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엄마, 나의 한계

너만큼이나 나도 중요해서

by 정벼리

평일 오후 3시는 마의 시간이다. 사무실에서도 한창 바빠지는 시간인데, 자꾸 휴대전화가 울린다. 일전에 한 번 소개했던 아이의 '오후 3시 쓸데없는 전화하기'는 이제 얼추 고쳐졌지만, 그 무렵이 학교나 학원 일정이 한차례 끝나는 시간이라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 사방에서 엄마를 찾는다.

오후 세 시에 아이한테 자꾸 전화가 온다 / 별이는 별이 마음대로 해, 엄마는 엄마 길 갈 거야. (1)


한 주의 시작을 달리던 월요일 오후에도 엄마를 찾는 전화벨이 울렸다. 요 녀석이 오늘은 또 무슨 일일까. 전화를 받으면서 동시에 습관처럼 경계선도 그었다.


"별이야, 무슨 일이야? 엄마 지금 바쁜데."


아이는 주저주저 말을 꺼냈다.


"엄마, 미안해. 내가 방과 후 수업을 하다가 넘어져서 좀 다쳤는데, 선생님께서 병원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셔서."
"많이 다쳤어?"
"아니, 다리를 삔 거 같은데 많이는 아니야. 엄마 바쁘면 그냥 피아노 학원 갈게."
"선생님 좀 바꿔줘."


선생님은 아이가 다치게 된 경위를 상세히 설명하며, 무릎에 타박상이 생겼고 발목이 접질린 것 같다고 했다. 뼈는 괜찮아 보이지만 병원에 가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권유에, 머릿속엔 찰나의 고민이 스쳤다. 뭐 그렇게 크게 다친 건 아닌 거 같은데 꼭 지금 병원에 가야 하나? 바쁜 월요일에 조퇴한다고 말하기 좀 민망한데. 아니지, 그래도 선생님이 전화까지 한 걸 보면 크든 작든 다친 건 사실인데, 퇴근까지 기다리라고 하면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다쳤다는데, 병원은 그래도 바로 데려가야지. 조퇴하고 곧 데리러 갈 테니, 아이에게 학교 정문에서 기다리라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의 일이 있는 이상,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아이가 부른다고 하여 언제든 만사 내팽개치고 달려갈 수만은 없다. 오늘 해야 할 업무도 분명 중요한 일이고, 경력이 늘어날수록 나의 결정과 책임이 가져올 결괏값은 자꾸만 커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이 너무 중요하다. 유능한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 무엇을 맡기든 믿을 수 있는 사람... 사회에서의 평가와 성취가 주는 자기 만족감을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문제는 아이도 엄마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쳐서 전화를 하면서도 미안하다는 말부터 내놓는 것이겠지.


예기치 못한 이벤트가 생길 때마다 아이는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낳아달라 부탁한 적도 없는데 덜컥 세상에 내어 놓았으니, 내가 저를 돌보고 키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끼니때 밥을 챙겨줘야 하고, 몸에 맞는 옷을 마련해주어야 하고, 계절에 맞는 이불을 깔아주고, 다치면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해줘야 하는 것이 마땅한 부모의 책임인데도 아이는 요구할 일이 생기면 미안한데,라고 말을 꺼낸다.


엄마, 미안한데 오늘 저녁엔 초밥이 너무 먹고 싶어.

엄마, 미안한데 바지가 짧아져서 새로 사야 할 것 같아.

엄마, 이불이 얇은지 어젯밤에 추웠어. 미안한데, 두꺼운 이불 좀 꺼내줘.

엄마, 내가 다쳐서 병원에 데려가느라 회사 빠져서 미안해…


그때마다 아니라고, 너를 보살피는 건 엄마아빠의 당연한 일이라고, 세상에서 너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끊임없이 속삭여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계속 사과의 말부터 건네는 것은 아마도 둘 중 하나겠지. 미안한데,라고 말을 꺼냈을 때 엄마가 속삭여주는 사랑을 괜히 한 번 더 확인받고 싶었거나, 아니면 네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전적으로 신뢰받기엔 나의 말과 표정이 묘하게 어긋났거나. 제발 후자는 아니길,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시점의 나에게 진심으로 바란다.


세상에서 네가 가장 중요해. 너보다 중요하고 급한 일은 없어.


흠... 사실 뭐 120% 투명한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너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건 사실인데, 솔직히 너만큼 나도 중요하긴 해서. 이기적인 엄마의 한계가 나도 늘 미안해. 하지만 언젠가 네가 커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면, 나는 그때의 너에게 같은 말을 들려주고 싶어. 너도 그 아이만큼이나 중요하단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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