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5학년실화냐' 3편
지난 달 25일, 2019 졸업설계 컨셉마감이 끝이 났다. 매년 그러하듯, ‘공유공간의 활성화’, ‘지역사회에 좋은 영향’ 따위의 문장은 빠지지 않았다. 이런 고민들은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남과 살아나가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산다'는 것도 '함께'한다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룸메이트와의 트러블로 자취를 결심한 친구들은 너무나 많고, 설계실을 옮기는 친구들의 이유에는 ‘설계실 분위기가 안 맞아서’가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남은 커녕 이 한 몸 건사하기도 만만치 않은 세상이다. 더불어 사는 미래, 과연 오긴 하는 걸까.
아주 어렸을 적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친구랑 결혼은 하고 살면서, 각자 애인은 따로 두면 좋겠다고. 실소를 터뜨렸던 어른들의 예상과는 달리 나는 여전하다. 남의 삶을 존중없이 재단하는 사람들이 싫은 것은 마찬가지고, 오늘도 새로운 타입의 가족을 꿈꾼다. 그러던 중, 어제 책 한 권을 읽었다. 제목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혼자도 싫고 결혼도 싫었던 김’과 ‘황’은 각자가 키우던 고양이 둘을 데려와 w2c4 체제를 구축한다. 말하자면 새로운 가구형태랄까. 집을 같이 사고 각자의 고양이를 데려와 총 여섯식구의 한 가정을 만들어 낸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거다’ 외쳤다. 사실 '독신으로 살지 않을까'하고 자주 생각하면서도 ‘혼자 아프면 어떡하지’, ‘집에 도둑들면 어떡하지’ 등의 고민엔 쉽사리 답을 내지 못했는데 저런 방법이 있었다니. 이렇게 참신하고 귀여우며 쉬운 발상이 또 어디겠냐고! (나는 맨날 스마트홈이 빨리 발전하기만을 기도했다 로봇이 나를 구원하기를)
나는 진지하게 어떤 친구랑 살면 좋을 까를 고민했다. 책에서 ‘김’이 ‘황’을 동거인 물망에 올려놓고 검증했던 것처럼 머릿속에서 여럿을 떠올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D랑은 식습관이 맞지 않아서, H는 다 좋은데 왠지 결혼할 것 같아서 힘들 것이다. M과 N은 둘 다 엄청 바쁘게 살 것이니 도무지 얼굴을 못 볼 것 같고, I는 머리카락 떨어지는 것을 싫어해서 안된다. 이렇듯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나는 채식주의자와는 살 수 없고, 평생 머리카락을 쓸어내는 삶은 상상도 안 간다. 괜찮은 동거인을 고르려니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것 정도는 넘어갈 수 있는 지, 무엇만은 포기할 수 없는지. 생각해보니 이성경은 좀처럼 포기하고픈게 없는 인간이고, 맞추기가 참으로 까다로웠다. 하긴, 평생 같이 산 울엄마랑도 맨날 싸우는 데 별 수 있나.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남과 살 부비며 살고 싶다. 함께 저녁을 먹고, 맥주 한 잔을 나눌 가족을 가지고 싶다. 열이 날 땐 누군가 보호자가 돼줬으면 좋겠고, 나무결이 예쁜 가구를 같이 고를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긋하게 싸워도 결국엔 집이 될 누군가를 바란다. 그래서 결혼은 싫어도 가족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매 설계시간, 우리는 꼴딱 밤을 새고 우드락 부스러기를 들고 강의실로 향한다. 처음에는 비록 초라할지라도 3개월 뒤 그 우드락 부스러기들은 그럴듯한 모델로 완성된다. 혼자도 혼인제도도 싫은 ‘김’의 고민은 ‘김’과 ‘황’을 새로운 가족으로 탄생시켰다. 뭐 천지개벽할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냥 지금보다 나았으면 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사실 더 나은 미래란 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일에 대한 욕심, 그 행동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다가오는 식이다. 왜 사랑도 카톡 한 줄과 초콜릿 한 조각이 쌓여 완성되지 않은가. 그러니 미래, 거창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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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Elena Koychev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