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함께 느낀 직장 생활: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그중에서도 직장 상사를!

by 스텔리나

노르웨이에서 사회생활 한지도 어느덧 3년이 좀 넘어가고 있다. 현재 직장에서는 1년 9개월 정도 일했으니 거의 2년 가까이 됐다니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그동안 노르웨이에서 겪은 직장 생활 에피소드를 적으면서 우리 팀을 담당하는 매니저와 잘 안 맞아 이직을 마음먹은 상황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도 역시 사람을 잘 만나야 하는 것은 어디든 똑같구나라는 것을 상기시키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작년 9월 말쯤 나는 임신을 확인하고 안정기인 12주가 지나서 매니저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


사실 그동안 임신 사실을 숨기면서 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심하진 않았지만 입덧도 있기도 했고 또 무엇보다 허리 통증이 제일 불편했다.


그래서 작년 크리스마스 휴가를 앞두고 매니저에게 미팅을 요청해 임신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렸고 당시에 어떻게 반응할까 걱정도 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긍정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업무 중 염려되는 점에 대해 얘기를 꺼냈더니 괜찮다라며 우리가 함께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을 했기에 걱정 없이 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내가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서 더 긍정적으로 반응한 건가 싶다.


그렇게 새해가 밝아 1월 2일부터 다시 직장에 복귀했는 데 일이 하나도 제대로 되어 있는 게 없었고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었다. 새해 업무 첫날부터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고 매니저 또한 스트레스가 가득 찬 눈치였다.


매니저는 겨울 휴가를 쓰지 않았기에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 길이 없어, 바빴냐고 물었더니 한가했다고 한다. 역시 그냥 자기가 할 일 제대로 안 하고 다른 직원들이 알아서 하길 바랐던 것 같다. 이것은 어떻게 됐고 저것은 어떻게 된 건지 묻는 나에게 짜증 섞인 톤으로 '내가 일일이 다 확인할 수 없어. 그건 그 직원들의 일이기도 하니까. 걔네들이 했어야지.'라며 책임전가를 했다.


무슨 말인지 알지만, 일이 안되어있으면 확인하고 시키는 게 매니저의 일이기도 한데, 자기 역할에 대한 책임은 크게 생각 안 한 것 같았다. 그냥 뭔가 왈가왈부하며 따지기보다는 이 매니저는 전반적으로 본인 일이나 팀이나 매니징을 잘 못하는 것 같았다.


아울러 휴가 전, 나는 무거운 짐들을 드는 일을 더 이상 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전했는 데 휴가 전에 나눴던 긍정적인 분위기와 달리 매니저는 다시금 예전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그냥 못한다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하며 너의 일이기도 한데 다른 사람들한테 너 대신해 달라 무작정 요청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하며 부분 병가서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몇 박스 안 되는 데 그냥 본인이 들면 안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굳이 다른 직원들의 도움도 아닌, 자기가 나서서 내가 도와줄게! 하면 될 것을..


우리 팀원 중 누가 임신했다고 하면 나는 그랬을 것 같았기에 부분 병가서가 필요할 정도의 일인가 이해는 안 갔지만 오히려 이게 내가 더 편하게 일할 수 있으니 흔쾌히 그럼 내 주치의와 얘기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친한 다른 팀의 매니저와 잠시 수다를 떨 기회가 생겨 해당 상황에 대한 고충을 전하자 "그 매니저가 너의 편의를 봐줘야 하는 거야. 그게 매니저 역할이고 해야 할 일인데.."라며 내가 이렇게 스트레스받고 부담을 느낄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해당 매니저가 자기네 팀으로 옮기는 것은 어떻냐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 매니저와는 같이 일한 적도 있고 일도 똑부러지게 해내고 배려, 공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 직장 내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직원 중 한 명인데, 이 매니저도 3월이면 그만두는 상황과 더불어 새로 고용될 매니저가 어떨지 몰라 사실상 그 제안도 썩 내키지는 않았다.


이어 아니면 어시스턴트 매니저가 아닌 자기 직책을 맡는 건 어떻냐고 물었는 데 사실 나는 이 업계, 이 회사에 더 이상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하여 이직을 마음 먹은 거기도 하고, 이미 서로 이직하고 싶어했던 것을 아는 사이기도 해서 솔직하게 "내가 너 직책에 지원해서 팀 매니저가 되면 이력서를 위해서라도 다음 이직을 위해서라도 (경력직 매니저의 경우 기본 2,3년간의 업무 경험을 요구함) 기본 2-3년 간은 일해야 할텐데 여기서 2년을 더 잡혀있고 싶지 않아.."라고 했더니 현 회사에서 총 4년을 근무한 그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나는 우리 팀 매니저에게 임신 사실을 전하기 전부터 주치의에게 임신 초기부터 겪은 통증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던 터라, 나의 주치의는 그다음 날 바로 부분 병가서를 써줬다.


그리하여 오늘부터 50%는 일하고 50%는 병가 중인 상태인데 스케줄 논의하면서 내가 단순히 그냥 몸이 안 좋아서 쓰는 게 아닌데, 매니저는 나의 컨디션,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네가 원하면 50%보다 더 일할 수 있다고 계속 강조를 하는 것이다.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노르웨이 직장 내에서 병가 중인 직원에게 일을 더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직원이 자발적으로 더 일하겠다 하지는 않는 이상.

그래서 사실상 매니저가 나에게 몇 시간 일하라고 강요할 수도 정할 수도 없고 병가 낸 직원이 얼마만큼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정하면 매니저가 그에 맞게 스케줄을 짜야한다.


자기주장은 절대 굽히지 않고 계속 자기가 원하는 말만 늘어놓으니 가스라이팅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대놓고 네가 내가 임신 중에 겪고 있는 통증, 불편함으로 인해 무리하지 않고 싶은 점 알았으면 한다. 내가 평소처럼 그냥 일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병가 낼 일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좀 자기주장이 수그러들었지만 나를 배려해주고 있다, 내 상황을 고려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이런 속상한 마음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는 데 이직 한 지 얼마 안 된 남편이 오늘 자기 매니저에게 내 임신 사실을 전하자, 엄청 축하해 주며 필요한 게 있음 자기한테 말하라고 했다며 또 남편이 아직 미확정이지만 우리가 생각 중인 계획을 공유하자 이를 적극 지지해 주며 남편이 염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얘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지지해 주고 자기 직원들을 챙겨주는 게 매니저가 당연히 할 일인데, 나의 매니저는 기본적으로 그런 자질이 없다. 아마 본인이 매니저 자리에 어울리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만 말이다.


사실 휴가 전 미팅을 가졌을 때 회사 창업자들과 초반부터 같이 일한 이사진들 중 두 명이 그만 두기로 동시에 결정하고 또 새해에는 다른 팀의 매니저와 어시스턴트 매니저가 동시에 그만두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해 출산 휴가 떠나기 전에, 웬만하면 내가 가능한 만큼 팀과 매니저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는 데, 이제는 그런 마음이 싹 가셨다.

내 몸 내가 잘 건사해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홀몸도 아니니 나를 우선시 두기로 정했다.


역시 어디든 직장 상사, 즉 사람을 잘 만나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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