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흘러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작년부터 벼르던 연휴였다. 금요일 개천절부터 주말과 추석 연휴, 한글날이 나란히 붙어 연달아 이레가 빨간 날이었다. 거기에 10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다음 주말까지 장장 열흘을 쉴 수 있다니, 이런 연휴를 과연 내가 퇴직하기 전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어머, 그렇다면 이 기회는 절대로 놓칠 수 없어! 나는 연초부터 부지런히 장엄한 계획을 짰다. 온갖 감언이설로 어른들을 꼬드긴 끝에, 이번 연휴에는 온 가족이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로 일찌감치 합의를 보았다.
누군가 그랬다지. '조상덕이라곤 1도 못 본 인간들만 음식상에 절'한다고. 한 평론가는 이 말을 대한민국의 명절을 바꾼 전설의 댓글이라고 평했다던데, 나 역시 무릎을 탁 치는 바이다. 큰집이 따로 있기에 명절날 차례상 차릴 일도 없건만, 그 어떤 명절날에도 연휴를 즐기며 순수하게 놀아본 적이 없다. 평소에 자주 못 보는 사이도 아니면서 굳이 명절날이면 옹기종기 집에 모여 전을 부치고, 설날 아침에는 떡국을 끓여내고(평상시 아침은 다들 빵으로 해결한다), 추석에는 송편을 빚어냈다(그래놓고 다들 잘 안 먹는다). 명절 끝이면 피곤에 절어 늘 끝도 없이 잠이 쏟아졌다.
이른바 가풍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 법이고,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는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 우리 집 어른들 지론이지만 사실 솔직한 내 견해는 그렇다. 백날천날 보고 배웠어도, 부모님 세대가 끝나는 순간 이 또한 끝일 것이라는 어렴풋한 생각이다. 모르긴 몰라도, 부모님 사후에 내가 명절이니 다 같이 모여서 송편을 빚자고 제안하면, 내 동생은 사백안으로 나를 쏘아보지 않을까. 언니가 늙어서 치매가 왔나보다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시가의 형제자매가 같은 제안을 해온대도, 내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추석 연휴만큼은 산적꼬치와 송편은 안녕이다. 나도 떠난다, 해외로.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저녁 비행기로 떠나서, 연휴가 끝나는 한글날 저녁 비행기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연휴 앞뒤로 이틀간 연차를 내서 총 열하루의 방학을 만끽할 계획이었다. 출발하는 날은 느지막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집안을 깨끗이 치우고 공항으로 떠나고, 휴양지에서 늘어지게 쉬다 와서, 마지막 사흘간은 매일 요가 원데이 클래스를 참석하려는 알찬 꿈을 꾸었다. 하지만 신을 웃기고 싶으면 네 계획을 읊어보라고 했다지. 시작부터 끝까지 내 생각대로 돌아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회사에서 현안이 빵빵 터져, 연차를 세 번이나 변경해야 했다. 처음에는 2일과 10일 이틀 연차를 신청했다. 그러다 10일에 급한 회의가 생겨, 하루를 취소했다. 긴긴 방학이 토막 나게 되어 속이 쓰렸지만 8일간 쉬고 와서 하루만 일하면 또 주말인 게 어디야,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1일 퇴근 무렵, 갑자기 다음 날 반드시 참석해야 할 보고가 생겼다. 2일마저 연차를 취소하고 출근을 해야 했다. K-직장인이 방학은 무슨. 그냥 헛된 꿈이었다.
느긋하게 집안 대청소를 해놓고 여행을 떠나려던 계획도 자연스럽게 어그러졌다. 퇴근하자마자 부랴부랴 짐을 싸들고, 엉망진창인 집을 뒤로하고 공항으로 떠났다. 시간이 얼마나 촉박한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출근복장 그대로 트렁크만 끌고 현관문을 나서야 했다.
명절날 우리도 좀 쉬어보자는 목적이 무색하게, 여행 내내 몸도 마음도 조급했다. 만 두 돌에서부터 일흔까지의 가족들은 죄다 서로 달랐다. 일어나는 시간도, 잠드는 시간도, 먹고 싶은 음식도, 하고 싶은 놀이도 각기 달라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어디 나서면 대가족 인원이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 누군가 더위에 지쳐가지 않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다. 그래도 명절인데 다 함께 만찬이라도 즐겨야 하지 않겠냐는 부모님을 위해 식당을 수소문하는데, 그 많은 인원이 다 함께 앉을 수 있는 곳을 찾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이번 연휴는 중국 국경절과 겹쳤다더니, 어딜 가도 관광객이 인산인해였다.
여행 중간에 어린 조카는 열감기에 걸려 번역 앱에 의지한 채 병원 진료를 보아야 했고, 우리 아이는 독벌레에 물렸는지 한쪽 다리가 코끼리처럼 부어올랐다. 여행 마지막 즈음에는 아빠가 트레킹 중 넘어져서 온몸에 멍이 들었다. 그쯤 되니 다음 날이 귀국일인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저녁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몇 시간 뒤에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짐은 풀지도 못하고 부라 부랴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해서는 온종일 양 어깨에 흑곰 한 마리씩이 올라선 듯 온몸이 미어지게 쑤셨다. 겨우 하루를 보내고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뛰쳐나오듯 회사를 떠났다. 침대, 침대가 간절했다.
예약해두었던 요가 클래스는 전부 취소하고,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오전까지를 내내 잠으로 채웠다. 깨어나서 TV와 책에 잠시 눈을 고정했다가도 금방 다시 잠이 쏟아졌다. 여행을 다녀온 후라 냉장고가 텅 비어서 해 먹을 것이 없었다. 대충 시켜 먹고 또 잠을 청했다. 계획대로 흘러간 것은 아무것도 없고,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올해도 연휴의 끝은 잠으로 장식했다.
명절치레는 이래도 저래도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어디 쉽게 명절나는 뾰족한 수는 없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