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반짝임들

스토크와 아게라텀 이야기

by 정벼리

일 년 중 이런 날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완벽한 날씨였다. 티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은 쾌청했고, 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더할 나위 없이 청량했다. 이토록 좋은 날의 야외 웨딩이라니.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은 ‘하객 1’이라는 본분을 잊은 채 내 마음이 울렁거렸다. 모교의 넓은 캠퍼스 한 귀퉁이, 작은 정원이 사랑스러운 건물을 향해 걷는 발걸음이 설레었다. 십수 년 전, 선한 웃음이 기억 속에 선명한 동기가 오늘 그 정원에서 결혼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알릴 예정이었다.


모교,라고 쓰고 지웠다가 다시 적는다. 나는 그곳을 모교라 지칭해야 할 때마다 여전히 낯간지러운 기분을 떨쳐내기 어렵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어엿하게 졸업을 했으니 사전적 의미로야 모교가 확실하지만, 입 밖으로 내놓을 때면 왠지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꾸며내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든다. 학부를 다른 곳에서 마쳤기 때문인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학부 모교에 유난히 깊은 정을 둔 것도 아니다. 현재 내 삶의 근간이 되는 전공도, 곁에 남은 인연의 대부분도 대학원에서 시작되었음에도 그 캠퍼스와 ‘모교’라는 따뜻한 명사는 여전히 선뜻 동치로 연결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곳에 몸담았던 3년의 시간이, 드문드문 좋았던 기억들마저 압도할 만큼 힘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평생 그렇게 경쟁적인 시간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모든 것에 점수와 등수가 매겨지고, 그것이 앞서든 뒤처지든 사라지지 않는 낙인이 되어 살갗을 파고들던 시간들. 때로는 호의나 선의보다 우위에 서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 어렸고 경험도 부족했다. 세상의 뾰족함이 그저 아팠고, 그만큼 가시를 세우는 내 모습이 서러워 자주 숨죽여 울었다. 화장실 가장 안쪽 칸에서, 북문 앞 숲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이 어색함은 어쩌면 슬픔이 켜켜이 쌓인 공간에 ‘모교’라는 다정한 이름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미약한 저항감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산다는 것이 매일 기쁘기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반대로 훌쩍이던 나날 속에서도 반짝임은 분명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없을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고, 그 덕에 어느 날부터는 울더라도 혼자는 아니었다. 학교 독서실 지정석에서 첫 반려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것도, 얄팍한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이를 악물고 밤을 새워 책장을 넘기는 몰입을 해보기도 했다. 독파의 쾌감을 그때 처음 배웠던 듯 싶다. 그리고 삭막한 중에도 좋은 사람들은 존재했다. 미숙한 막내였던 나를 미소로 맞아주던 이들, 어찌할 바 몰라 헤매는 순간에 나를 남겨둔 채 떠나버리지 않고 기꺼이 손 내밀어주던 따뜻한 사람들 또한 거기 있었다.


오늘의 멋쟁이 신랑도 그중 하나였다. 사적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기에 십수 년 전의 기억은 흐릿한 잔상으로 남았지만, 모든 기억 속에서 그는 항상 웃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릴 만한 순간에도 결국은 친절한 웃음을 건네던 사람이었다. 졸업 후 따로 만난 적도 없으면서 청첩장을 받고 기꺼이 시간을 비운 건 그래서였다. 언제나 멋진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의 결혼식이라면, 그 시절 내 마음속 인류애를 지켜준 좋은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5년간 버스정류장 실시간 안내판에 뜬 정보가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상황을 단 한 번도 목격하지 못한 이 외곽 동네에서 서울 한복판 학교까지의 여정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지 겪어보지 않고서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래도 그 걸음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의 멋진 미소는 시간을 거슬러 그대로더라.


변치 않는 기쁨과 행복이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손에는 작은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식장을 장식했던 꽃들이다. 먼 길을 되돌아오느라 꽃잎이 살짝 시들해졌지만 아름다움만은 여전했다. 꽃무더기 속에서 키 작은 스토크 두 줄기와 아게라텀을 골라 화병에 나란히 꽂았다. 빛나는 오후의 태양빛 아래에서 치러진 예식, 이어진 축하연은 하늘이 까맣게 물든 이후 알전구의 노란 빛 아래에까지 길게 이어졌었다. 모두가 밝게 웃고 있었고, 사랑에 빠진 신랑신부는 그림처럼 어여뻤다. 꽃병에 꽃힌 꽃들은 축하와 애정이 가득하던 그곳의 반짝임을 그대로 옮겨온 듯했다.


하얀 스토크(Stock)가 포근함을 뽐낸다. 우리말로는 ‘비단향꽃무’라는 고운 이름을 가졌는데, 이름처럼 그윽한 향기가 일품이다. 비단향꽃무는 여러 가지 색깔로 피어나고, 종류에 따라 단꽃도 겹꽃도 있다. 그중 특히 몽글몽글한 겹꽃의 형태의 흰 비단향꽃무는 풍성하고 화사한 느낌을 주어 웨딩 꽃으로 흔히 쓰인다. 꽃말은 ‘영원한 아름다움, 변치 않는 사랑’. 중세 유럽에서 연인에게 사랑을 맹세하며 이 꽃을 건넸다는 이야기가 과연 어울린다.


청보랏빛 솜뭉치 같은 꽃은 오늘의 또 다른 주인공 아게라텀(Ageratum)이다. 그리스어 ‘아게라토스(Ageratos)’에 어원을 둔 이 이름은 ‘늙지 않는다’는 뜻이다. 꽃이 피어있는 기간이 길고 색이 잘 변하지 않아 붙은 이름인데, 우리말로는 같은 의미인 ‘불로초’라고도 불린다. 흔치 않은 강렬한 색감과 독특한 질감을 지녀, 꽃꽂이에서는 주로 빈 공간을 채워주는 ‘필러 플라워’로 활약한다.


지금은 꽃병에 꽂힌 절화의 모습이지만, 사실 두 꽃 모두 모종으로 흔히 구할 수 있는 품종이다. 햇볕과 바람만 잘 드는 베란다라면 누구나 쉽게 키울 수 있다. 변치 않는 사랑과 늙지 않는 마음을 키우는 난이도가 생각보다 낮다는 것, 그것 참 꽤나 근사하고도 희망적인 상징처럼 느껴진다. 화병 속 비단향꽃무와 불로초를 가만히 바라보며 멀리서 마음으로 축복의 기도를 보내 본다. 변치 않는 사랑과 늙지 않는 기쁨이 그들의 앞날에 굳건히 자리 잡기를. 반짝이는 웃음을 잃지 않고, 아주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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