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너무도 따뜻한 과학적인 레시피
부스를 정리하는 날은 비가 내렸다. 박람회 내내 맑다가 마지막 날 오후부터 부슬부슬 가늘고 약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실상 철수 직전인 시간대에 돔 천장을 두드리는 빗소리까지 들으니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미 정리 중인 부스도 눈에 띄었다. 우리도 1시간 후면 들어갈 준비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나는 텀블러에 든 따뜻한 캐모마일 티를 한 모금 마셨다. 가을의 샌프란시스코는 청명했다. 내심 내가 익숙한 다소 쌀쌀하고 해무가 있는, 조금은 흐린 샌프란시스코가 그리웠다. 떠나기 전날에서야 비가 내려 내 기억 속에 담긴 도시의 분위기를 비슷하게나마 되살려 주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그룹을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곧 우리 부스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동료들을 조용히 부르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룹은 이내 우리 부스에 다다랐다.
<시연 좀 볼 수 있을까요?>
나는 재빨리 매뉴얼대로 대화를 입력했다. 번역 텍스트가 빠르게 화면에 나타났다. 우리 인공지능 번역 솔루션의 초점은 문화적인 뉘앙스와 어투를 반영한 자연스러운 의역이었다.
<요청하는 내용으로도 시연을 보는 게 가능한가요? 특히 우리 회사는 북유럽 고객이 많기 때문에 해당 언어의 번역도 자연스럽게 이뤄지는지가 중요해요.>
<물론입니다. 요청하시는 내용을 원하는 언어 간 번역으로 시연 가능합니다.>
적용 가능한 언어를 연구할 때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스웨덴어, 핀란드어, 아이슬란드어에도 세심히 공들인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계약서 문구로 추가 시연을 해 본 방문객들은 빠르게 대화를 주고받더니 그제야 명함을 주고는 미팅과 협상을 요청했다. 동료 둘이 자료를 챙겨 미팅룸으로 방문객을 안내했다.
“필요하면 바로 연락할게. 또 시연 필요하면 잘 진행해 줘.”
들어가면서 급히 이야기하는 동료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캐모마일 티를 집어 들고 한숨을 돌렸다. 텀블러를 확 기울이는 바람에 뜨거운 차가 순식간에 목으로 넘어가 컥컥거렸다. 마무리하는 시간대에 뜻밖의 방문으로 다시 바짝 긴장을 하고 말았다.
박람회 막바지가 다가오자 상반된 마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누구라도 계약이 확실한 고객이 한 회사라도 더 왔으면 하는 바람과, 이제는 쉬고 싶은 마음. 부스에 명함은 꽤 쌓였지만 계약 성사까지 명확해지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회사의 계약 규모에 따라 어쩌면 채용 재계약 여부가 결정될지도 모르는 나의 입장에서는 박람회가 중요한 기회 중 하나였다.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던 찰나, 미팅룸이 열렸다. 인사 후 돌아와 자료집을 내려놓은 윤 대리가 말했다.
“지금까지 온 회사 중에 반응이 제일 괜찮은 것 같아. 얘기는 잘 된 것 같은데. 빨리 철수했으면 아까울 뻔했다.”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피곤한 나머지 크게 반응해 주지를 못했다. 박람회에 있는 동안 이틀 밤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날 진행된 일이나 문의사항을 두고, 한국에 있는 담당자와도 소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6시간의 시차 속에서 한 몸으로 두 곳에 존재하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오늘은 잠을 푹 잘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우리 부스도 마지막 정리 대열에 합류하면서, 동료들은 호텔 라운지 바에서 한 잔 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빨리 가서 씻고 침대에 드러누울 생각밖에 없었다.
박람회장을 나서 비가 섞인 샌프란시스코의 공기를 들여 마시고는 갑자기 생각이 달라졌다. 공기 중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섞여 있는 게 분명했다. ‘그’ 컵케이크를 먹고 가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것이라는, 경고음에 가까운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에 대한 강한 욕구가 든 것은 오랜만이었다. 호텔로 두어 걸음 걸어가던 나는 방향을 바꿨다. 수년이 지났어도 아는 길이었다. 바닥에서 가볍게 찰박이는 소리가 났다.
대학생 시절의 나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꽤나 자신만만하고 활달한 사람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일도 기꺼이 해보는 여유도 있었다.
처음 해보는 미국 생활이었다. 한 대학의, 방학 중 여름 세션(Summer Session) 수업을 우연히 보고는 관심이 생겼다. 데이터 사이언스로 큰 줄기의 진로를 정해둔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두 달 반 가량의 수업을 위해 TOEFL 성적부터 숨 가쁘게 마련해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여름에 들어섰는데도 크게 덥지 않은 도시가 마음에 들었다. 숨을 들이쉴 때면 공기 중의 차가운 안개가 코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한층 예민하게 깨어났다.
수업도 재밌었지만 처음 해보는 해외 생활에 학업 이외의 위시 리스트를 실행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파티에 가보기도 하고, 학교에서 열리는 사진 공모전에도 참가하고, 미술관도 곧잘 다녔다. 그야말로 대학생으로서의 삶에 충실했다.
학교 옆 컵케이크 가게의 레시피 콘테스트에 참가한 것도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다. 교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70년이 넘는 전통의 컵케이크 가게. 낡았지만 아늑했고, 학생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 학교의 학생이라면 그 가게의 가장 좋아하는 컵케이크 하나는 댈 수 있어야 했다. 샌프란시스코 새내기인 나조차도 오렌지 초콜릿 컵케이크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열린 레시피 콘테스트는 방학 기간 중에도 꽤나 화제였다.
워낙 디저트를 좋아했던 데다 1등 상금이 200달러였다. 순위권에 들면 내 레시피로 만든 컵케이크가 메뉴에도 오를 예정이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 케이티와 팀을 짜서 재미 삼아 도전했다.
참신한 레시피를 고안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가 생각한 웬만한 레시피는 이미 존재했고, 아주 독특하게 해 보자니 이상하거나 맛의 조화가 깨지는 괴상한 조합이 탄생했다. 그게 아니면 재료비가 너무 높아져서 만들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캐비어를 얹는 레시피까지 생각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
우리는 이미 팔고 있는 컵케이크를 더 맛있게 만드는 방향으로 발상을 바꿔보기로 했다. 타깃은 우리 둘 다 가장 좋아하는 오렌지 초콜릿 컵케이크였다.
<근데 이미 너무 맛있어서 더 이상 맛있게 만드는 건 무리야.>
내가 다소 심드렁해진 채로 말했다.
<아냐. 분명히 가능해. 나는 항상 아주 조금은 더 맛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케이티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우리는 약간 엉뚱하게도, 한창 공부 중이던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오렌지 초콜릿 컵케이크 레시피를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꾸었다. 솔직히는 수업 과제보다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 레시피가 정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오렌지 초콜릿 컵케이크를 만드는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교내 공용 키친에서 따라 해보니 그럴싸하게 꽤나 맛있는 컵케이크가 완성되기는 했다. 갓 만들었을 때는 우리 둘 다 ‘더 먹고 싶어!’를 외쳤다.
가장 맛있는 반죽 재료 구성의 비율, 온도 등을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표기하고 나니 연구 논문의 한 부분 같았다.
사실 그 어려운 숫자들은 대단한 도움이 안 되었을 것이다. 컵케이크 위에 올린 오렌지 젤리, 반죽에 추가한 오렌지 껍질, 다크 초콜릿과 밀크 초콜릿을 한 층 씩 분리해서 넣어 달콤 쌉싸름한 맛의 균형을 맞춰 본 것이 새 레시피의 핵심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레시피 제출 후 수상자 발표까지의 열흘은 꽤나 떨리고 설레는 시간이었다.
가게 유리에 심사 결과가 붙었다. 우승은 놓쳤지만 독창적 접근 방식을 인정받아 일종의 특별상(Most Creative)을 받았고, 가게의 오렌지 초콜릿 컵케이크의 레시피는 우리의 아이디어로 수정되었다. 바꾼 후에 손님들의 리뷰도 받았는데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라는 말이 특히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나와 케이티는 컵케이크 가게의 주인 아주머니와 예전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가게의 분위기만큼이나 따뜻한 사람이었고, 딱 우리 엄마의 또래 즈음 되는 나이였다. 그리고 우리 나이 정도의 딸이 뉴욕 주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 중이었다. 우리는 쇼케이스에 놓인 우리의 컵케이크가 자랑스러워 자주 사러 갔지만, 의도치 않게 자주 받아오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우리의 레시피를 두고 ‘과학적 컵케이크’라고 표현했다.
여름 세션 수업이 모두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나는 고마움을 담아 스카프를 선물했다. 그리고서는 평생 무료 컵케이크 티켓 같은 걸 얻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언제든 먹고 싶은 것으로 마음껏 먹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나는 똑똑히 들었다.
비는 여전했고, 갑자기 이 쪽 거리가 맞는지 헷갈렸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켜려는 찰나,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점이 보였다. 여기가 맞았다. 아직 내가 잘 기억하고 있구나.
나는 오른쪽으로 꺾어 계속 걷기 시작했다. 아직 우리의 오렌지 초콜릿 컵케이크가 그대로 쇼케이스에 있을까.
거리의 끝에 다다랐다.
없었다. 가게가 없어졌다. 20여 분을 넘게 걸어온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하긴 아주머니 연세를 생각하면 문을 닫았을 만도 했다. 길을 찾아올 자신이 있어 검색도 해보지 않고 온 것이 잘못이었다. 피곤함과 아쉬움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상하게 보이겠거니 해서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데 눈앞에 하얀 바탕에 핫핑크 폰트로 무언가 적힌 쇼핑백이 휙 지나갔다. 익숙한 디자인이었다. 코 끝에 익숙한 냄새가 스쳤다. 나는 지나간 사람을 눈으로 좇아 뒤를 돌아보았다. 다시 가만히 서서 앞을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들고 가는 같은 쇼핑백이 하나, 둘.
원래 있던 곳에서 아주 좁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각선으로 맞은편에, 내가 찾던 그 가게가 있었다. 간판은 그대로였는데 예전보다 두 배는 넓은 것 같았다.
사실 요즈음 시야가 좀 좁아졌다.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다행이었다. 나는 다시 좀 가벼워진 다리를 이끌고 가게 앞 계단 앞에 섰다. 문 옆에는 올리브 나무 화분이 하나 서 있었다.
테라코타 화분에 머문 시선과 함께 갑자기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예전의 나를 기억할지도 모르는 이와 마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 컵케이크를 먹을 생각에만 집중하다가, 아주머니를 다시 보게 될 것이란 생각을 깊게 하지 못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보고 싶었던 이를 만나는 순간은 기다려지는 게 맞다.
다만 나는 아직, 그 보통의 경우를 되찾지 못한 사람이었다.
미국 대학의 여름 세션까지 찾아갈 만큼 나는 공부에 열정이 있었다. 책을 좋아했는데, 책이 알려주지 않은 것에 다소 무지했다.
열심히 살아온 나의 경력은 첫 직장에서 ‘엘리트’라는 포장지가 되어 일을 더 시켜도 되는 명분이 되었다. 너는 이런 거 쉽잖아, 할 줄 알잖아, 해외 명문대 수업도 들었던데.
처음에는 능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했다. 입사를 간절히 원하던 회사이기도 했다. 야근하는 날이 며칠이 되고, 몇 주가 되고, 몇 달이 되었다. 점점 내게 일이 가볍게 던져지고 무겁게 쌓였다. 야근 결재를 몇 번씩 올리려다 삭제했다. 나의 능력을 의심받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고, 불편한 상황이 싫었다. 아직 자정까지 할 일이 밀린 나의 앞에서 상사와 팀원들은 가볍게 가방을 들고 퇴근했다. 책에서는 그런 상황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을 미처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스스로 터득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야근이 싫어 새벽 4시 50분에 기상해서 출근하던 어느 날, 버스에서 갑자기 심장이 조여오더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경험한 적 없는 공포가 몰려왔고 곧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옆에 있던 사람이 버스 기사의 도움을 받아 응급실에 데려다주었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기를 두어 번. 사실 어떤 증상인지 이미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공황장애, 공황발작.
퇴사 후 1년 간은 치료만 받았다. 다시 사회로 나가기가 두려웠다. 다행히도 빠르게 치료를 시작한 터라 경과가 좋은 편이었다. 깊은 고민 끝에 근무 조건을 철저하게 따져서 현재 회사에 입사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잔 이번 출장길은 좀 달랐지만, 평소에는 집에 와서 저녁도 먹고, 운동도 할 수 있었다. 한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정규직을 고집하지 않았다. 또 하나의 불안 요소가 되기도 했지만 적절하게 다스려 나가는 법을 배워가게 되었다.
많이 호전됐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더는 학생 시절처럼 생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의 모습만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지금의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토록 강하게 원한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다. 나는 진한 초콜릿과 상큼한 오렌지의 완벽한 조합이 그리웠다. 생각해 보니 그때에는 더 잘 먹어서 지금보다 몸무게도 많이 나갔다. 지금은 나이도 들었고, 시간도 흘렀고. 알아보기 어려울 이유가 산더미였다.
무엇보다 나를 기억할 것이라 걱정하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나는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손잡이를 잡고 문을 밀었다.
가게의 냄새는 그대로였다. 표현하자면 달콤한 반죽향 같은 것이었다. 쇼케이스도 예전보다 넓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는 바로 찾아냈다. 둘째 줄 중간 즈음, 나의 과학적인 오렌지 초콜릿 컵케이크가 있었다. 약간 과장하면, 부모가 자식을 어떤 순간에도 알아보는 것처럼 그 컵케이크에 시선이 꽂혔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주인 아주머니가 포장 상자를 들고 계산대 앞에 나타났다. 아직 나를 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약간 눈치를 보며 쇼케이스에 다가가 무엇을 포장해 갈지 빠르게 훑었다. 드디어 마음을 먹고 계산대 앞에 섰다.
<오렌지 초콜릿 컵케이크 하나 주세요.>
주인 아주머니가 계산대 아래 서랍을 닫으며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레드벨벳 하나랑, 얼그레이 바나나 컵케이크도요.>
이러다가는 알아챌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고개를 들려는 순간, 아주머니는 웃으며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예전과 같은 온기 어린 표정이었다. 알아보지 못해 마음이 편했다.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포장 상자를 건네받으며 아주 잠깐 혹시 나를 기억하는지 묻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불쑥 솟아오른 마음을 잘 접어 넣고는, 빠르게 인사를 하고 돌아 나왔다.
다시 찰박이는 길을 지나 겨우 호텔에 돌아와 샤워를 했다. 우유도 사들고 들어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컵케이크를 상자를 여는 순간이었다.
잘못 보았나 싶어 어린 아이처럼 ‘하나, 둘, 셋’을 입으로 읊었다. 한 개만 주문한 오렌지 초콜릿 컵케이크가 세 개나 들어 있었다.
옆에는, 예전 그 시절에도 늘 탐냈던 ‘언제든 찾아오세요’ 카드가 꽂혀 있었다. 원하는 컵케이크 하나를 무료로 증정해 주는 카드였다. 그 카드는 결코 처음 온 손님에게 선물로 주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약간 복잡하지만, 한 구석에 무언가가 차오르는 마음으로 오렌지 초콜릿 컵케이크를 한 입 가득 물었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기억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쌉싸름하면서도 상큼 달콤한, 몇 년을 그리워했던 맛이 입 안에 가득 찼다. 상상보다는 역시 현실이었다. 오렌지 젤리는 탱글하고, 빵에서는 시트러스 향이 나고, 초콜릿에서는 깊고 진한 단맛이 녹아내렸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입맛이 없어서 점심을 대충 먹은 탓인지 더 배가 고팠다. 오렌지 초콜릿 컵케이크는 질리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세 개를 몽땅 먹어 버리고 말았다.
컵케이크 무료 제공 카드를 뒤집어 보았다. 가게의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어쩔 수가 없다. 오렌지 초콜릿 컵케이크를 하나 더 먹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한 번만 더, 가보는 수밖에.
#이 글은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