말이다.


엠비티아이의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두 가지 타입을 살펴보면 I(내향) E(외향) 혹은 J(계획형) P(즉흥적 유형)이다 구분하기 쉬운 데다 둘 사이 간극이 크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행을 가도 계획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상대방에게 맞춰주거나 쉴 거 쉬고, 맛있는 거 먹고, 사진 찍고 노는 편이다. 큰 틀은 정해놓지만 일정이 틀어지거나 시간 안에 다 구경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도 스트레스받지 않아 한다.


오 년 전의 나는 그랬다.


덤벙대고 실수투성이에다 뭔가를 배우거나 알아갈 때 직접 겪어야 체득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다른 점은 당시에는 무얼 하냐에 있어서 체계적, 목적 지향적 인간으로 변할 수 있었다.

바로 강아지 건강 상태와 약 체크, 상태 등을 살피는 일이 그것이다.


심장약과 갑상선 약 하루에 한 번 수액, 그리고 잘 때 호흡수 체크와 배변활동 메모를 기록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병원에서는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꼼꼼하다며 나를 칭찬했으나 나는 세심함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P인데 강아지 한정 J형 인간이었나 보다.


지금보다 어릴 적 나는 자유롭고, 즉흥적이며 상황 변화에 맞춰 살던 사람이었다. 젊고 화려했던 시절, 낙엽만 떨어져도 까르르 웃음만 나왔고, 빨리 어른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졸업해서 마음대로 하고 싶은 나날들을 꿈꿨다. 그런데 같은 시간인데도 과거와 현재 내가 느끼는 시간의 부피는 많이 다르다. 그때는 솜털처럼 가볍고 더디게 갔는데 지금은 너무 빠르다. 지금 글을 쓰며 지나가는 찰나의 시간조차도 아까운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오랫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인생의 방향을 못 잡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해야 할 목록을 쓰고 체크한다. 계획한 일들을 다 하지 못하면 하루를 잘 채우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회사나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 분이라도 지각하거나 늦으면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때가 많다. 출근시간은 지키라고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늦는 내 모습을 용납 못 하는 것이다.


무심하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많기에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러니 나는 즉흥적 인간에서 계획형 인간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계획하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계획은 나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즉흥적인 사람이다. 다만 이제는 즉흥적으로 계획을 세운다. 왜냐고? 살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성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기에. 내가 P에서 J가 된 게 아니라, 그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변한 게 아니라, 지금의 삶에 맞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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