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완벽주의자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던 날들에 대하여

by 최물결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다.

이 말은 변명처럼 들리지만 꽤 괜찮은 설명이기도 하다. 나는 시작 전에 완벽 세팅을 하는 편이다.

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모으고 준비되고 나서야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실행에 옮긴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문제는 한번 늘어지면 끝도 없다는 것, 꿈만 창대하다는 것이다. 해야지, 해서 잘될 거야. 성공할 거야.라는 다짐을 수없이 되뇌는데 정작 시작하지 않는다.

그럼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 다음날로 넘긴다. 꽂히면 쉬지 않고 계속하는 난데 왜 이렇게 게으를까 싶다가도 ‘내가 완벽을 추구하는 것 아닐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글을 쓸 때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주제로 쓸지 정하고, 자료를 찾을지 여러 번 고민한다. 해야지라는 말을 하다가 글쓰기 전 머리에 든 게 없으니 책이나 읽고 싶다며 요즘 트렌드 도서를 검색하고 있다. 정작 화면에는 빈 문서만 남는다.


나는 시작 직전에 잘 멈추는 인간이다.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먼저 옷을 산다.
내게 맞는 운동법이 무엇인지 유튜브와 블로그를 몇 날 며칠 동안 공들여 찾는다.
식단은 어떻게 할까? 뭐가 어떤 도시락이 유행이지? 쇼핑몰에서 입을 것과 먹을 것들을 잔뜩 산다. 그렇게 준비를 끝내고 나면 이상하게도 시작할 힘이 남아있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게을러서라고 생각했다. 혹은 의지가 없어서, 끈기가 없어서 시작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는 게으른 게 아니라 완벽하려고 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잘하고 싶었다. 어설프게 시작하는 것이 싫었고, 부족한 결과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완벽해질 때까지 준비하려 애썼다. 문제는 한 번도 ‘완벽한 순간’이 온 적은 없었다. 완벽을 핑계로 시작을 미루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시작하는 쪽을 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첫 입사한 회사에 클라이언트가 나이키였는데 우스갯소리로 매일 야근하며 어떻게 하냐고 찡얼거리는 내게 한참 위에 있는 차장님이 내게 말했다.


"JUST DO IT"


당시에는 너무 단순하고 짧은 이 말을 의미 없이 지나쳤다.


시작도 하기 전에 걱정만 앞서고, 거창한 계획만 늘어놓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JUST Do it 몰라? 일단 진행시켜.”


“잘하려고 하지도 말고 뭐가 되려고도 하지 마 그냥 일단 꾸준히 해”


무기력하게 하루 종일 누워만 있던 내게 이 말이 시너지가 됐는지, 나는 일단 뭐라도 했다. 글을 쓰고 싶었고, 마냥 손가락만 빨 수 없으니 일거리가 필요했다. 당장 강아지 간식값이라도 벌려면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했는데……. 그간 용기가 안 났었다.


커피 내리는 걸 배우고 싶어 국비지원으로 바리스타 과정을 신청할까 말까 수강신청을 고민하는 데만 일 년이 걸렸었다. 결국 반에서 유일하게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지만.

상대방에게 다가가고 말하는 데는 거리낌이 없는데 왜 내 인생 결정 하나를 못할까 싶었다. 뭐라도 될까?

어딘가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면 일할 수 있을 거야 하는 마음으로 하니 카페 알바를 할 수 있었다.


오전에는 글을 쓰며 내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파트타임으로 카페 일을 하게 됐다.

오전밖에 시간이 없는 탓에 시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시간을 쪼개 쓰게 됐다. 쓰고 싶은 글도 읽고 싶은 책들도 많은데 한 번에 다 하려고 하기보다는 차근차근 저절로 계획과 실행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어? 이게 되네?’ 그동안 집중력이 부족한가, 머리가 나쁜가, ADHD 인가 스스로를 질책하거나 없는 병명을 만들어낸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 시간에 공부하던가, 책을 읽던가, 한 자라도 글을 쓸걸.


세상에 완벽하게 시작하는 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냥 하라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일단 하라고. 어쩌면 그토록 원했던 완벽은 뭔가를 시작한 이후에야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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