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출산 리포트 3. 아기야, 만나서 반가워

by 스텔리나

진통,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까?

미드와이프 C가 나의 진통시간의 대부분을 함께하며 말동무도 돼주고 요구를 여러 차례 안 해도 한 번에 잘 챙겨줬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나의 아이를 받아주길 원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직장 상사의 친구가 이틀 전에 출산했다고 연락이 왔었는 데 무려 진통을 34시간을 했다. 나의 진통 또한 장시간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를 미드와이프 C에게 얘기하자 보통 첫 출산의 경우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놀라워하지 않는 그녀에게 "오늘 안에 진통 끝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네가 내 아이를 받아주었으면 좋겠는 데 그렇게 될까요?"라고 묻자, 그녀는 "음.. 지금 자궁문 열리는 속도가 1시간에 1센티씩 열리고 있는데요. 제가 오늘 오후 10시에 퇴근인데 빠르게 진행되면 그전에 가능할 것 같고 현재 상태로 진행된다면 자정즈음에 십 센티가 열릴 것 같아요."라고 하며 내진을 다시 한번 진행하기로 했다.


대화를 나눈 중간 그리고 이후에 또다시 진통의 강도는 심해졌고 다시 한번 나는 온전히 진통만이 함께하는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그 도대체 진통은 언제 끝나는 걸까? 애를 낳아야지만 끝나는 이 진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어 두려움이 컸다. 나는 버틸 수 있을까? 이 과정을 이겨낼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가 빨리 내려오게 도와주는 자세, 간단한 운동을 하며 그저 오늘 안에 끝날 수 있길바라는 것 밖에 없었다.


또다시 내진

오른쪽 허리 아랫부분,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골반 부분의 어느 한 지점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엄청나게 세게 쥐어짜는 느낌이랄까?


C는 무통주사가 종종 한쪽이 마취가 덜 될 때가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아이가 내려오면 올수록 아래쪽에 느껴지는 통증은 어떻게 할 방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난 무통주사 레벨을 올려달라 요청했고 부스터샷을 놔줬는데도 통증의 세기는 약해지기보다는 더 강하게 느껴져 나는 또 진통을 겪게 된다. 다만 한쪽만 통증을 느끼는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무통주사를 맞아 이 정도라면 무통 없는 찐 진통은 도대체 어느 정도 일지 가늠이 안 갔는데, 이미 두 차례 출산 경험이 있는 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6센티 때 무통주사를 맞았는데 난 그 후의 고통은 몰라, 근데 난 그게 너무 다행이라 생각했어."


미드와이프 C가 퇴근하기 전, 내진을 다시 한번 진행하기로 했다. 침대에 누울 때면 더 진통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난 진통 시간 동안 거의 서있었는데 내진 시에는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누워야 해서 꺼려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빨리 해치우자!라는 마음으로 누웠다.


내진을 하니 8센티 정도 열렸다고 해 지금부터 힘주면 안 되는지 묻자, C는 십 센티가 열리고 아기 머리가 어느 정도까지 잘 내려왔을 때 힘주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네이버 블로그 출산 후기를 보면 한국에서는 8센티, 9센티부터 힘주기 연습을 한다고 하는데 노르웨이에서는 10센티가. 다 열렸을 때, 즉, 확실해졌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았다. 초산이라 더 인내심을 갖기도 했다.


이전 내진과 동일하게 빠른 진행을 위해 자극을 줬다고 했다. 이후 더 심해진 진통을 겪다 보니 어느덧 미드와이프 C의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는 "저녁 근무하는 제 동료가 곧 와서 내진을 할 거예요. 모든 게 다 잘되길 바라고 내일 아이와 함께 만나요!"라며 응원을 담아 인사를 건네며 퇴근했다.


저녁 근무를 하는 미드와이프 S는 방으로 들어와 나에게 통성명을 했다. 난 진통을 겪으며 토도 해 기운이 많이 빠졌었다.


얼마 안 가 그녀는 내진을 진행했는 데 손을 휘저어 이전 내진과 달리 처음 느껴보는 불편감과 통증에 나는 어린아이마냥 울었다.

내진 결과 현재 9cm가 열렸다고 하며 10cm가 되게끔 자극을 주었다고 했다.

곧 10센티가 열린다고 하니 아이를 만날 수 있겠구나, 드디어 이 진통이 끝나는구나라고 생각하던 와중에 미드와이프 S는 아이의 머리가 잘 내려와 있지만 심박수가 조금 높다고 피검사를 진행한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분만 과정

한차례 피검사 이후 다시 한번 피검사를 진행하게 됐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고 나왔고 더 이상 자궁 수축이 진행되지 않아 20분 안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흡입 분만을 진행해야 한다고 의사가 도와줄 것이라고 걱정 말라고 했다.

미드와이프 S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의료진 두 명과 다른 3,4명의 미드와이프들이 장비들을 가지고 들어왔다.

미드 와이프들은 혹시나 다른 상황이 벌어질 것을 대비해 분주히 필요한 장비들을 설치하고 있었고 의사는 나를 어느덧 분만 자세를 취하게 됐다. 정말 얼떨떨한 상황이었고 여러 차례의 토와 진통으로 인해 이때의 상황에 대한 기억이 부분만 나지만,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분만 자세를 취한 후 의사가 나에게 힘을 먼저 주면 자기가 흡입 기구를 통해 아이가 나오게끔 도와줄 거고 이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내가 힘을 더 주면 자기가 다시 한번 흡입 기구를 통해 아이를 당기면 아이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의사는 흡입 분만의 경우 회음부 절개를 해야 한다고 이에 동의하는지 물었고 나는 동의에 회음부 마취가 가능한지 물었고 의사는 당연 마취 가능하다며 몇 군데에 주사를 놓아주었고 흡입 기구를 삽입하겠다고 하자 아래에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의사는 나에게 "이제 힘을 주세요!"라고 말했고 나는 이렇게 힘을 주는 게 맞나 의심됐지만 최선을 다해 힘을 줬다. 의사도 흡입 기구를 통해 아이를 한차례 당기자 아래에 더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의사가 한차례 더 "마지막으로 힘 한번 더 주세요!"라고 해, 다시 한번 나는 눈을 꼭 감고 힘을 최대한 줬다. 의사가 "이제 아이가 나와요!"라며 아이를 당겨 나의 품에 안겨주었다. 출산 과정 중 의사가 회음부 절개를 했다고 했으나 통증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주한 이 상황 속에 힘을 두차례 최대한 주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는 나의 가슴에 안겨있었다. 이 벅찬 순간을 느낄 때쯤 나는 방안에 퍼지는 피냄새에 또 한차례 토를 했다. 그리고 의사는 후처치를 하며 모든 게 다 잘 됐고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며 건강하다며 축하 인사를 건네고 방을 나섰다.


이후 미드와이프 S는 나에게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지 물었고 나는 일어서자마자 발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면서 앞이 노래지며 어지러움을 느꼈다. 몸에는 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어지러워요"라고 말하며 쓰러질 듯 휘청이자, S는 휠체어를 신속하게 가져와 나를 앉히고는 재빠르게 회복실(입원실)로 데려가 "일단 한숨 자세요. 아이는 제가 여기로 남편분과 함께 데리고 올게요."라며 나를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주고는 떠났다. 그게 출산 후 나의 마지막 기억이였다.


그렇게 약 12시간의 진통을 겪고 십 센티가 다 열린 뒤, 힘을 주면 미드와이프의 신호에 힘을 주며 애가 나올 것이란 예상과 다른 상황을 맞이하긴 했지만 미드와이프 C의 예측에 맞게 나는 아이를 자정 경에 만날 수 있었고 아이도 나도 건강해 감사했다. 이래서 출산은 예측하기가 어려운 거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네 시간 뒤에 일어난 나, 눈을 떠보니 조그만한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기야, 만나서 반가워.'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 아기가 함께 한 첫 이 순간, 방 안의 따뜻함이 감돌았다.

2025년 6월, 우리는 그렇게 부모가 되었고, 우리 가족은 두 식구에서 세 식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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