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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Mar 31. 2020

엄마는 가끔 남는 음식을 싸왔다

  

  “엄마 배고파 맛있는 거 사와” 엄마에게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엄마 아빠는 맞벌이로 바빴고 나는 중학교 때까지 할머니 손에서 컸다.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내가 쑥쑥 잘 커야 한다며 생선 반찬, 토란국, 각종 나물무침 등 몸에 좋은 것들을 밥상에 차려 주셨다. 하지만 어린 나의 입맛에 음식들이 입에 맞을 리가 없을 터. 나는 달고 고소하고 짭짤한, 소위 말해 애들 입맛이었다. 그 당시 내가 원하던 반찬은 따끈한 찌개에 소시지, 계란 등의 반찬이었다. 한 번은 나도 그런 반찬들이 먹고 싶다고 우리 집은 왜 국을 한 통씩이나 끓여 일주일 내내 먹는 것이냐며 타박하며 운 적도 있었다.

  나는 저녁 6시에서 7시만 되면 전화기를 들었다. 창밖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주홍색 노을이 넘실거리며 하늘 아래로 번지고 있었다. 엄마가 퇴근할 때쯤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엄마 어디야 배고파 맛있는 거 사와”를 전화기 너머로 외쳐댔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문자메시지로 배고프다는 수신호를 날리기도 했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엄마는 떡볶이, 어묵, 혹은 햄버거 같은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사다 줬다. 나는 9시가 가까워질 때까지 혹은 엄마가 회사에서 돌아올 때까지 일부러 저녁을 먹지 않은 채 기다린 적도 있었고 저녁을 적게 먹고 엄마가 사 오는 간식을 기다리기도 했다. 어린 나는 나중에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먹고 싶은 것을 내 맘대로 사 먹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빨리 어른이 되는 순간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시간이 십오 년 남짓 지났다. 왕만두집, 족발집, 국숫집, 한 가게 한 가게 맛있는 것 천국이다. 일 도하니 이제 맛있는 것도 내 맘대로 사다 먹을 수 있다. 친구들과 만났을 때도 먹고 싶은 메뉴를 마음대로 시켜먹을 수 있다. 특히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오는 날은 제일 출출한 순간이다. 분명히 저녁을 먹고 왔는데도 배가 홀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만두가게에서 만두를 사 가려고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출출해서 내가 먹을 만두 일 인분만 살려했는데 집에 있는 가족들(엄마, 아빠, 할머니)가 눈에 밟혔다. 나는 일 인분이라고 말하려던 것을 삼인분으로 바꿔 말했다.

“여기 만두 삼인분 주세요”

이제 집에서 밥도 할 줄 알고 음식도 알아서 사 먹을 줄 아는 나이가 됐는데 엄마는 자꾸 회사에서 뭔가를 사 오신다. 하루는 추어탕 하루는 보쌈정식 하루는 버거킹……. 

“이거 손 하나도 안 댄 거야 회사에서 점심으로 먹은 건데 생각이 없어서 포장해왔어”

분명 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는 맞는데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엄마에게 맛있는 거 사 오라고, 배고프다고 보채지도 않는데. 엄마는 본인의 점심을 거르고 나를 주려고 음식을 싸온 것일까. 웬일인지 별로 먹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일을 하게 되니까 비로소 알 것 같다. 무언가를 살 때 눈에 밟힌다는 것. 생각이 난다는 말 말이다. 힘이 들 때 가족 다 같이 모여 허심탄회하게 치킨 한, 두 마리 상에 두고 먹는 그 모습이야 말로 진정 마음이 배부른 모습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엄마는 하루 한 끼 먹는 게 편하다며 그 마저도 생각이 없을 때 음식을 싸오는 거라며 말하는데 내게는 핑계처럼 들렸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퇴근하며 맛있는 것을 사 간다. 맛있는 음식을 볼 때면 집에 계신 엄마, 아빠, 할머니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엄마는 항상 “너만 먹을 거 사와 너무 많이 사 온다”라고 하지만 나는 “다 같이 먹을 거야”라고 답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쉬는 날이다. 오늘은 치킨 두 마리를 사 왔다. 할머니가 드시기 좋게 순살 후라이드로 사 왔다. 식탁 형광등 중앙에 가족들이 앉았다. 엄마가 웃는다. 사실 엄마는 치킨보다 웨지감자를 더 좋아한다. 내가 또 센스 있게 웨지감자를 곱빼기로 추가해왔다. 엄마는 이게 다 얼마냐며 가격을 묻는다. 나는 가격을 말해주지 않는다. 가격 같은 건 아무렴 상관없다. 쉬는 날은 우리 가족 모두의 마음이 배부를 수 있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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