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날로 좋아지고 있다. (2)
10년 전, 아이를 낳은 지 3일 만에 분만 후 첫 진료에서의 일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 침대에 누워 있으면 양 발의 각도가 달랐다. 골반이 틀어진 것 같은데 대체 언제 돌아오는지 묻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골반은 시간이 지나면 정렬이 잡힐 겁니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아기가 많이 아플 수도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와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해요."
"네? 아기가 왜요?"
"신생아 검사에서 XX병 의심 소견이 나왔어요. 정밀 검사를 권합니다."
남편과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채 검사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아이가 검사를 받는 동안 우리는 검색포털에 이름도 생소한 XX병을 검색해 보았다. 이런저런 증상도 무서웠지만, 통상 20세 전후로 사망한다는 서술 부분에 이르자 손이 벌벌 떨리며 울음이 터졌다. 남편은 나를 끌어안고 미리 걱정하지 말자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했다. 겨우 눈물이 멎었을 때, 검사를 마치고 나온 아이의 양 손등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나는 다시 울었다.
그 뒤로는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수유를 하다가도, 조리원 침대에 누워 쉬다가도, 잠을 청하다가도 잠이 깨다가도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울면서 이틀을 보냈고, 남편의 5일짜리 출산휴가의 마지막 날 저녁이었다.
"나 너무 무서워. 회사 안 가면 안 돼?"
남편은 망설였다. 그게 서운해서 또 울었다. 남편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야. 지금 연차를 써버리면, 나중에 필요할 때 쓸 휴가가 없을까 봐 그래."
남편 말이 백번 맞았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그는 회사로 향했고 나는 조리원을 나와 엄마 집으로 향했다. 산후조리원에 뎅그러니 남겨져 혼자 울고 있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약 한 달 뒤, 별이는 괜찮다는, XX병이 아니라는 검사 결과를 받았다. 이번엔 안도의 눈물이 터졌지만, 그 뒤로도 다 괜찮은 건 아니었다. 그 한 달 사이에 나는 꽤나 유난스러운 산후우울증을 얻어버렸다. 뭐든 쉽지 않았다.
모유수유는 출산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처참히 실패했는데, 단유약을 처방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친근하고도 다정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오늘도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네! 우울해서 우는 엄마 젖은 애한테도 별로예요. 분유가 나아. 초유 먹였으니 됐죠, 뭐."
그렇지만 이미 우울의 늪에 빠진 나는, 먹여봤자 애한테 별로인 모유 밖에 없는 내가 싫어졌다. 스스로가 싫어지는 이유는 차고 넘쳤다. 기저귀를 잘 못 갈아서, 분유를 잘 못 타서, 가재수건을 예쁘게 개지 못해서, 아기 빨래랑 어른 빨래가 섞여서, 밤중에 아이를 돌보려고 한번 일어나면 다시 잠들지 못해서... 엄마로서 자격미달 같았다. 이렇게 모자란 내가 혼자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는 게 점점 버겁고 싫어졌다.
매일 아침 남편에게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렸다. 새벽부터 그가 집을 나서는 8시 언저리까지 오늘은 회사에 가지 말라는 대책 없는 이야기를 매일 반복했다. 그리고 오후 6시 무렵부터 오늘은 언제 퇴근하는지 묻는 카톡을 끝도 없이 보냈다. 그때는 그렇게 야근이 일상화되어있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엄마가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오셨고, 두어 달 뒤에는 집에서 조금 먼 거리에 있지만 동네에서 평판 좋은 어린이집에 빈자리가 생겨 중도 입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우울증은 점차 사라졌다. 돌이켜보면, 산후우울증은 아이가 아플지도 몰라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독박육아 때문이었다.
어느 날부터 사회가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를 외쳤다. 그리고 놀랍게도 어느 순간, 남편의 회사도 정시 퇴근이 일반화되었다. 그 이후의 어느 날 저녁, 남편은 문득 말했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늦게까지 퇴근을 못해야 했을까. 별이 아기 때, 제시간에 퇴근만 했어도 당신이나 나나 훨씬 나았을 텐데."
시간은 흘러, 배우자 출산휴가는 20일로 늘어났고, 그 외에도 일가정 양립 및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는 폭넓게 발전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저녁이 있는 삶을 넘어 근로시간 단축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작 엄마된 지 10여 년 지난 내가 느끼기에도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나보다 윗세대인 워킹맘들이 느끼는 세상의 변화는 아마도 더 크겠지. 역시 역사의 큰 줄기는 좋은 방향으로, 밝은 방향으로, 어제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해 가고 있는게 틀림 없다. 더욱 더 정진하여 발전하라, 사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