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도, 결혼도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 우린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어제,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카페인에 유난히 약한 나는 결국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 베개를 몇 번 뒤집고, 이불을 고쳐 덮어도 잠은 오지 않았다. 시간을 흘려보내기 아까워 결국 넷플릭스를 켰고, 몇 달 만에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그렇게 셀린 송 감독의 "머티리얼리스트"를 만나게 되었다.
예전에 잠깐 봤던 트레일러 속 ‘결혼 매치메이커’라는 직업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다. 지인들의 소개팅을 연결해 주는 일을 좋아하던 나는, 언젠가 결정사를 차릴까, 혹은 데이팅 앱을 만들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이 영화가 끌릴 수밖에.
영화의 호흡은 느렸다. 그러나 그 느림이 묘하게도 새벽 5시까지 나를 어루만지듯 붙잡았다. 침대 끝에 몸을 구부린 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오래 잊고 지냈던 감정들이 문득 피어올랐다.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을 떠올리게 할 만큼,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문득 생각했다.
언제부터 우리의 결혼 풍경이 이렇게 차갑게 ‘비즈니스’가 되어버렸을까.
타협과 타산, 계산과 조건들.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는 마음이 사랑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건 아닐까.
사랑이 빠진 계약이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아무리 종이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는다 해도,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는 약속이 될 텐데.
사랑은 미쉐린 레스토랑의 예약도, 반포 신축 아파트도, 부모님의 은행 잔고도, 전문직 여부도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진 순간에도 여전히 ‘함께’ 있으려는 마음.
세상에서 단 하나, 나를 사랑하려는 단단한 의지.
정작 사랑 그 자체는 원래 가장 쉬운 것이 아니었을까?
사랑은 머리로 계산해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잘 보이려고 애쓰는 전략도, 완벽한 조건을 맞추는 작업도 아니다.
그저 마음이 자연스럽게 가닿는 곳을 따라가는 것.
그래서 사실은 가장 단순하고, 가장 편안하고, 가장 쉬운 감정이다.
데이트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 그 자체만큼은 가장 쉬워야 한다.
힘을 주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되고, 내가 내 모습 그대로 있어도 괜찮은 감정.
그게 사랑이다.
그래서였을까.
여주인공이 결혼 정보업계의 ‘유니콘’이라 불리는 해리와의 관계를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이 흘렀다. 우리가 잃어버린 감정이 아직 영화 속 어딘가에는 살아 있다는 사실에.
우린 너무 많은 걸 사랑에 덧붙여 어렵게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사랑은 어려워’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사랑을 어렵게 만든 건 우리 스스로 인지도 모른다.
학교에서조차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해야만 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사랑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배워야 할 감정이 된 걸까.
지금 이 시대의 우리는,
과연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그리고...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