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가 안 되어 분만실로 들어가게 됐다. 한국과 달리 노르웨이에서는 룸을 배정받으면 진통 과정 및 모든 분만 과정을 배정받은 방 안에서 진행되고 출산 이후 회복실로 이동된다.
분만실은 1인실로 보호자도 산모가 원하는 한 함께 있을 수 있으며, 안에는 욕조가 포함된 개인 화장실도 있어 프라이빗하게 분만이 이뤄진다.
한국에는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가 출산 과정을 함께 한다면 노르웨이에는 미드와이프가 존재한다.
의료적으로 수술을 진행하지 않지만 출산, 분만 과정에 특수된 직업이라고 할까? 산부인과 의사는 응급 제왕 절개 및 수술이 개입되어야 하는 상황에 등장하고 내진 또한 미드와이프가 진행하며 산모와 아기 심장박동수 등을 모니터링한다. 다만 임신 과정에서 함께 한 미드와이프가 출산 과정 또한 함께 하는 것이 아니기에 'Helsekort(한국으로 치면 산모수첩)'를 들고 가야 하며, 임신 중 어떤 이력 사항 등이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분만실로 들어서자, 해당 시간에 근무 중인 그리고 나를 담당해 줄 미드와이프 S가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병원복으로 환복 한 뒤 침대에 누웠는 데 진통이 더 심하게 느껴져 그냥 일어났다.
이를 본 S는 나에게 서서 있을 수 있는 스탠드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알아서 척척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내가 요구를 해야지만 그것을 가져다주는 스타일이라 사실 그렇게 도움이 크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정식 미드와이프가 된다며 아직은 학생 신분이라 그런지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단 옆에서 그냥 지켜보는 게 강했다. 그녀는 내진을 할 텐데 준비되면 말해달라 했고, 나는 침대에 눕는 게 두려웠다.
누우면 허리통증이 더 강해졌기에, 그래도 내진을 피해 갈 순 없으니 빨리 끝내자 하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도 막상 병원 가면 1,2센티 밖에 안 열렸다고 하는 후기들을 많이 봤는데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첫 내진이 생각보다 많이 아프진 않았는데 처음 겪는 느낌이라 불편감이 더 컸다. 그리고 한국처럼 아래 부분을 전체적으로 가려주지 않고 딱 중요 부위만 가려서 내진을 진행하기 때문에 남편도 이를 지켜보게 되는 데 민망함도 있었지만 진통 때문에 당시 크게 개의치 않게 됐다.
내진 후 통증이 더 심해져 괴로워하자, 다음번 내진부터는 좀 더 나아진다고 미드와이프 S가 말을 건넸다.
10센티까지 어떻게 버티지? 싶은 생각 밖에 안 들었고 난 중간에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제왕절개를 고려해 달라고 언급하자, S는 이유 없는 제왕절개는 진행되지 않는 점을 얘기하며 무통주사(에피듀랄)를 맞으려면 4-5센티는 되어야 하지만 무통주사를 맞는 경우 진행이 더디게 될 수 있는 점을 언급했다.
그렇게 한 삼십 분 정도 지난 줄 알았는 데 어느덧 시곗바늘은 오후 3시를 향해가고 있었고, S는 자기가 곧 퇴근하니 다음 교대에 근무하는 미드와이프가 3시쯤 근무를 시작해 이후 2차 내진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진행 정도에 따라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다고 했는데 3시가 지나도 다음 교대 미드와이프가 오지 않아 콜버튼을 눌렀다. 이후 미드와이프 S와 같은 학생신분인 C와 미들 시프트 책임 조산사 P가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미드와이프 C도 S와 동일하게 일주일 뒤에 정식 미드와이프가 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C는 내진을 진행했고 현재 3센티 열렸다며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조금 더 자극을 줬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무통주사를 요구했고 C 또한 진행속도가 느려질 수도 있다며 4센티가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을 권했으나, 상관없이 그냥 놔달라고 했다.
이에 C는 무통주사를 주문하겠다고 했고, 그 와중에 난 통증을 경감시키는 침술과 허리 통증 부위에 찌릿한 전류를 흘려보내는 전기 자극 패치, 즉 한국에서 물리치료 하면 흔히 받는 전기치료를 받았다.
침을 놓던 미드와이프 P는 내가 침을 너무 잘 맞는다며 놀랬다. 한국에서 한의원을 여러 차례 다녀본 경험으로 봤을 때 사실 그녀가 혈자리를 잘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정수리, 손, 발에 놓은 침술은 별로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움직이는 데 걸리적거려서 20분 뒤에 빼달라고 했다.
미드와이프 C가 무통주사를 주문함에 따라 곧 마취과 의사가 와서 무통주사를 놔줄 것이라 예상했지만 삼십 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고 재차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르웨이에서는 뭔가 늦어지는 것 같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확인해 달라 요청해야 한다. 대부분 주문했으니 오겠지라며 기다리는 편이기에 필요한 사람이 직접 체크해야 하는 게 일상적이다. 이에 출산 전 남편에게도 "혹시 진통 중에 무언가 늦어지거나 망설여지는 게 있다면 기다리지 말고 바로 요청하고 요구해 달라"라고 신신당부했다.
나의 요청에 미드와이프 C는 확인하러 나갔고, 다시 돌아온 그녀는 마취과 의사가 응급수술에 들어가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다음이 내 순번이라는 말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미드와이프 C가 진통 중인 나에게 "마취과 의사가 오고 있대요!"라고 말했다. 이에 난 시계를 확인했고, 두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만약 미리 요청을 안 했으면 자칫하다간 무통 주사 맞을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정말 아찔했다.
마취과 의사가 문을 열고 들어와 자기 통성명을 했다. 그리고 무통 주사를 맞기 전, 진통 와중에 특정 자세를 취해야 하고 움직이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미드와이프 C는 나에게 전기 패치를 떼어야 한다고 해 더 무서웠다. 그나마 전기 패치에 의존해 진통은 견디고 있었는 데 패치를 떼고 나면 진통이 더 세게 느껴져 빨리 무통주사 놓는 과정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미드와이프 C와 남편의 도움으로 자세를 취하고 그렇게 한 십여분 즘 지나 모든 것이 끝났다는 마취과 의사의 말이 있었다. 이후 놀랍게도 무통 천국이란 말이 이런 것이구나! 느낄 수 있을 만큼 진통이 많이 완화됐다. 하지만 질 쪽에 오히려 통증을 느끼게 되어 물어보니 원래 진통 중에 그쪽에도 통증이 있는데 허리랑 골반 쪽 통증이 워낙 강하다 보니 못 느끼는 거고 허리와 골반 통증이 완화되니 이제야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무통 주사가 질 쪽까지의 통증 완화를 해주진 못해 이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겪은 통증에 비해 정말 참을만해졌고 대화도 가능해졌다.
그리고 나는 진통을 겪으며 토를 여러 차례 했는데, 이에 C는 음식과 음료를 섭취할 것을 권장했다. 권장이 아닌 반드시 해야 한다고 안 먹으면 자기가 먹일 거라고 얘기할 정도로 토를 정말 많이 했다. 그리하여 과일, 음료를 섭취했으나 이후 또 토를 했다. 먹고 마시고 토하고의 무한 반복이었다. 출산 과정에서 토를 하는 경우는 반반이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C와 남편과 대화를 하며 무통의 시간 동안 여유를 갖게 됐다. 그리고 나는 "무통 아니었음 절대 못할 것 같아요"라고 C에게 말을 건네자, 그녀 또한 "아직 전 애기가 없지만 나중에 출산을 하게 된다면, 무통 주사를 반드시 맞을 거예요. 여러 산모들을 보지만 무통 주사 전후로 완전 다른 사람이 되는 걸 볼 수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대화는커녕 대답 또한 사치로 느껴지는 진통의 시간이 무통 주사로 긴 대화까지 가능하고 웃음조차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이니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도대체 어떻게 무통 없이 애를 낳을 수 있는 걸까?라고 생각이 들었고 4센티, 5센티 이후의 진통은 어느 정도인지 생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점점 자궁문이 열릴수록, 아이의 머리가 내려올수록 질 쪽에 느껴지는 진통이 강해졌고 나는 갑작스레 오른쪽 아래 허리 부분과 엉덩이 부분에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미드와이프 C는 한쪽만 덜 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아랫부분의 통증은 무통 주사로도 안 되는 것이라 했고 나는 무통주사 레벨을 더 높여달라고 했다.
그녀는 부스터샷을 넣어줬지만 이후 감통의 효과는 없었고 나는 다시 일어서 진통을 견디기 시작했다. 일어나 있으면 중력에 의해 조금 더 빠르게 진행된다고 하며, 그녀는 나에게 조금의 운동을 시켰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누워있는 거보다 일어나 있는 게 진통이 덜 느껴졌다. 아프긴 아프지만 그래도 조금 덜 아프다고나 할까?
미드와이프 C는 대부분의 진통 시간을 함께 해줬고 살뜰하게 살펴줘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나에게 관장을 했는지 물었는 데 안 했다고 하자, "어? 원래 오자마자 관장을 진행하는데?"라고 말해 따로 안내 못 받았다고 하니 이미 관장을 진행하기엔 늦었다고 괜찮다며 나중에 실수를 하게 돼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상관없다고 출산 중에 대부분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혹시 분만 전인 진통 중에 대변 신호가 오면 화장실에 가는 건 상관없다고 했다. 근데 진통으로 인해 난 화장실 신호를 전혀 느낄 틈새가 없었고 진통 중 종종 그녀는 나에게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비울 것을 요청했는 데 이 또한 토를 계속하는 탓에 나오는 게 거의 없었다.
그녀와 나는 대화 끝에 토를 너무 많이 했기에 아마 나오는 게 없을 것이라는 우스개스러운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오른쪽에만 느껴지는 진통의 세기가 강해져 대화가 불가능해졌고 이 고통마저도 무통주사를 맞고 있는 상태에서의 진통인지라 무통주사 없는 진통의 강도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나마 한쪽에 통증을 느끼는 것에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며 되뇌이며 또 한번 버팀, 인고의 시간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