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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Oct 30. 2022

이탈리아, 문화재 복원에 담긴 그들의 열정에 반하다

인터뷰 기관: OPD(Opificio delle pietre dure)

                 (이탈리아 문화부 산하의 국립 복원학교)

인터뷰 대상: 안드레아 카니니 박사님(부원장) 

                  안나리자 루주와르디 박사님(국제관계 프로젝트 담당)

                  안나 마리에 힐링(복원사) 

인터뷰 날짜: 2019년 7월 25일(목)



  냉정과 열정 사이의 도시 피렌체에서 문화재 복원학교를 방문하게 되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OPD는 우리의 여섯 군데 방문 기관 중 가장 어렵게 인터뷰가 성사된 기관이다. 물론 어느 곳 하나 쉽게 된 곳은 없었지만, 이탈리아의 교육기관을 섭외하는 건 유독 쉽지가 않았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였다. 이탈리아의 기관에 영어로 메일을 보내면 답이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이탈리아어’로 답이 왔다. 물론 통역 어플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 의미 파악은 됐지만, 전혀 모르는 언어로 답이 오다 보니 세밀하게 정교한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뭘 중심으로 보고 싶은지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초반에 다른 나라의 기관을 섭외할 때도 겪었던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스위스와 독일은 교육부, 도서관 등으로 초점이 맞춰지며 뭔가 윤곽이 보이는 것 같았으나, 초반의 이탈리아는 안갯속이었다. 사실 이탈리아의 교육에서 이건 꼭 봐야 한다!는 강조점이 있었던 게 아니었기에, 그냥 이탈리아는 자유여행을 할까 생각할 때쯤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 보존복원전문학교   


문화재나 복원에 크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 분야는 이탈리아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는 전문 분야라는 생각에 호기심이 생겼다.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 복원사 준세이와 몇 년 전 담임을 할 때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합격했던 제자가 함께 떠오르며, 섭외만 되면 아이들의 진로탐색과 관련해서도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이색적인 탐방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로마와 피렌체 중 일정상 피렌체에 있는 문화재 복원 기관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터넷에서 검색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총동원하여 연구소, 대학을 가리지 않고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메일 중 일부가 이상하게 자꾸 반송돼서 돌아왔다. 다음(Daum) 고객센터에 문의도 했었는데, 수신 측 서버에서 최신 버전의 보안 프로토콜만 받게 돼 있어서 발송이 안 되는 것 같다고 현재로서는 해결 방법이 없다는 답이 왔다.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 이제야 생겼는데, 메일조차 가지 않으니 정말 안타까웠다. 아쉬운 대로 이탈리아 문화재 복원 연수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이탈리아 학교들과 국제 교류를 하고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등 국내 관련 기관의 담당자들께 메일을 보내며 조언을 구했다. 


  신기한 건 섭외에 진척은 요만큼도 없었지만, 복원학교만큼은 못 갈 것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거다. 나는 계속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주 이탈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피렌체 명예영사님’께 영어로 메일을 드렸는데(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성함을 보니 이탈리아 현지인이신 것 같았다.) 놀랍게도 아래와 같이 한국어로 답이 왔다.     


안녕하세요. 피렌체 명예영사관에서 장은영입니다.  

보내주신 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방문목적과 준비하시는 책의 프로젝트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야 면담이나 방문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자세한 사항을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면담 요청자의 소속과 신분, 면담목적, 면담 후 예상결과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7,8월은 이미 모든 학교가 방학중이고 휴가기간이라 원하시는 곳들의 면담이 어려울 수 있는 점 고려해주시구요.     

회신 기다리며 감사합니다.
장은영드림


  현지에서 한국어로 메일이 오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영어로 드린 메일에 한국어 답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일단 정말 기뻤다. 우선 우리의 탐방에 관심을 보여주시는 분이 현지에 계신다는 게 감사했고, 무엇보다 섭외 성사 여부를 떠나 앞으로의 소통을 한국어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지점이었다. 여러 번 메일이 오가던 중 마침내 7월 16일, 명예영사관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답변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복원학교측으로부터 방문 시간 컨폼을 기다리느라 연락이 좀 늦었네요.     

방문학교 : Opificio delle pietre dure
 http://www.opificiodellepietredure.it/

이탈리아 문화부 산하의 국립 복원학교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페르난도 1세에 의해 1500년대에 생긴 이곳은 예전엔 메디치 가문의 가구를 만드는 곳이었고, 그 후 메디치가문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박물관과 복원학교로 바뀌었으며, 피렌체에는 복원학교 작업실이 3곳이 있는데, 그중 이곳은 박물관을 겸한 중앙건물입니다. (이하 생략) 


  Opificio delle pietre dure(이하 OPD)라고? 순간 너무 놀라 잠시 말을 잃었다. 여기는 우리가 제일 가고 싶었는데, 보안 문제로 메일을 발송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지성이면 감천이고, 두드리면 열리는구나! 과정은 험난했지만 열매는 달콤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말로만 듣던 메디치 가문의 전통이 깃든 그곳에 2019년 여름 설렘을 안고 가게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 문화재 복원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피렌체 문화재 복원학교와의 인터뷰가 확정된 후, 이탈리아 다른 도시를 여행하면서도 문화재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는 10년 전 처음 봤을 때도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내게 ‘스탕달 신드롬’을 느끼게 해줬던 작품인데, 이번에는 더 오랜 시간 하염없이 고개를 들어 천장화를 바라보며 또 다른 매력에 빠졌다. 우선 세례를 받으며 10년 전보다 성경의 내용에 조금은 더 익숙해져서인지 창세기의 내용을 담고 있는 천장화의 주제가 더 마음에 와닿았다. 그런데 신기했던 건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혹시 그림 중에 훼손된 부분은 없나, 저 부분은 다시 복원을 한 건가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그림을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카메라 플래시로 인한 그림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노 포토!(No Photo!)”를 끊임없이 외치시는 보안관들과 같은 마음으로 몰래 촬영을 시도하는 분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낸 것도 10년 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러한 관심은 이탈리아에서의 두 번째 도시, 아씨시에서도 계속됐다. 아씨시의 명소 성 프란치스코 성당은 1997년 움브리아주에 일어난 지진으로 건물과 벽화가 크게 훼손되는 일을 겪었는데, 지금도 그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예전 같으면 지금도 복원이 진행 중이구나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을 텐데, 그 사연과 과정이 궁금해졌다. 용기를 내어 성당 내 안내를 담당하시는 수사님들을 찾아갔다. 친절하게도 지진이 났을 때의 참혹한 영상을 직접 찾아 보여주시기도 하고, 현재 복원 중인 프레스코화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시기도 해서 궁금증이 조금은 풀렸다. 특히 이 성당의 경우 그림 훼손의 원인이 다 지진일 거라 단순히 생각했었는데 어떤 그림은 더운 날씨의 영향으로 벗겨진 거라는 설명을 들으며 문화재 훼손의 다양한 원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한 수사님이 보여주신, 원본과 복원 과정에 대한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자를 보며, 복원에 있어 기록이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서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 PATRICK MUTALE 수사님과 미처 성함을 여쭤보지 못한 수사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피렌체에 도착해 인터뷰 전날, 우리는 이 도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높이기 위해 곳곳을 둘러봤다. 한때 유럽의 ‘붉은 지붕’에 꽂혀 레드(RED)를 따라다니는 여행을 해볼까 진지하게 고민을 한 적도 있었는데, 두오모에 올라 바라본 붉은 물결 피렌체는 여전히 나를 설레게 했다. 오후에는 우피치 미술관(Gallerie Degli Uffizi)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나처럼 미술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경우에는 혼자 관람하는 것보다 전문적인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미술관을 둘러보는 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은 다시 봐도 우피치 내에서 나의 최애 그림이었다. 10년 전과 달라진 건 우피치 미술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메디치가(家)’에 대한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그냥 옛날 피렌체에 문화‧예술에 대단한 영향을 미친 가문이 있었나 보다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내일 방문할 OPD와 관련이 있어서인지 ‘지오반니, 코지모, 로렌초’로 이어지는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역시 모든 배움에 있어 목표와 동기는 참 중요한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복원학교를 방문할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었다.     


  두근두근문화재 복원 현장 속으로 직접 들어가 명화들을 가까이서 만나다

 

  7월 25일, 피렌체에서 드디어 OPD를 방문하는 날이 밝았다. 지금이야 여섯 기관 인터뷰를 무사히 잘 마쳤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당시에는 OPD가 우리의 첫 인터뷰 기관이어서 더 떨림과 설렘이 가득했던 것 같다. 약속 장소인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기차역 근처 버거킹으로 가는 길에 벌써 도착하셨다는 카톡이 들어왔다. 우리가 먼저 가서 기다리려 했는데, 발걸음을 서둘렀다. 가까이 가니 우리와 메일을 주고받았던 장은영 선생님과 피렌체 명예 영사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반갑고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인사를 드린 후 우리는 함께 오늘의 약속 장소인 OPD로 이동했다. 


  OPD 입구에서 우리와 인터뷰를 해주실 분들을 기다리며, 장은영 선생님, 명예 영사님과 잠시 인터뷰 섭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 보니 내가 작성한 영어 메일을 명예 영사님께서 받으셨고, 이 메일을 평소 함께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던 장은영 선생님께 전달하시면서 한국어로 메일 소통이 가능해진 상황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메일이었을 텐데 관심을 가지고 기관 섭외까지 신경 써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했고, 더군다나 OPD가 민간 차원에서는 방문하기 힘든 기관인데 명예 영사님께서 섭외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는 말씀에 이 자리가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여기에 장은영 선생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대화를 이탈리아어와 한국어로 통역해주시는 역할까지 맡아주셨다. 전문 영역의 대화라 특히나 통역이 중요한데, 언어 문제가 해결돼 어찌나 다행이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시작부터 마음이 참 든든했다.


  잠시 후 OPD의 부원장이신 안드레아 카니니 박사님과 국제관계 프로젝트 담당 안나리자 루주와르디 박사님이 나오셨다.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눈 후 인터뷰 시작 전 정중하게 녹음이나 촬영이 가능한지 여쭤봤는데, 완곡하게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문화재를 다루고 있는 국립 기관이다 보니 출입도 제한되고 보안이 중요해 보였다. 유일하게 인터뷰 녹음을 하지 못한 기관이라 그 어느 때보다 메모를 열심히 했지만, 그래도 인터뷰 기술에 있어 약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우리는 먼저 OPD 기관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들은 후, 복원 분과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우선 OPD는 이탈리아 문화부 산하의 국립 학교로, 석사 학위에 해당하는 5년 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한국전통문화대학교도 교육부 산하가 아니라 문화재청 소속으로 알고 있는데, OPD도 유사한 조직 구조로 운영되는 것 같았다. OPD에서는 총 11개의 전문화된 분과가 아래와 같이 세 곳으로 나누어져 운영되고 있었다.(첨부 파일 참고)


                

  일단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분야가 세분화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복원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내 머릿속에서는 기껏해야 벽화, 건축 정도만 복원 대상이라 막연히 여기고 있었는데, 종이, 옷감, 금속까지 정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11가지의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만큼 복원의 대상은 무궁무진했다. 복원은 개별 사물의 차원이 아니라 결국 ‘과거의 세상을 현재로 불러오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복원 과정이 궁금했다. 설명을 들으니 일단 제일 중요한 단계는 ‘수습’이었다. 움브리아 지진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해주셨는데, 마침 그 지진의 영향으로 파괴가 됐었던 아씨시를 방문하고 와서 상황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수습한 물건들이 기관으로 집결된 후 전문 분과로 보내져 복원이 시작되는 구조였다. 운이 좋게도 인터뷰 후반에 직접 복원실을 둘러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명작들이 복원되는 그 현장에 들어가다니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나는 그동안 복원을 ‘예술’ 작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 복원실을 가보니 복원은 ‘과학’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엑스레이 기계 등 복원에 필요한 다양한 기계들 사이에서 복원사님들은 각자가 맡은 문화재 분석 및 복원 작업에 몰두하고 계셨는데, 그림들이 마치 치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환자 같은 느낌도 들었다. 복원의 핵심은 그 당시의 것이 손상되지 않도록 최상의 환경에서 문화재를 보관하는 것에서 출발해 점검, 분석, 테스트, 연구 작업을 충분히 거치는 과정이었다. 복원이 잘못되면 다시 복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엑스레이 분석에만 1년이 걸리기도 하고 그림의 두께부터 시작해 다각도에서 총체적으로 연구하고 거듭되는 회의를 신중하게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복원사를 떠올렸을 때 막연히 붓을 들고 그림을 수정하는 모습을 상상했던 내가 얼마나 무지했던가? 역시 모든 직업은 멀리서 봤을 때와 가까이서 봤을 때 참 많이 다르고, 우리는 개별 직업 세계에 대해 정말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복원사는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     


  돌이켜 보니 이제까지 15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장래 희망이 문화재 복원사인 학생은 한 명도 본 적이 없었고, 나 또한 학생들에게 문화재 복원사를 추천한 적이 없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니 추천하기가 어려웠고 학생들 또한 흔히 접할 수 없는 낯선 분야니 아무래도 관심을 잘 가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복원 현장을 둘러보니 방문 전까지 문화재 복원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나도 큰 매력을 느낄 정도로 정말 멋진 직업 분야였다. 이렇게 내가 모르는 세계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니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교사야말로 다양한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학생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열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왕 이렇게 귀한 기회를 얻은 거 직업으로서의 복원사의 전망이나 어떤 학생들이 복원사에 적합한지 좀 더 심층적으로 여쭤보기로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복원사도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요즘 시대의 화두와 연결하여 파격적인 질문을 드려봤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며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면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거라 하는데, 복원사의 전망은 어떨 거라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했다. 돌아온 대답은   

  

“아니요. 복원은 꼭 사람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복원은 프로그래밍할 수 없는 고도의 종합적 작업이기에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인간이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산물들이 복원의 대처 매뉴얼이 되는 셈인데, ‘경험’으로 배운 것들이 핵심이라 이를 기계적 작업으로 변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바탕이 되는 정신은 ‘인본주의’이기에 로봇이 대체하기는 어려울 거라 전망하셨다. 나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복원은 과학이자 예술이자 시대와 소통하는 인문학이기에 세부 과정에서 로봇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복원사가 하는 종합적인 일이 대체될 것 같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복원사’에게는 어떠한 자질이 필요한지 여쭤봤는데, 우선적으로 말씀하신 건 ‘열정’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이신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복원사는 ‘예술가가 아님’을 강조하셨다. 아마도 복원 현장을 방문하기 전의 나와 같이 복원사는 예술가라고 오해를 하는 경우가 제법 많지 않았을까 싶다. 주의 깊고 사려 깊은 심성, 객관적인 분석력, 정교한 손놀림이 필요하다고 하시며, 미술, 역사학, 과학적 지식 등도 중요하다고 함께 말씀해주셨다. 마지막으로 중요하게 강조하신 건 ‘팀워크’였다. 복원은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작업하는 협동에도 능해야 한다는 설명에, 매력이 있는 만큼 갖춰야 할 자질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International Training Projects(국제 연수 프로젝트)를 소개받다         



  본격적으로 복원사가 되고자 하는 길을 걷기 전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참여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International Training Projects(국제 연수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를 해주셨다. 국제 연수 프로젝트는 2주~5주 동안 자신이 원하는 세부 분과의 프로그램에 지원해 소수정예로 도제식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로, 큐레이터나 관련 분야 석박사, 대학생들까지도 참여가 가능한 프로그램이었다. 무려 24개의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있었는데, 1명부터 8명까지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 수용 가능 학생 인원이 달랐고 초급부터 고급 과정까지 수준도 다양했다. 그리고 과정에 따라 이론과 실습이 결합된 것부터 문화재를 직접 다뤄보는 작업까지 정말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이 가득했다. 


  이 프로그램은 12개 나라와 교류를 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한국은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OPD에서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관련 기관과도 교류를 하고 싶다며, 필요한 경우 다리가 되어줄 것을 요청하셨다. 영광이었다. 문화재 복원과는 전혀 관련 없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작은 거라도 양국의 문화 교류에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뭐라도 꼭 보탬이 되고 싶었다. 또 만약 이렇게 새로운 길이 열린다면 결국 우리나라의 학생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기에 교사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아쉽게도 메일 주소를 서로 주고받았는데 이메일 보안 프로토콜 문제인지 메일 수신이 되지 않아 결국 기관으로부터 구체적인 요청을 받지 못하며 이 교류 계획은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았으면 분명 가능할 수도 있었을 텐데 서울로 돌아와 다시 학교로 돌아가며 일상이 바빠진 것도 있었고, 여기에 코로나19가 확산되며 세계정세가 급변해 당분간은 교류를 진행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된 게 두고두고 아쉽다. 그래도 일단 교류의 작은 물꼬는 텄으니, 이 책을 계기로 다시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해보고 싶다. 많은 분들 덕분에 감사한 경험을 가득 한 만큼 지금 쓰는 이 책이 OPD와 한국 기관과의 교류에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그 길에 작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복원이란 ★이다!


- OPD에서는 마지막 복원실에서 ‘복원’에 대한 한 줄 정의를 부탁드렸다. 잠시 고민하시더니


‘복원은 개입(intervènto)이다.’


라고 이탈리아어로 정의를 해주셨다. 인터뷰 내내 계속 강조가 됐던 게 복원사는 예술가인 척하면 안 되고 복원에는 오리지널에 대한 존경이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이 정의에도 그 철학이 드러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 나는 최대한 진품과 똑같이 만들어서 복원을 한 티가 나지 않는 게 좋은 복원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복원사는 진품에 개입해 복원을 했다는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했다. 복원은 가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진품에 복원의 기록을 남기는 게 진짜 오리지널을 보존하는 길이라는 말이 정말 인상 깊었다.


  복원은 시대를 분석하는 과학이며, 적절한 개입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통로이고, 상처받은 사물들과 그 속에 담긴 정신들을 보존하고 회복시키는 의술이었다. 이 비밀스러운 신비를 품은 현장에 함께할 수 있어 정말 영광이었고, 전혀 몰랐던 세계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며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베아토 안젤리코(Beato Angelico)의 그림 ‘Pala di San Marco’를 복원하는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게 아직도 꿈을 꾼 것만 같다. 10월 이후 산 마르코 성당 박물관에 다시 걸릴 예정이라 했으니, 지금쯤은 아마도 제자리로 돌아가 있겠지. 피렌체를 다시 찾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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