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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pr 27. 2021

죽음을 앞둔 사람의 가족들이 대부분 모르는 것.

당신은 그들이 좋아했던 노래를 아는가

  

보험에 대해 공부를 하러 가던 어느 날 컨설팅 담당자가 내게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나와 가장 오래 살아서 잘 알 것 같지만 모르는 게 가족이라고. 가족끼리 보험을 해주게 돼도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안정성 때문에 도리어 못 돌봐주는 일이 부지기수라며 운을 띄웠다. 본인도 그런 부분에서는 반성이 된다며 고개를 떨궜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그는 얼마 전 본 유퀴즈 온더 블럭 편에 나온 ‘시간의 마술사’들 편을 언급했다. 나는 나중에서야 그의 말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직접 영상 클립을 찾아봤다. 컨설팅 담당자는 가족들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아냐고 질문을 다. 아빠의 십팔번인 꽃을 든 남자와 엄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렀던 나미의 빙글빙글이 머리에 맴돌았다. 내 머리가 회전추가되 과거로 돌아갔다.


“사람의 감각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남는 청각”


 유퀴즈 온더 블럭에서는 병원에서 편안하게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든 임종 방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임종이 임박해오면 가족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라'라고 한단다. 의사가 말하길, 실제로 스피커를 통해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놓으면 마음의 평화를 느끼며 눈을 감을 수 있다고 했다.

 임종방은 분위기가 무거운 편인데 한 번은 스피커에서 트로트 땡벌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왜 땡벌일까.  의사는 왜 이 노래를 틀어 놓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이유는 없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땡벌이어서. 생을 마감하기전 잔잔하고 평화로운 노래만 들어야 되는 건 우리의 편견이 만들어낸 것이다. 가족의 아버지는 30년 동안 양말공장에서 일하시면서 가족들을 부양하셨는데 가장 좋아하셨던 노래가 땡벌이었단다. 그것뿐. 의사는 임종방에 틀어놓은 '땡벌' 가사를 들으면서 노래가 이렇게 슬픈지 몰랐다고 한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 가사를 혼자 음미 하다가 그 아저씨가 지나온 세월이 눈앞에 보여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의사가 사람들에게 던진 질문은 우리는 생각보다 가족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가족들은 아버지가 제일 힘들었을 때 들었던 노래가 무엇인지 알았다. 어쩌면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제 3자가 바라보았을 때에는,  아저씨를 생각했던 가족들의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았나 싶었다.

후회가 들었다. 엄마에게 낡은 PMP라도 손에 쥐어줬어야 됐는데. 했는데 했는데 거리며, 전해 주지 못한 내가  한스럽기만 했다. 나중에 엄마는 스마트폰과 연결할 이어폰을 찾았는데 그마저도 오래 된거라 맞는게 없었다.  열린 음악회,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엄마가 생각났다. 토요일이면 불후의 명곡을 봤고, 일요일이면 복면가왕을 보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듣는 게 좋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엄마의 빙글빙글을 떠올린다.


“엄마의 주변은 빙글빙글”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가족은 여름이면 자주 강원도를 갔었다. 형제가 없어 가끔 사촌동생을 데리고 다녔는데 그때도 말하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노래방’을 그렇게도 좋아했다. 그때도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최신 유행 걸그룹, 보이그룹 노래를 섭렵해 신나게 불렀다. 혼자 원맨쇼를 하다가 지칠무렵 나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정확히는 어떤 노래를 부를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엄마 아빠의 손에도 각각 마이크를 쥐어줬었다. 꼭 불러야 된다며 엄마아빠에게 온갖 무언의 애교를 떨었다. 엄마의 시선은 노래방 종이 책자에 가 있었다. 그때 고민하다가 겨우 고른 엄마의 노래가 ‘빙글빙글’이었다. 작은 목소리로 수줍게 부르던 엄마의 모습의 눈에 생경하다. 빙글빙글도 댄스곡인데 엄마가 떠나고 나서 들어보니 너무 슬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돌아다니며 서성이는 마음이 꼭 엄마를 닮아 있었다. 좋아하는데 좋아한다고 하지도 못하고, 그리운데 그리워한다고 하지도 못하면서 혼자 두려워서 절절 매고 있는 그 모습. 이리저리 둘러보기만 하는 모습, 주변 챙기기에만 급급한 모습. 그렇게 엄마도 계속 매일 돌고 돌지는 않았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엄마의 노래를 생전에 들었어서”


엄마가 불렀던 그 시절 그때의 모습을 계속 기억해본다. 기억이 안 나면 상상해보려고 애쓴다. 두 눈을 감고 그 시절로 들어가서 그때의 엄마와 조우한다. 사실 빙글빙글도 엄마가 좋아한다기보다는 아는 노래였을 거다. 그럼 엄마는 누굴 좋아했지. 아 조용필을 좋아했다. 그 시절 소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렸을 때 엄마와 열린 음악회를 간 적이 있는데 직접 보는 무대는 생생하다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엄마도 소녀였었지’ 나보다 더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를 추억하며 그리워하기보다는 자서전처럼 만들어 나가고 싶다. 잊기보다는 좋은 사람의 모습을 잘 간직해 두어 기억이 날 때마다 쌓아 올리고 싶다.

6월에는 아빠와 강아지와 시간이 나면 강원도에 가기로 했다. 가면 아빠한테 노래방에 가서 물어봐야겠다. 무슨 노래를 제일 좋아하느냐고. 그리고 그 노래를 열심히 장단 맞춰 불러줘야지. 엄청 신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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