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자는 길에서 기타를 친다. 발 앞에 놓은 기타 케이스에는 몇 푼의 돈이 들어 있다. 가끔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무심하게 지나간다. 다들 바쁜 걸음으로 사라지고 남자는 계속 남아 해가 질 때까지 기타를 친다. 누가 듣지 않아도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이 이 남자의 의무인 듯 쉴 새 없이 계속된다. 남자의 기타는 무척 오래돼 보인다. 아니 너무 낡아서 구멍이 났다. 사실, 바디가 구멍 난 기타에서는 좋은 소리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건 무척 멋있다. 세월이 그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어찌 보면 오랜 세월 을지 내면서 만들어낸 영광의 상처로까지 보인다. 내 기타도 똑같이 구멍을 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다. 왠지 저런 기타이기 때문에 더 잘 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물론 최고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잘 관리된 좋은 악기와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훌륭한 재능, 상상도 안 되는 많은 연습과 그리고 음악들 듣기에 흠이 없는 완벽하게 공간에서의 연주가 가장 좋은 소리를 만들겠지만. 뭐, 그렇다고 해도, 구멍 난 기타에서는 좋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해도,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조금 틀려도, 약간 엉성해도, 수많은 청중에 둘러싸여서 기립박수를 받지 않아도. 연주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재미있을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좋지 않을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누군가는 진공청소기를 질질 끌고 와서 박수라도 쳐줄지도 모른다.
2.
구멍 난 기타에서 비전문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문적으로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구멍 난 기타로 길거리에서 연주해서돈 몇 푼을 받아가진 않을 테니까. 구멍 난 기타에서 열정을 볼 수 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닳고 닳은 기타가 있다. 그 기타는 그의 세계이다. 기타가 낡을수록 그는 음악에 더 집중했고. 기타가 구멍이 나더라도 손에서 결코 놓지 않았다. 흔히 아마추어들이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완벽함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미 완벽했다면 더 이상 아마추어 일필 요가 없는데도. ‘완성’이라는 기준을 스스로 세워놓고 그 기준에 미흡한 자신을 탓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 올라서야지만 자신이 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습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배우기도 한다. 기술적으로 훌륭해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기교가 부족한 프로들을 보면서 ‘내가 해도 저것보다는 잘 하겠다.’라고 생각하며, 자신 같은 천재를 알아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세상을 탓한다. 완벽해 지기 위해서 연습을 한다면 그걸로 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수많은 열정적인 아마추어들은 다 프로가 돼야 하는 건가. 뭘 왜 하는지에 대한 확실하고 구체적인 목표도 없는데 그저 실력 탓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자신에게 번뜩이는 재능이 없기 때문에 라고 안타까워하며, 모차르트 옆에 있는 살리에르 증후군에라도 빠진 것처럼 비관적인 생각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 남자에게 와서 물어볼지도 모른다. “왜 기타를 치나요? 지금 여기엔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아요. 당신이 만들어내는 울림은 허공으로 사라질 뿐이에요. 누가 기억이나 해줄까요? 누가 알아나 줄까요. 왜 무의미한 것에 자신을 버리는 건가요.” 생각해보면. 어느 누구도 힘들게, 고통스럽게 그렇게 하라고 시킨 적도 없는데 왜 그렇게 자신을 흔들리는 불안함에 가둔 채 나오지 못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괴로워하는 걸까. 어쩌면 조금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난 당신을 몰라 그러기에 당신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당신을 이해 못 할지도 몰라,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나는 그냥 이게 재미있어. 즐거워. 누구도 뭐라고 규정하지 않은 내 세계에서 몸부림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뻐.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더 뭐 어떤 이유가 필요한 걸까. 지금도 방구석에서 누군가는 열정으로 기타를 튕기고 있고. 엉터리로 글과 그림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완벽하지 않아도 그 자신의 작고 커다란 세계 안에서 즐거움을, 기쁨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3.
어찌 되었든 그 순간은 빛이 난다. 반짝반짝 아주 잠깐이어서 쉽게 눈치채기 힘들지만. 반짝거리기를 포기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까 봐 무서워서 겁이 나서 쉴 새 없이 반짝거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무도, 누구도, 절대, 그걸 막을 수는 없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혼자만의 시간에 반짝거리기 위해 다른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 안으로 들어간다. 누군가 이해해 주지 않아도, 아무도 몰라줘도. 괜찮다. 누군가는 등 뒤에 꿈을 메고 산다. 그 꿈은 무거울 수도 있고, 멋있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너무 소중해서 조심조심 메고 가야 할 때도 있고. 무심코 바쁘게 살다가 어느 순간 떠올려보니 등에 아무것도 메고 있지 않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여하튼 등에 뭔가 지고 가야 한다는 건 제법 힘들고 지치는 일이다. 반짝거리다 지쳐서 힘들 때. 생각과 걱정이 앞설 때. 불안하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잠시 멈추고, 잘 생각해보라. 반짝하고 빛이 나서 두근거린 순간을 기억하라. 그리고 자신의 세계에서 세상을 바라보라. 때로는 심심하고 무덤덤한 진실성을, 그 녀석은 당신과 한 번도 떨어져 있던 적이 없으니까. 혹시, 그대 지금 반짝거릴 권리를 포기하고 있진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이라고 하는 권리도 함께 잃어버리고 있는 중이다. 그건 당신이 아니다.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반짝거려라. 그러므로 내가 여기에 있음을 증명하라. 그것이 당신이 해야 할 몫이다. 아직 서툰 손으로 자신의 것을 만들어 나갈 때 누군가는 당신의 뒤에서 조용히 그대의 몸짓과 노력을 소리 없이 응원하고 있을 테니.
Once (2006)
director - John Car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