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와 마리아 칼라스 사이에서

by 스텔라

어릴 적부터 나는 순대를 좋아했다.
그건 단순히 분식 메뉴 중 하나를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의 기억과 감각이 가장 먼저 반응하는 음식이었다.


해외에서 지내던 시절, 아버지는 한국에서 들어오실 때마다 냉동 순대를 꼭 사 오셨다. 비행기를 건너온 그 검은 봉지는 쉽게 상하지 않도록 여러 겹으로 싸여 있었고, 그 안에는 한국의 냄새와 말없이 전해지는 마음이 함께 들어 있었다.

오늘 문득 순대가 먹고 싶어졌다.
동네 분식집 몇 곳이 떠올랐지만 이전에 가봤던 곳들에서의 아쉬움이 먼저 기억났다. 그래서 별다른 기대 없이 그냥 발길이 닿는 곳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희끗한, 예순은 훌쩍 넘었을 것 같은 남자분이 조용히 주문을 받아주셨다. 가게는 크지 않았고 테이블도 많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는 오래된 라디오가 놓여 있었는데 카세트테이프를 넣을 수 있는 이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물건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였다. 분식집의 배경음악으로는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공간과 잘 어울렸다. 김이 오르는 순대와 떡볶이, 그리고 칼라스의 목소리가 겹쳐지자 그 장면은 뜻밖의 낭만으로 다가왔다.


그때 깨달았다.
분식집에서는 이런 음악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전적으로 나의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공간은 언제나 주인의 취향을 닮는다. 그리고 그 취향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기준을 조용히 흔들어 놓는다.


음식은 놀라울 만큼 맛있었다.
순대는 잡내 없이 부드러웠고 함께 나온 다른 분식들도 하나같이 정성이 느껴졌다. 아마 이 동네에서 손에 꼽힐 집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분의 삶을 상상하게 되었다. 이 라디오는 언제 들이셨을까, 이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인생은 길다.
그 긴 시간 동안 누구에게나 굴곡은 있다. 꿈이 여러 번 바뀌었을 수도 있고 처음 그렸던 모습과는 다른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것을 지나와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취향이다.


나는 바란다.
모든 사람들이 직업이나 자산이 아니라
각자가 오랫동안 지켜온 취향으로 매력적으로 기억되는 사회를.
무엇을 성취했는지보다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왔는지가 그 사람을 설명하는 기준이 되는 세상을.


오늘 먹은 순대 한 접시는 그 바람을 다시 한번 조용히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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