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쏟아지던 여름밤의 맛
그곳은 8월 초 한여름에도 밤공기가 서늘했다. 줄 지어 놓인 하얀 게르 뒤편으로는 거대한 바위 절벽이 깎아지른 듯 우뚝 서있었고, 앞으로는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우리가 선 게르 캠프 외에 인간의 힘으로 지어진 건축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토록 날 것 그대로의 대자연은 그동안 사진으로나 보아왔던 것이라, 아이러니하게도 눈앞의 광경이 생경하기보다 언젠가 어디선가 조우했던 풍경인 것 같은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한 달에 한 번, 이 시기에 달 없는 밤이 찾아온다고 했다. 우리는 삭월의 밤하늘에 쏟아지는 은하수를 보러 부러 시기를 맞춰 이곳을 찾았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가이드는 한국말이 능숙했다. 별 보기 좋은 시간을 묻자 그녀는 새벽 세시에서 네시 사이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찬란한 별빛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밤공기가 찰 테니 따뜻한 겉옷을 입고 나오라며, 구름 없이 하늘이 맑아야 할 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우리는 새벽 세시에 알람을 맞췄고, 오두방정을 떨며 별을 보기 위해 준비했던 물품들을 게르 출입문가에 가지런히 꺼내두었다. 에어베드와 담요, 삼각대, 맥주 두 캔과 주스 한 캔.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너 정말 자다가 일어날 수 있겠어?"
"나도 별 볼 거야. 그러니까 나 꼭 깨워야 해."
"자는데 깨우면 막 화내는 거 아니야? 안 일어난다고 할 거 같은데."
"아니야. 일어날 거니까 꼭꼭 깨워."
아이는 철석같이 약속을 했다. 남편과 나는 반신반의하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서로 마주 보았다. 저 녀석이 과연 일어날까.
예상대로 아무리 깨워도 아이는 일어나지 못했다. 벌써 여행을 시작한 지 사흘이 지났고, 울란바토르에서 이곳까지 대여섯 시간 동안 비포장 도로를 달려왔다. 어른도 이렇게 피곤한데, 아이가 쌓인 여독을 이겨내고 새벽에 눈 뜨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눈 뜰 줄 모르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우리는 키득키득 웃었다.
게르를 나서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카메라를 능숙하게 조작할 지식 따위는 가지지 못해,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본 방식대로 초점과 노출을 맞췄다. 오늘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겨야 할 이유는 많다.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가 여기저기 자랑하기 위해, 그리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에게 별빛을 사진으로나마 보여주기 위해서.
땅바닥에 에어베드를 놓고 나란히 누웠다.
"와..."
잠시 말을 잃었다. 별이 쏟아진다는 표현은 이런 걸 말하는 거였구나.
한동안 우리 사이에 머무르던 고요에 잠식되었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맥주캔을 들었다. 하늘에서부터 내려앉은듯한 정적 사이로 딸깍, 맥주캔 따는 소리가 울렸다. 마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서로의 캔이 부딪혔다. 고생했다든지, 너와 함께여서 좋다든지, 앞으로도 행복하자든지 그런 말 따위는 필요 없었다. 한 모금 두 모금, 별이 쏟아지는 여름밤의 맛을 즐겼다. 그거면 충분했다. 함께니까 그거면 충만했다.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한다는, 상큼한 제목에 홀려 여기까지 왔다. 열정 가득한 여러 작가님들 사이에서 함께 읽고 함께 쓰는 경험은 생각보다 아찔했다. 덜컥 매거진 참여를 신청하고서도 몇 번이나 어쩌려고 손을 들었을까 혼자만의 이불킥을 날렸다. 몇 번은 쓰다가 끝내 마무리를 짓지 못했고, 몇 번은 가까스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나눔 사이로 새삼, 그렇지 독자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이지, 하는 동문서답, 아니 아무도 묻지 않은 혼자만의 답도 얻었다. 서툴지만 톡톡하게 쌓인 여름날이었다.
그리고 기지개 한 번 켜고, 또 출발해 본다. 가을을 향해. 다음 계절은 아마 더욱 좋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