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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pr 19. 2021

내게 글쓰기는 전혀 가볍지 않은 일이니까.

글을 하찮고 쉽게 보는 사람들에게 대항하며

    

분야는 다르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IT 관련 글을 쓰다 보면 그 내용을 어떻게 풀어야 사람들이 이해할까. 조금이라도 더 머무를까 생각하기도 하고, 잘 안 풀리면 머리에 쥐가 나서 머리를 뜯다가 퇴근을 하지만 다음날 다시 ‘아메리카노’라는 자양강장제를 먹고 다시 파이팅을 하며 일을 한다. 그렇게 일에 익숙해 진지 육 개월째. 가끔 이렇게 마음이 헛헛하고 답답하면 저녁에는 브런치를 쓰고, 외부에서 일을 받아서 글 쓰는 일을 도맡아 하기도 한다. 오늘 이야기할 주인공은 이 외주 담당자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진심이고, 오지랖이 많은지라 공적으로 만났더라도 사람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일 때문에 알게 됐지만 삼 개월 남짓 일을 하게 되면서 가벼운 농담도 하게 되고, 일이 없는 날에도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었다. 그는 모 공대 석박사 과정을 밟는 랩실의 연구원이기도 했고, 부캐로 글 쓰는 공대생으로 불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자기에 대해 말하길 주변에 인맥이 많아 공대생 스타트업 지인들이 많은데 본인을 ‘기획자’로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는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데 그중에서 그나마 외부에서 일을 받아서 글을 쓸 때가 가장 재밌다고 말했다. 글을 쓰면서 본인의 글빨이 늘어 가는 게 느껴진 다나. 나는 그에게 물었다.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수다를 떨 때는 없어요? 그때는 재밌지 않아요? 그의 대답은 ‘뭐하러 그래요. 저는 독서를 하거나, 그 시간에 돈 버는 게 더 좋아요. 돈 되는 거 없나. 라라씨 브랜딩 할거 없어요? 회사 소개 글이나 상품 상세 글 그런 거 대충 좀 하면 돈 될 거 같은데 뭐 없나요?’


화가 났다. 얼마 전 나는 그와 마케팅과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브랜딩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브랜딩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하나의 소개 페이지, 상세페이지가 만들어 지기 위해서 나오는 워딩과 카피들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글에 대해 쉽게 말을 하다니 화가 났다. 하루는 그가 점심시간에 대뜸 내게 전화를 해서는 브랜딩에 관심이 생겼다며 내게 브랜딩 마케팅 관련에 대한 서적을 추천해 달란다.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한 가지 분야에 대해 깊이 공부하는 것도 어쩌면 수십, 수백 년이 걸려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디서 내게 마케팅과 브랜딩을 논하지? 화가 솟아올랐다.

그에게 글쓰기는 아주 가볍고 쉬운 거였으니까. 쉽게 조금만 공부하면 되는 거. 그냥 그 정도에 그친 다는 게 너무도 화가 났다. 나는 글 쓰는 게 무겁다. 특히 외주는 더 그렇다. 그래서 항상 자신 없는 건 자르는 편이다. 하지만 도의적으로 도와줘야 하니까, 같이 하자고 하니까 돈이 적어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외주를 해주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같이 하고 싶지가 않다. 내게 글 쓴다는 의미는 그 사람이 글 쓰는 의미와 다르다. 새로운 영역, 접근하기 쉽기 때문에 마치 본인이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며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모든 글자와 이야기에는 다 의미가 있고 그것들이 살아 숨 쉰다. 그런데 그것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그에게서 정이 뚝 떨어졌다. 그까짓 거 글 조금만 쓰고 돈을 받으면 된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과연 그 사람이 정말 박사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결국 그 사람과 나는 호기롭게 싸웠다. 내가 삔또가 상한 건 저 일화보다 더 많다. 세상에 쉽게 쓰인 글은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 한편을 덜어내기 위해, 혹은 힘 빼고 쓰는 글은 있어도 정말 쉬워 보여서 쓰는 글은 그 사람의 인격처럼 가볍다고 생각한다. 그는 마지막까지 내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 입맛에 맞는 외주만 하냐고. 그냥 돈 벌려는 속셈이냐고. 그 무렵 일이 많았는데, 나 같은 경우 캐릭터를 잡아 이야기와 신을 쓰는데 오래 걸리고 연습이 필요하다. 돈을 안 받아도 된다. 안 하겠다. 정중히 거절을 했다. 병맛 코드와 코믹 재미요소가 내가 잘 쓸 거 같다며 그 사람은 끝까지 내게 시나리오건을 요청했다. 그건 강요였다. 그냥 막 쓰면 되는 거 아니냐, 가벼운 거 아니냐, 대충 쓰다 보면 되지 않냐고 묻자 너무 화가 났다. 정확히 말하면 가슴에서 열 딱지가 달아올랐다. 브런치에서 친한 J작가에게 물어보니 그건 ‘가스 라이팅’이나 다름없단다. 너무 화가 났다.

나는 글에게 진심인 사람이다. 진심이기 때문에 대충 못쓴다. 대충 쓸 바엔 안 쓴다. 나에게 글은 대충이 아니니까. 말과 글은 인격을 담는다. 누군가는 글 쓰는 게 정말 쉬울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이건 내 업이고, 내가 먹고사는 일이다. 그걸 함부로 말하는 그 사람에게 묻고 싶다. 역으로 되묻고 싶다. 당신이 그렇게 떳떳한 ‘박사’라는 일. 그것도 쉽다고 말하면 당신은 어떨 것 같냐고. 소중한 것은 계급, 신분, 위치를 무시하고 다 소중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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