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없을 때, 우리는 결국 떡볶이를 꺼낸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는 날이면 매콤한 게 당긴다. 빨간 양념이 뒤덮인 두툼한 떡볶이 속을 휘저으니 어묵, 계란, 양배추가 나왔다.
떡볶이 접시 옆에는 먹음직스러운 순대도 있다.
사장님이 한 번씩 뒤적일 때마다 묻어나는 윤기에 눈길이 갔다.
시장 한구석 단골 떡볶이집은 인심이 좋다.
남은 순대를 포장해 달라고 말하며 “강아지랑 먹으려고요”라고 말하니 사장님이 자르지 않은 큰 간 덩어리를 비닐에 따로 담아주셨다.
맛있는데 인심까지 후한 떡볶이집…….
누군가는 연신 뜨겁다를 외치고, 누군가는 입을 식히며 웃는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말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 일화를 떠올렸다. 예전에 회사 동료가 말한 적이 있었다.
“할 말 없을 땐 떡볶이 얘기 꺼내면 돼”
그의 떡볶이 담론은 꽤 진지했다.
“생각해 봐요. 떡볶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떡볶이는 먹거든요”
소개팅 자리에서도 그는 상대에게 그렇게 물었다고 했다.
“떡볶이 좋아하세요?”
“어디 떡볶이 좋아하세요?”
“아~ OO동 떡볶이 참 맛있죠?”
그가 그렇게 말하니 이해가 됐다.
떡볶이란 소재는 참 요긴한 녀석이었다.
질문 하나로 다음 질문과 대답을 할 수 있는 데다 마음에 들면 다음 약속까지 잡을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또 상대의 취향까지 미리 파악할 수 있지 않는가.
순대는 간만 먹는지, 오소리감투랑 허파도 모두 먹는지.
떡볶이로 소개팅한 그는 오랫동안 여자친구와 사귀었으며 지난해 결혼에 골인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질문이다. 날씨도 직업도 취미도 아니고 떡볶이라니.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은 떡볶이 좋아하세요?라는 질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좋아한다, 매운 건 못 먹는다. 학교 앞 떡볶이가 최고였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떡볶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니까.
떡볶이는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틀릴 수도, 부담스러울 수도 없는 이야기. 떡볶이라는 이야기 안에 자신을 조금씩 얹는다.
어릴 적 기억을, 입맛을, 지금의 취향을.
우리는 보통 서로를 이해하려 할 때 너무 빠르게 깊은 질문부터 꺼낸다.
성미가 급한 나는 본론으로 들어가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다. 소개팅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예전에는 사소하고 자질 구례한 이야기들을 했다면 면접도 아니고, 지금은 보이는 것들에 대해 묻는다.
참으로 현실적인 사람이 아닐 수가 없다. 기억이나 추억도 중요하지만 짧은 시간에 사람을 보고 알 수 있는 건 이력서처럼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반대로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내가 그러할 것이다. 나도 상대도 자연스럽게 대답할 준비, 자신을 설명할 준비를 하게 된다. 그에 비해 떡볶이는 다르다. 설명할 필요도 정리할 필요도 없다. 그저 좋아한다. 아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서 떡볶이는 만국인의 공통언어다.
얼마 전에는 지인과 즉석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보글보글 끓는 떡볶이에 튀김과 순대를 따로 먹지 않고 국물 안에 투하해 먹었다. 보글보글 끓으며 졸여지는 냄비 안을 들여다보자 적절하게 스며든 국물이 튀김에 퐁당 담겨 있었다.
나는 젓가락으로 김말이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역시 떡볶이는 즉석 떡볶이라니까’ 가게마다 브랜드마다 시장마다 맛 따라 철 따라 분위기 따라 다른 떡볶이. 그래도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은 맛으로 통한다는 거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할 말이 생각이 안난 나는 나이 차이가 열 살 훌쩍 넘는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떡볶이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