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나아질 것이라는 하얀 거짓말.
배우자 출산휴가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S와 탕비실에서 마주쳤다. 눈밑이 퀭하고, 낯빛이 어둡다. 밤사이 제대로 잠을 못 잔 듯, S는 이미 커피가 찰랑찰랑 차있는 잔에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로 받고 있었다.
"쌍둥이는 잘 지내고 있어요?"
"네, 애들은 잘 지내고 있어요."
애들'은' 잘 지내고 있다면, 부모는 잘 못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초보 엄마아빠의 좌충우돌을 겪고 있을 S를 향해, 나는 눈썹은 늘어뜨리고 입매는 끌어올리며 말했다.
"아이고. 육아가 보통 일이 아니죠? 부부가 다 힘들 거야."
"애 보는 것도 힘들긴 한데, 그냥 아내와 사소한 일로 계속 싸우게 되어서 더 힘들어요."
"몸도 마음도 고되니까, 별 것 아닌데 짜증 나고 그런 거죠."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죠?"
"그럼요. 좀 있으면 기고, 걷고, 어린이집도 다닐 거고... 말문 트이고, 대화되고 하다 보면 점점 나아져요."
나는 하얀 거짓말로 S를 위로했다. 점점 나아지긴 무슨... 하지만 좌절한 초보 아빠에게, 육아는 한 퀘스트를 겨우겨우 돌파하면 다음 퀘스트가 끝도 없이 열리는 무한의 미로와 같다는 사실을 차마 털어놓을 수 없었다. 혹시 S가 오늘 나의 말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런 거짓말쟁이, 하며 씩씩거릴지도 모르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다, 익숙해지면 쉬워진다, 이때만 지나면 혼자서 알아서 클 거다... 모두 거짓말이다. 이를테면, 등산 중에 만난 하산객이, 10분만 더 가면 됩니다, 다 왔습니다, 하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다. 지치지 말라고, 주저앉아버리지 말라고 용기를 주기 위해 건네는 응원 같은 거짓말이다.
여담이지만, 위와 같은 하얀 거짓말의 실체를 깨달으며, 이런 생각도 했다. 둘째는 알아서 커요,라는 말 또한 같은 맥락의 거짓말일 것이라고. 둘째를 키워보지 않아서 귀납적으로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상적 연역 추론과정을 통하여 나는 확신한다. 알아서 크는 애는 세상에 없다.
S는 마음에 쌓아둔 이야기가 넘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커피를 다 내린 뒤에도 탕비실을 떠나지 않고, 옆에 서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애들이 밤에 계속 두 시간도 안 되어서 깨요. 죽겠어요. 통잠 자는 때가 오긴 오죠?"
"그럼요. 백일의 기적이라고 하잖아요. 통잠만 자도 한결 수월해지죠."
"통잠... 어휴... 조금만 더 참으면 밤에 푹 잘 수 있겠네요."
"하하하..."
"그것도 그런데, 깨면 수유를 해줘야 하잖아요. 쌍둥이니까, 둘을 수유하는게 너무 힘들어요. 인터넷에서 보니까 좀 크면 스스로 우유병 잡고 셀프수유도 하던데, 우리 애들도 언젠가 가능하겠죠?"
"그... 그럴 수도 있지요."
"임신 중에 육아 관련 교육 많이 찾아다녔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니, 다 쓸데없어요. 그냥 앞으로 밥도 제때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휴식시간도 없이 살아야 하니, 나는 죽었다, 하고 마음이나 단단히 먹도록 정신교육을 시켜주는 게 나았겠어요. 진짜 상상 초월이에요."
"S 씨... 힘내요."
나는 탕비실을 나와 줄행랑치듯 자리로 돌아왔다. 조금 더 얘기하다가는 S에게 지금까지 한 말은 사실 다 뻥이라고, 육아는 끝이 없어서 너의 고난도 끝이 없을 텐데, 아직 너는 각오가 부족한 것 같으니 더욱 정신 바짝 차리고 나 죽었소, 하고 육아에 임하라며 진실을 토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셀프수유 같은 소리 하고 있다, 정말... 푸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