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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Oct 30. 2022

교육의 희망: 왜 지금 여기 바이마르여야 하는가?

인터뷰 기관: Herzogin Anna Amalia Bibliothek(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바이마르)

인터뷰 대상: Felix Zühlsdorf(문화 교육 담당자)

                (Referent kulturelle Bildung)  

인터뷰 날짜: 2019년 8월 6일(화)



괴테와 실러의 도시,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이 있는 바이마르(WEIMAR)를 찾다      


  취리히 교육부의 콘스탄틴과 더불어 섭외 초반에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긍정적인 응답을 주셨던 분이 바로 바이마르의 펠릭스였다. 교육기관과 더불어 도서관에도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수집하던 중, 바이마르의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괴테가 관장이었던 도서관’, ‘화재 시 시민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책을 구했다는 도서관’, ‘세계 7대 아름다운 도서관’ 등 잠깐 살펴본 수식어만으로도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의 매력은 충분했다. 홈페이지에서 찾은 연락처로 메일을 보냈는데, 바이마르 고전 재단(Klassik Stiftung Weimar)의 교육 부서 담당자인 펠릭스에게서 친절한 답장이 왔다.(이때까지만 해도 이 재단이 어떤 곳인지, 얼마나 우리 사회에 멋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도서관 안내와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인터뷰가 가능하다는 답변과 함께 펠릭스는 우리의 유럽 교육기행과 집필하려는 책의 목적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섭외 초반에 거의 아무런 소득이 없을 때 받은 따뜻한 답장이라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을 만큼 감동적인 메일이었다.


  펠릭스는 메일에서 자신들의 교육프로그램은 도서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18세기와 관련된 많은 박물관과도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분명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연락처를 찾아 문의를 드렸던 것 같은데, 왜 고전 재단에서 답이 오고, 또 뜬금없이 박물관 이야기는 뭐지? 바이마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사실 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도시는 기관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나 보다’라는 생각과 내가 예상하는 규모보다 큰 범위에서 뭔가 체계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친절한 펠릭스는 바이마르에서의 숙소에 대한 우리의 고민까지 살뜰히 챙겨줬다. 비록 여행 도중에 한국어-독일어 통역을 구하느라 마음을 졸이기는 했지만, 어떤 질문이라도 주저 없이 하라는 그 덕분에 다른 어떤 인터뷰보다 마음 편하게 바이마르 방문을 준비했던 것 같다. 바이마르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다 보니, 바이마르는 ‘괴테’의 도시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도 괴테 하우스(Goethe House)를 방문해 괴테의 유년 시절과 창작 세계를 엿보며 나도 이런 대작가의 영감을 받아 좋은 책을 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었는데, 이번 여행은 괴테와 인연이 참 깊다는 생각을 했다.


  8월 6일 우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고 바이마르로 향했다. 화려한 대도시보다 아기자기한 소도시를 선호하는 내 여행 취향에 딱 맞는 도시임을 역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알 수 있었다. 함부르크 인터뷰가 잡히면서 바이마르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박 2일, 아니지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을 해야 했기에 실질적으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한나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펠릭스와의 인터뷰 시간을 빼고 나면 자유롭게 바이마르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떠날 생각을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인터뷰 시간 전까지 조금이라도 바이마르를 더 둘러보기 위해 짐을 풀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펠릭스의 조언대로 중심가와 가까운 숙소를 잡아 걸어서 바이마르를 둘러볼 수 있었다. 조금 걷다 보니 ‘괴테와 실러의 동상’이 있는 광장에 도착했다. 바이마르를 대표하는 두 문인들을 보고 있으니 새삼 바이마르가 문학과 문화의 도시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한쪽에서는 공연이 열리는, 직접 소통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열려 있는 유럽의 광장을 참 좋아한다. 없는 시간이었지만 잠시라도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광장 한쪽의 야외 카페에 앉아 펠릭스에게 줄 감사 엽서를 적으며 우리도 바이마르 광장의 일부가 되었다.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역사 속 공간에서 옛사람들을 만나다              



  4시 50분에 통역사님과 함께 약속했던 도서관 로비에서 펠릭스를 만났다. 사물함에 짐을 넣고 맨 처음 본 것은 2004년에 발생한 도서관의 화재 현장과 관련된 전시물들이었다. 어디든 화재 사고는 많은 상흔을 남기지만 이렇게 문화‧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도서관에 난 화재라니……. 이곳을 방문하기 전 인터넷에서 바이마르 시민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역사적인 책들을 구해냈다는 정보를 접했었는데, 단순히 책이 불탄 것이 아니라 무형의 정신적인 유산이 사라지는 그 현장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바이마르 시민들의 마음이 느껴져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이탈리아에서 문화재 복원학교를 다녀와서인지 책들의 보관과 복원 과정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펠릭스는 2004년 당시에는 지금보다 책의 디지털화가 많이 되어 있지 않았는데 화재 이후 보존 기술이 발전했다고 했다. 그리고 라이프치히 등지의 복원 시설에서 책을 복원하는 과정을 거쳐 2007년 도서관이 다시 개관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도서관의 복원에 시민들의 헌금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에 바이마르 시민들이 도서관을 아끼는 마음과 그들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으면 가장 좋지만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기에 첨단 기술을 활용해 또 다른 형태의 기록을 남겨놓는 것도 후대에 문화유산을 전하는 데에 중요한 과정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의 로코코홀로 이동하면서 도서관의 역사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원래 바이마르 성의 일부였다가 나중에 도서관으로 바뀐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은 처음에는 개인 도서관으로 사용되다가 1766년에 독일 전체에서 두 번째 공공도서관으로 개설되었다고 한다. 스위스에서 방문했던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과는 다르게 초기에는 권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목적을 띠다가 18세기부터는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도서관으로 변모했다는 설명을 들으며 오래된 도서관도 설립 주체와 목적 등에 따라 각각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또한 일찍부터 도서관에 큰 관심을 가짐으로써 독일의 문화, 예술, 교육 전반의 부흥에 엄청나게 기여한 안나 아말리아의 시대를 앞선 놀라운 교양과 안목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로코코홀의 문이 열렸다. 장크트갈렌에서 중세 도서관의 아름다움이 주는 매력에 이미 푹 빠졌었기에 이번에는 덜 놀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은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반겼다. 하얀 기둥 사이 사이로 꽂힌 책들을 보며 펠릭스의 설명을 듣다 괴테의 흉상과 눈이 마주쳤다. 맞다, 이 도서관의 관장이 괴테였지. 괴테가 매일 오갔을 공간에 지금 내가 와 있는 거구나!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당시에 일주일에 두 번 시장이 서는 날 도서관을 열었고, 책을 석 달 정도까지 대출하는 게 가능했다고 했다. 또한 지금처럼 연체료도 있었다는 말에 역사적인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던 이곳도 결국 옛사람들의 생활 공간이었다는 게 느껴지며, 그동안 나는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역사를 현재와는 분절된 옛것이라 여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대단한 곳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했던 이곳이 구체적인 실체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미리 신청을 하면 이곳의 책을 볼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혹시라도 다음에 바이마르에 올 기회가 허락된다면 그때는 책을 열람하며 오랜 시간 이곳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오리라 다짐했다.


  펠릭스는 바깥으로 나가 우리를 또 다른 건물로 안내했다. 2005년에 개관한 새 도서관이었는데, 도서관으로 가는 길 지하에도 다 장서가 보관되어 있다는 말에 이 도서관도 규모가 상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로코코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새 도서관은 정육면체의 네 벽면을 서가로 채우고 중앙 공간은 비워 1층에 편안하게 소파를 배치하는 식으로 공간을 구성했다. 왜 ‘책큐브’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지 신관을 방문하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매력이 돋보이는 공간이었다. 무료로 시민들에게 도서 대출이 가능한 이곳은 현대의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바이마르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에 있으니 ‘연구 도서관’의 성격이 강하다는 이곳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찾아 읽으며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샘솟았다. 마음에서 우러나 스스로 뭔가를 읽고 배우고 연구하고 싶은 생각이 든 게 언제였던가? 문득 아이들에게도 배움은 이렇게 일어나야 할 것 같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리고 이런 풍부한 문화자산을 가지고 있는 바이마르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바이마르 고전 재단(Klassik Stiftung Weimar) 그리고 ‘지금 여기’에 담긴 그들의 철학     


  도서관 탐방에 이어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펠릭스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아까 옛 도서관에서 나올 때 펠릭스가 동료들에게 “Tschüs!”라고 인사를 건넸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퇴근 인사였던 것 같다. 타국에서 온 우리를 위해 퇴근 후까지 기꺼이 시간을 내준 펠릭스의 배려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펠릭스는 바이마르 고전 재단(Klassik Stiftung Weimar)에서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출발 전부터 궁금했던 도서관과 재단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했다. 펠릭스는 바이마르 고전 재단은 베를린에 이어 독일에서 문화재단으로는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지니고 있으며, 주로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바이마르에 있는 도서관, 아카이브(archive/ 기록보관소), 20개 이상의 박물관 등이 모두 이 재단의 소유하에 있고, 그중 많은 것들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설명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이제야 왜 내가 보낸 메일이 도서관에서 재단의 교육 부서로 전달이 됐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탐방만으로도 바이마르가 ‘역사‧문화의 도시’라는 것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는데, 이 도시의 저변에 이렇게 문화와 교육에 엄청나게 투자하는 재단의 힘이 있었구나 생각하니 재단에서 운영하는 교육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바이마르 고전 재단은 재단의 도서관, 아카이브, 박물관과 연계한 현장체험학습 교육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수학여행 같은 학교 연계 프로그램부터 가족 단위의 방문객을 위한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2~3일짜리부터 7일까지 교육 기간도 다양했다. 펠릭스는 자료와 영상을 통해 몇 가지 구체적인 운영 사례를 보여줬는데, 실러와 부인 사이에 오간 고문 편지를 함께 읽는 프로그램부터 예술가 초청 프로젝트, 학생들이 직접 영화를 만드는 프로젝트까지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과정이 흔히 접할 수 있는 박물관 1일 투어처럼 1회적인 게 아니라 재단 내의 도서관, 아카이브, 박물관 등을 연계하여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일례로 교육 기간 초반에 아카이브에서 다양한 기록물들을 보며 18세기에 대해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18세기의 여성의식’, ‘괴테와 사랑’과 같은 주제로 학생들이 협업을 하여 배운 것을 스스로 영화로 제작하고 이를 ‘YouPEDIA’라는 대화형 플랫폼에 올리는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좀 충격적이었다. 과정과 결과, 이론과 실습 이 모든 게 조화를 이룬 교육프로그램은 내 눈으로 보면서도 잘 믿기지가 않았다. 교육에 필요한 18세기 의상부터 영화 제작 장비, 공간까지 모든 게 구비되어 있고, 지금 이 영상은 일주일 정도의 체험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와, 도시 전체의 체험학습 교육프로그램이 이렇게 기관마다 연계가 돼서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게 가능한 일이야? 세상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체험학습 초반부터 박물관을 데리고 가 지루한 투어를 하면 흥미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카드를 들고 바이마르 곳곳을 다니며 바이마르와 친해지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갔을 때 지루해서 빨리 시간이 가기를 바랐던 아이들의 표정이 순간 눈앞에 지나가며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정확한 교육 장면을 본 건 아니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의 ‘1박2일’이나 ‘런닝맨’처럼 다양한 미션들을 수행하며 바이마르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바이마르에서 커피를 마시고 간식을 먹는 것도 교육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크게 공감이 되었다. 2014년 고2 담임을 할 때 마음이 잘 맞는 동료 선생님과 ‘서울 대학로 런닝맨’을 하며 지역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학생들도 매우 즐거워하며 자연스럽게 지역의 역사, 문화, 문학 등에 대해 의미 있는 배움이 일어났던 경험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바이마르에서 시작됐다는 교육 플랫폼 ‘유피디아(YouPEDIA)’였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미디어와 연결하여 창조적으로 교육하는 것을 지향하는 유피디아는 원래는 ‘바이마르피디아(WeimarPEDIA)’였다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려는 비전을 가지고 이름을 바꿨다고 했다.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있는 곳에서 그와 관련된 교육활동을 한 후 학생들 스스로 아이디어를 가지고 영상을 제작하여 올린 결과물들을 공유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는 정말 세계 어디에서나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개정 교육과정의 교과서가 없는 ‘고전 읽기’ 수업에서 ‘매체’와 연결하여 수업을 할 때 시도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바이마르에서 세계를 향하는 그들의 아이디어에 진심으로 감탄을 했다. (https://www.youpedia.de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실제 올라온 영상들을 확인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는 건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과 그 속에 담긴 그들의 교육철학이 궁금해졌다. 펠릭스는 교육 부서의 중심 인원은 10명 정도인데,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에는 최소 1년 이상의 많은 시간과 예산이 소요된다고 했다. 일단 지향하는 콘셉트(concept)를 담은 모델 프로그램(Model Program)을 개발한 후 적용해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거쳐 교육프로그램 하나가 만들어진다는 설명을 들으며, 이 과정에서 재단의 지원이 상당히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마르 고전 재단은 드레스덴, 헤센 등의 다양한 박물관, 재단과도 협약을 맺고 있었는데, 내가 무엇을 상상하든 내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사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가장 감동적이었고 지금까지도 내게 많은 울림을 줬던 건 인터뷰 마지막 부분에 그와 나눴던 그들의 교육철학이었다. 그는 ‘자연이 인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가?’, ‘교육을 통해서 어떻게 사람들은 성장할 수 있는가?’와 같이 18세기 계몽시대에 논의되던 질문들은 현재에도 유효하다며, 중요한 것은 역사 속의 이런 질문들이 현재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지금 여기’ 바이마르에 온 이유가 있어야 바이마르에서의 교육이 의미가 있지, 여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교실이나 학교에서도 똑같이 배울 수 있다면 학생들은 바이마르에 올 이유가 없다는 펠릭스의 말이 가슴에 딱 꽂혔다.      


‘왜 지금 여기, 바이마르여야 하는가?’     

여기 지금, Here & Now! 나도 종종 참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었는데, 그의 질문은 내 삶의 고민에 중심적인 화두를 던졌다. 당장 학교에서는 ‘왜 지금 여기, 이 수업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학생들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답을 줄 수 있는 수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나아가 ‘나는 왜 지금 여기 있는가?’라는 삶의 철학적 고민으로도 이어졌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이런 것들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고 토의하는 과정이 있었으니, 그들의 교육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학생들의 스스로의 힘을 강조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잘 결합을 이룬 모습으로 자리 잡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안주하지 않고 지금도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며 발전을 꾀하는 모습에서 나는 바이마르의 미래도 발견할 수 있었다.


  원래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이상이 지나도록 펠릭스가 열정과 진심을 다해 우리의 인터뷰에 응해줘 통역사님이 가신 후에는 처음으로 내가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미숙해서 침묵이 이어지기도 하고 오역이 있기도 했지만 통역을 거치지 않고 영어로 소통을 하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어떤 도시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이마르를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한다는 게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다시 찾은 바이마르여행 중 같은 곳을 다시 간 건 바이마르가 처음이었다 



  펠릭스는 마지막까지도 혹시 시간이 돼서 바이마르를 다시 오게 되면 꼭 연락을 달라 했다. 내가 바이마르를 이렇게 좋아하게 된 건 순전히 그의 친절함과 따뜻함, 전문적인 설명 덕분이었다. 함부르크, 베를린으로 이어진 여정에서도 틈틈이 바이마르가 떠올랐고 결국 우리는 8월 10일, 베를린 자유여행 일정 중 하루를 비워 바이마르로 향했다. 이번 여행 중 지나온 도시를 다시 돌아 찾아간 건 바이마르가 유일했다.

 

 아쉽게도 펠릭스와 일정이 맞지 않아 그의 친절한 설명을 더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는 감사하게도 메일로 우리가 갈 만한 명소를 추천해줬다. 그의 추천에 따라 우리가 처음으로 간 곳은 ‘괴테 국립박물관(Goethe-Nationalmuseum)’이라고도 불리는 ‘괴테 하우스’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괴테의 유년 시절을 엿봤다면, 바이마르의 괴테 하우스는 괴테가 말년에 머물다 숨을 거둔 곳이었다. 대문호 괴테의 삶의 처음과 끝을 함께할 수 있다니……. 처음보다 바이마르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된 다음이어서일까? 뭔가 더 영광스럽게 느껴졌다. 괴테 하우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정원’이었다. 요란하지 않고 소박하게 아름다움을 품은 다양한 꽃들과 나무가 집과 조화를 이룬 모습은 한국에 돌아온 뒤 지금까지도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둘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다. 다음으로 그가 추천해준 ‘괴테 가든 하우스(the Gardenhouse of Goethe)’로 향했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 문을 닫아 내부를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름공원을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바이마르의 한적한 정취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펠릭스가 이야기했던 바우하우스 박물관(Bauhaus museum-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건축, 디자인 분야의 유명한 박물관) 신관 앞 공간 개장 축제 현장에 잠시 들렀다. 음료와 간식을 파는 스낵카부터 탱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까지 소소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소도시에서 열리는 마을 축제는 언제 어디서든 항상 즐겁고 흥겹다. 축제를 둘러보던 중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나무, 호스 등 제공된 기본적인 재료들을 가지고 목공 작업을 통해 미니 호스 안으로 작은 공을 내려보낼 수 있는 구조물을 창의적으로 제작하는 ‘아동 목공 축제’였는데,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이 우리나라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나이밖에 안 돼 보였다. 우리의 경우 안전 문제 때문에 나이가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이런 축제를 열기 어려울 것 같은데, 물론 옆에 축제 담당자가 있기는 했지만 자연스럽게 톱과 드릴, 접착제 등을 사용하여 각자의 작품을 제작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진지한 눈빛과 신중한 손놀림, 그들은 이미 ‘꼬마 건축가’였다. 


  꼬마 건축가 한 명과 막간 인터뷰를 시도했다. 자신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우리에게 으쓱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주던 꼬마와 우리의 대화는 처음에는 잘 이어지는 듯했으나 곧 언어의 장벽에 부딪혔다. 답답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꼬마의 말을 어떻게든 알아들어 보려고 귀를 쫑긋했지만, 간단한 인사밖에 모르는 나의 독일어 실력으로는 알아들을 방법이 없었다. 이때 파파고 어플이 생각났다. 음성 통역도 됐던 것 같아 어플을 열어 꼬마에게 여기에 말해보라고 했다. 그가 힘주어 우리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했던 말은 바로


“Ich muss jetzt nach Hause gehen.”
(“지금 집에 가야 해요.”)


꼬마가 자신의 작품 설명을 해주는 줄 알고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순간 우리는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이 상황이 너무 웃겨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사실 못 알아들으면 그냥 휙 가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끝까지 우리와 소통을 하려고 애쓴 꼬마의 따뜻한 진심이 느껴져 정말 고마웠다. 바이마르는 꼬마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참 친절한 도시구나! 감동에 젖을 때쯤 축제 현장에 들른 펠릭스를 만났다. 아마도 재단에서 진행하는 행사라 잠시 들른 것 같은데 시간대가 이렇게 맞아 다시 그를 만날 수 있다니……. 오늘도 참 운이 좋았다.    


  독일의 문화적 수도라 불리는 바이마르.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가 현재와 동떨어져 있지 않고, 그곳에서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바이마르의 가치는 여전히 빛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교직생활 중 기회가 된다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바이마르의 체험학습 현장에 다시 방문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꿈이지만, 뭐 꿈은 마음껏 꿔볼 수 있는 거니까. 바이마르와의 인연이 쭉 이어지길 소망하며 다시 찾기 전까지 괴테의 고전들을 읽으면서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교육(도서관)이란 이다!


펠릭스에게는 ‘교육’과 ‘도서관’ 두 단어의 핵심어 한 줄 정의를 요청했다. 펠릭스는 아래와 같이 정의를 했다.


‘교육은 과거와 현재의 상관관계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도서관은 시대의 지식을 읽어내 후대에게 보여주는 곳이다.’


  바이마르와 참 잘 어울리는 정의였다. 교육은 남이 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배워나가는 것이라는 말과 많은 것이 디지털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아날로그를 읽어내는 것’은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역사와 고전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해준 바이마르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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