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가끔 남는 음식을 싸왔다

by 최물결


“엄마 배고파 맛있는 거 사와” 엄마에게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엄마 아빠는 맞벌이로 바빴고 나는 중학교 때까지 할머니 손에서 컸다.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내가 쑥쑥 잘 커야 한다며 생선 반찬, 토란국, 각종 나물무침 등 몸에 좋은 것들을 밥상에 차려 주셨다. 하지만 어린 나의 입맛에 음식들이 입에 맞을 리가 없을 터. 나는 달고 고소하고 짭짤한, 소위 말해 애들 입맛이었다. 그 당시 내가 원하던 반찬은 따끈한 찌개에 소시지, 계란 등의 반찬이었다. 한 번은 나도 그런 반찬들이 먹고 싶다고 우리 집은 왜 국을 한 통씩이나 끓여 일주일 내내 먹는 것이냐며 타박하며 운 적도 있었다.

나는 저녁 6시에서 7시만 되면 전화기를 들었다. 창밖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주홍색 노을이 넘실거리며 하늘 아래로 번지고 있었다. 엄마가 퇴근할 때쯤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엄마 어디야 배고파 맛있는 거 사와”를 전화기 너머로 외쳐댔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문자메시지로 배고프다는 수신호를 날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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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엄마는 떡볶이, 어묵, 혹은 햄버거 같은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사다 줬다. 나는 9시가 가까워질 때까지 혹은 엄마가 회사에서 돌아올 때까지 일부러 저녁을 먹지 않은 채 기다린 적도 있었고 저녁을 적게 먹고 엄마가 사 오는 간식을 기다리기도 했다. 어린 나는 나중에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먹고 싶은 것을 내 맘대로 사 먹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빨리 어른이 되는 순간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시간이 십오 년 남짓 지났다. 왕만두집, 족발집, 국숫집, 한 가게 한 가게 맛있는 것 천국이다. 일 도하니 이제 맛있는 것도 내 맘대로 사다 먹을 수 있다. 친구들과 만났을 때도 먹고 싶은 메뉴를 마음대로 시켜먹을 수 있다. 특히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오는 날은 제일 출출한 순간이다. 분명히 저녁을 먹고 왔는데도 배가 홀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만두가게에서 만두를 사 가려고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출출해서 내가 먹을 만두 일 인분만 살려했는데 집에 있는 가족들(엄마, 아빠, 할머니)가 눈에 밟혔다. 나는 일 인분이라고 말하려던 것을 삼인분으로 바꿔 말했다.

“여기 만두 삼인분 주세요”

이제 집에서 밥도 할 줄 알고 음식도 알아서 사 먹을 줄 아는 나이가 됐는데 엄마는 자꾸 회사에서 뭔가를 사 오신다. 하루는 추어탕 하루는 보쌈정식 하루는 버거킹…….

“이거 손 하나도 안 댄 거야 회사에서 점심으로 먹은 건데 생각이 없어서 포장해왔어”

분명 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는 맞는데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엄마에게 맛있는 거 사 오라고, 배고프다고 보채지도 않는데. 엄마는 본인의 점심을 거르고 나를 주려고 음식을 싸온 것일까. 웬일인지 별로 먹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일을 하게 되니까 비로소 알 것 같다. 무언가를 살 때 눈에 밟힌다는 것. 생각이 난다는 말 말이다. 힘이 들 때 가족 다 같이 모여 허심탄회하게 치킨 한, 두 마리 상에 두고 먹는 그 모습이야 말로 진정 마음이 배부른 모습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엄마는 하루 한 끼 먹는 게 편하다며 그 마저도 생각이 없을 때 음식을 싸오는 거라며 말하는데 내게는 핑계처럼 들렸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퇴근하며 맛있는 것을 사 간다. 맛있는 음식을 볼 때면 집에 계신 엄마, 아빠, 할머니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엄마는 항상 “너만 먹을 거 사와 너무 많이 사 온다”라고 하지만 나는 “다 같이 먹을 거야”라고 답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쉬는 날이다. 오늘은 치킨 두 마리를 사 왔다. 할머니가 드시기 좋게 순살 후라이드로 사 왔다. 식탁 형광등 중앙에 가족들이 앉았다. 엄마가 웃는다. 사실 엄마는 치킨보다 웨지감자를 더 좋아한다. 내가 또 센스 있게 웨지감자를 곱빼기로 추가해왔다. 엄마는 이게 다 얼마냐며 가격을 묻는다. 나는 가격을 말해주지 않는다. 가격 같은 건 아무렴 상관없다. 쉬는 날은 우리 가족 모두의 마음이 배부를 수 있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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