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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pr 21. 2021

갑의 가스라이팅,그 불을 그만 꺼주세요

하찮은 감정에 신경 쓰지 마 내 마음아.

하루 종일 화가 나고 속이 매스꺼웠다. 기분이 안 좋은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생각나지 않는 약이 있었으면, 기억을 지우는 알약은 없을까 생각을 하다 멈췄다. 휴대폰 전화기가 울리면 그 사람일 것 같아서 벌벌 떨었다. 속 시원하게 욕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보복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도 난 내가 정말 잘못한 것일까를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모두가 내 잘못이 없다고 했다.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 넌 세뇌당했다고, 가스라이팅이라고. 친한 친구들, 남자 친구가 괜찮다고  말해줘서 잠시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러다가도 문득 생각이 난다.



일전에 내가 썼던 외주 업무를 하게 된 글 쓰는 공대 박사학 과정. 자신이 업계에서 기획자로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 2탄이다. 그 사람의 업무 스타일은 편하게 일을 주고 급박하게 받는 스타일이었다. 처음에는 작업을 같이 진행하는 줄 알았는데 나 혼자 단독으로 글을 쓰고, 외주 담당자가  내 글을 한 번 더 수정하고 클라이언트에게 보내지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언젠가부터 이렇게 진행 되고 있었다. 그래서 당연한건줄 알았다. 일을 갖다 주면 내가 단독으로 쓰고 그 사람은 수정을 하는 방식.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조금씩 마음속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나는 글을 쓸 때 납기일을 지키는 편인데, 내가 정말로 쓰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지 파일을 공유해서 볼 수 없냐고 한 적이 있었다.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텁텁했지만 ‘아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파일을 내줬던 게 생각이 난다. 사실은 그 사람이 돌려 돌려 말했던 것들이 내게는 상처였고, 기분 나빴던 것이란 걸 너무 늦게 자각해버렸다.

하고 싶지 않은 외주업무를 받으면서부터 ‘이미 계약해 버렸으니 해야 돼‘가 되어 버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언가를 하게 된 다는 사실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 나로 인해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예전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언어폭력, 폭행이 생각이 났다. 모든 건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었다. 그래서 내 입에는 미안하다는 언어가 배어있었다.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미안하다고 하는 버릇. 나 뭐 잘못했어요?라고 물어보는 버릇. 그거 내가 그런 거라고 먼저 져 주는 것들. 일단 말하고 나면 수월해져서 굽혔던 것들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무서워졌다. 지금 그 사람이 하는 것들에게서 그때의 기억이 돼살아났다. 하지만 세상에 한 사람 때문에 변화되는 일은 없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 그래서 차마 그 사람에게는 더 미안하다고 못하고 사과받고 싶었다. J작가와 남자 친구 C작가 등 모두가 그 사람은 아니라고 해주지 않았더라면 참고 계속 일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당한 것들이 부당한 게 아니라 정말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미안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겠지.


역시, 한번 찌질한 사람은 끝까지 찌질했다. 이미 계약한 건 때문에 그 건까지는 일을 하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길 내가 자신의 약점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주도권을 잡아서 자신을 컨트롤하려고 한다고.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다면 애초에 돈부터 더 달라고 했겠지. 대놓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나는 남의 연애나 이야기는 굉장히 객관적으로 보고 충고하는 편인데, 정작 나 자신은 제대로 못 돌본다. 그래서 항상 이런 일이 생기나 보다. 서글펐다. 한참 지난, 밀린 외주비를 내 입으로 달라고 하고, 그걸 저당 잡으며 협박하는 그 사람이 찌질했다. 정확히 말하면 착한 사람 증후군 같았다. 내가 이 돈을 주면 남은 계약작을 안 쓸 것 같지만 신의를 지켜 준다고. 그건 신의가 아니라 당연히 노동의 대가를 주는 것인데 말이다. 코웃음이 나왔다. 그는 계좌를 알려 달라고 했다. 분명히 계좌를 카톡에 남겼는데도, 나와 전화를 하길 원했다. 너무 힘이 들고 진이 빠졌다. 서로 자기 얘기만 했다. 통화를 하는 동안에 그도 나도 서로 본인의 고충을 털어놓기에 바빴다.

사실 그의 말에 지고 싶지 않았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그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도 하지 않았다. 쓰기 싫다는 표현이 완고하자 이제 작가님은 필요가 없다고 했다. 차라리 그 말이 나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안전 이별을 한 사람처럼 기분이 괜찮아지면서 무서웠다. 당신은 이것도 문제고 이것도 문제라고 조목조목 따지고 싶었으나 욱 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무서웠다. 그래서 참았다. 분풀이를 다 못해서 감정이 조각조각 감정들이 침전물처럼 남아 있는 것 같다.


지나간 폭력들이 불현듯 떠오를 때면 기분이 이상하다. 그래서 생각이 그만 떠올랐으면 좋겠다. 계약서 한 장 없이 일했다는 게 분했고, 그럼에도 강요 당했 다는 게 억울했다. 엄마의 유품 정리할 시간도 마다하고 쓴 대본 값으로 딜을 하려고 하며 ‘난 돈을 줬으니 착한 사람, 그렇지만 넌 책임을 다하지 않았으니 나쁜 애야’라고 구분 지었다. 억울하고 분했다. 내가 말해서 준 돈 몇 푼, 난 뭐 때문에 일을 했을까...그 시간들이 미안하다.

평범한 나도 이런데 연예인들은 어떨까. 문득 그들의 삶을 생각해봤다. 계약서 때문에 억지로 일하고, 강요받고, 그 강요에 익숙해져서 진짜 본인을 잃어가는 삶... 나는 끝까지 가스 라이팅을 하는 그가 불행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모를 것이다. 원래 가해자는 본인이 뭐가 잘못했는지 모르는 법이니까.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배웠다. 끊고 맺는 상황은 확실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그건 드세고 예민한 게 결코 아니다. 앞으로 더 확실하게 부당한 것을 인지하고 맞서 싸울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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