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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친구 초대해도 돼요?

네 친구들이라면 누구든 언제나 환영이야.

by 정벼리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엄마 모임에 나가본 적이 거의 없다. 워킹맘에게 그런 모임은 늘 딴 나라 일이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이후에도, 평일 하교 후에 아이가 집에 친구를 데려와 함께 놀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낮 시간 집이 잘 정돈되어 있을 리도 만무하고, 매일 친정엄마에게 아이 케어를 부탁하면서 아이가 데려온 친구까지 챙겨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끔 아이가 집에 친구를 데려오지 못하는 상황에 아쉬워할 때면, 친구들만 괜찮다면 주말에는 언제든지 초대해도 좋다고 달래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럴 기회가 잘 오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주말에도 각자 학원 스케줄이 있거나, 가족 여행 등 이런저런 일정이 많다 보니 친구 집에 놀러 가는 일이 드물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친구를 초대해서 놀아도 된다는 명제는 늘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잘 사용되지 않는 뒷문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몇 주 전 방학식이 있던 날, 아이가 오랜만에 그 질문을 했다.


“엄마, 우리 집에 친구 초대해서 같이 놀아도 돼요?”
“그럼! 주말이면 언제든지 누구나 환영이지.”
“나랑 제일 친한 은이랑 지아 알죠? 우리 셋이 방학 중에 하루 우리 집에 와서 호두랑 같이 놀고 싶다는 얘기를 했거든요.”
“우리는 이때 빼고는 방학 중 주말에 아무런 일정이 없어. 친구들이랑 날짜 의논해서 정해서 알려줘.”


나는 아이와 함께 달력을 보며 미리 정해진 여행 날짜를 짚어주며 말했다. 그리고 어제, 연휴의 끝자락에 아이 친구들이 우리 집에 다녀갔다.




아이는 아침부터 친구들이 집에 온다며 들떠서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지 거울 앞에서 부산을 떨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바라보았지만, 그 외에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평소처럼 적당히 집만 정리해 두었고,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거나 특별한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마음이 쿵 흔들렸다.


아이 친구들이 방문하기로 약속한 시간에 조금 못 미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한 아이의 엄마가 미리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불편을 끼치지 않을지 걱정이라는 인사와 함께, 아이가 친구 집에 방문한다고 오랫동안 설렜다는 이야기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해 달라는 부탁을 전해왔다. 아이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는 일을 내가 너무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했을까, 와서 놀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고 실망하면 어떡하지, 갑자기 머리가 복잡했다. 부산스럽게 냉장고에 있는 과일을 꺼내면서, 남편에게는 집 앞 편의점에 가서 과자와 초코우유, 딸기우유라도 종류별로 사 오라고 일렀다.


잠시 후 우리 집에 들어선 아이들의 손에는 각자 쇼핑백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한 친구는 큼직한 롤케이크를 가져왔고, 다른 친구는 강아지 액세서리를 사서 예쁘게 포장해 왔다. 너무 고맙다고, 엄마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말하며 선물들을 건네받았다. 동시에 마음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그동안 자주는 아니어도 어쩌다 한 번씩 우리 아이가 다른 친구 집에 놀러 갈 때 나는 이렇게 선물을 챙겨 보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무심했거나 배려가 부족했던 것이었을까.


내가 어렸을 때는 친구 집에 놀러 가는 일은 정말이지 별일 아니었다. 서로의 집에 한 무더기로 우르르 몰려가 놀고는 했다. 누구네 집에서든 집에 있는 먹거리로 간식을 챙겨주시면 감사합니다, 외친 뒤 편하게 먹고 놀다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어른들끼리 아이들의 방문을 두고 따로 연락을 주고받지도 않았고, 누구도 선물이나 먹을거리를 챙겨 보내는 일도 없었다. 이제는 세상이 변했고, 아이를 키우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 변화 앞에서 나는 조금 뒤늦은 듯 서툴러 보였다. 엄마 모임에 한 번도 참여 못한 티가 이렇게 나나 자꾸 자책하게 되었다.




원래는 아이들이 노는 동안 잠시 마트에 다녀오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이 친구 엄마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나는 이렇게 약속해 버렸다. 아이들이 즐겁고 안전하게 놀도록 잘 지켜보고 약속된 시간에 잘 귀가시키겠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동시에 나는 이번 주 장보기는 인터넷 쇼핑몰로 대체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은 이제 충분히 커서 저희끼리 스스로 잘 놀 수 있었고, 위험하거나 제지해야 할 상황도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을 떠나지 못했다. 친구 엄마에게 잘 지켜보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몇 시간 동안이나 그저 방문을 조금 열어둔 채로, 방 안에서 남편과 마주 앉아 각자 책과 휴대전화에 눈을 둔 채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며 집을 지켰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이, 막상 신경을 쓰니 꽤 큰일처럼 느껴졌다. 하는 일은 없이 마음만 분주했다. 아이들은 그저 즐겁게 놀았을 뿐인데, 어쩌면 나 혼자 생각이 바빴는지도 모르지만.


작은 손님들이 다녀간 자리를 치우며 생각했다. 이렇게 아이의 방학도 끝이 났고, 우리 부부의 연휴도 끝이 났구나. 다음에도 작은 손님들이 온다고 하면 열린 마음으로 그저 환영을 해주고 싶은데. 매번 이렇게 분주한 행사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아이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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