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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적 직장인 Oct 02. 2019

11시엔 이불을 덮겠지만

에세이 '5학년실화냐' 4편

마감을 했다. 졸업 설계 마감이니 장장 5년간의 레이스가 끝이 난 것이다. 더는 꼴딱 밤을 새고 대낮에 들어갈 일도, 3시간쯤 자고 나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일도 없다. 편의점에서 달에 몇십씩 쓸 일도 없을 것이다. 사실 진짜 끝은 2학기 종강날에야 오지만 졸업 전시 준비는 얼추 마무리가 됐으니 이 정도면 ‘끝’이라 불러도 되지않을 까. 이제부턴 8시에 일어나고 11시엔 잠드는 삶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마감 직전,  편의 잡지를 읽었다. 이번  타이틀은 <오늘도 야근을 마치고>. 글들이  좋았는데,  가지 아쉬웠던 점은 나의 밤샘에는 그들과 동류의 감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삶에 대한 고찰  그런  말이다. 내가 글러 먹은 인간이기 때문인지, 잡지의 주제가 밤샘이 아니라 야근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잠을   때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욕을 중얼거리며 방으로 기어들어 간다. 밤을 새우고 점심시간쯤 들어가는 길이면 허리는 끊어질  같고 ‘지금 들어가도 3시간이면 많이 자고 나온 이라는 생각에,  ‘오늘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많이 남았지라는 고민에 머리가 아프다. 그런 연유로 어느 순간부터는 안자고 48시간 60시간씩 살아가는 짓은 하지 않는다. 대신 설계실에서 살며 매일 서너시간씩이라도 꼬박꼬박 자기로 했다. 이번 졸업 설계 마감   선배는 5일간 집에  들어갔다. 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워라벨을 챙긴 셈이다. 하지만 겨우 3시간씩 자는 것이 워라벨을 지키는 일이라는  슬픈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Vostok vol.15 - 오늘도 야근을 마치고, 보스토크 프레스


그럼에도 아예 설계를 놓지는 못하는 것이, 가끔은 구질한 옛사랑을 하는 듯한 기시감이 들 때도 있다. 건축을 사랑이라고 칭하기엔 실로 마음이 그 정도였는지, 너무 감성적인 말이 아닌지 오글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만큼 끝까지 놓지 못했던 게 내 인생에 사랑말고 더 있었던가. 바닥의 바닥까지 보고나서도 놓지 못하고 너덜거리던, 시간이 만드는 무력감에 비로소 정신이 들었던 어느 날. 아무리 시선을 따라잡으려 해도 자꾸만 멀어졌던 그와 이 망할 전공은 참 닮아있다. 다른 점이라면 바닥을 보이는 것은 나뿐이고 건축은 늘 굳건하고 아름답게 서 있다는 것.


사실, 5년간 배운 것을 생각해보면 너무 많다. 농담처럼 아무것도 못 배웠다고 해댔지만 진지하게 생각하면 너무도 많이 배웠다. 도무지 감당이 안 될 지경이다. 앞으로 남은 배움 역시 끝이 없고, 잘하는 사람이 깔리고 깔린 판에, 그들보다 열심히 할 자신조차 없다. 그래서 모든 게 자주 질투 나고 미웠더랬다. 어쩜 그렇게 결정을 잘도 내리는지, 분명히 내가 더 열심히 한 것 같은데 깔끔하게 시간을 맞춘다거나, 저비용 고효율의 pt를 해내는 능력은 어째서 내 것이 아닌지. 아무리 옆에서 봐도 못하는 것을 척척 해내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선배였다가 유명한 건축가였다가 이름 모를 어린애였다가를 반복했다. 가끔은 설계 그 자체가 미움의 대상이 될 때도 있었다.


더 화가 났던 것은 10시간을 투자한 것보다 그냥 급하게 10분 만에 그려간 게 더 칭찬받을 때였다. 칭찬한 교수나 친구가 아니라 보는 눈이 없는 내게로 화살은 향했다. 솔직히 이제껏 살면서 이 취향이 잘못됐다거나 보는 눈이 없다고 생각한 적은 정말로 없다. 늘 까다로운 취향에 대해 묘한 자부심 같은 것을 가지고 살아왔으며, 대체로 나는 그런 것에 있어 내가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건축은 당최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들도 다 놔줘야 할 때가 왔다. 5년간의 열등감 레이스도 끝이 난 것이다.  


‘시원섭섭’이란 말이 정확할 것 같다. 내겐 건축계에서의 더 이상이 없다는 게, 가슴팍에 건축가나 디자이너 타이틀을 붙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열등감 외에도, 잊을만하면 불합리가 합리가 되는 학과분위기나 몇몇 사람들의 태도는 애진작에 날 아주 질려버리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과 배움을 정말 많이 얻었다. 아마 다시 돌아간다면 여기 말고는 갈 데가 없지 않을까. 흰 벽을 타고 떨어지는 빛과 휘어지는 나무가 만드는 그림자, 매끄러운 바닥을 타고 다니는 분주한 사람들은 더는 내 것이 아님에도, 나는 어쩐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싶어질 것만 같다.


https://skkusoa.com/featured-story/despite-being-able-to-sleep/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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