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양원역, 그 부근 - 2012년 10월

by steloy

새로 카메라를 들였다. 사진을 잘 찍지도 못하고 어떻게 찍어야 좋은 사진을 만드는지 모르지만, 카메라가 사고 싶었고 사진이 찍고 싶었다. 뭐... 바로 얼마 전에 카메라를 다 팔아버리고 이제는 사진 안 찍을 거야 라고 한지 채 몇 날 지나지 않았지만. 이번에 내손에 들어온 카메라는 철 지난 디지털카메라였다. Leica-x1은 새로운 모델인 x2가 나와 있는 그야말로 구식이었다. 몇 번 찍어서 손에 익을 때쯤, 감도를 높였을 때 보여주는 질감이라든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외장 파인더로 보고 찍는 느낌 등등. 왠지 이 녀석이 만드는 결과물이 미니룩스에 코닥 tri-x로 찍은 사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날로그를 흉내 내는 불행한 디지털. 아니면 조금이나마 아날로그적 향수를 찾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카메라를 사기 전 Af가 느리다는 말에 긴장했지만, 최신식 디지털카메라를 써본 적이 없는 나는 느린 것인지 빠른 것인지 못 느꼈고. 처음 전원을 넣은 뒤 첫 컷을 찍기 전까지의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는 사실은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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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왜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행동을 하는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합당해야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거창한 목적의식이라든지, 주제 의식 같은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었다. 단순하지만 필요한 한 가지 이유.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 이 질문에 관한 대답을 찾고 있었다. 무엇을 찍는가, 어떻게 보는가, 어떻게 찍는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며 나는 엉뚱한 방법으로 답을 찾고 있었다. 카메라 탓을 하며 장비를 바꾸기도 했고. 장소가 문제라고 생각해서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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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셔터를 눌렀을까. 장소는 기억을 공유한다. 공간은 사건을 만들고 추억이라는 시간을 조직한다. 새로 카메라를 들이면서 가까운 곳에서 사진을 찍 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작업실이 있는 양원역 부근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실 처음에는 위치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구석구석을 조심스럽게 둘러보면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가 많아서 조용한 분위기였고 낡은 연립주택들은 – 물론 그곳에서 사는 사람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 오래된 건물이 주는 매력이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도 있었고. 잘 꾸며진 공원과 중앙선이 지나가는 장소에서 문득 이 곳 이 일본의 어느 조그마한 동네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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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이 슬펐다.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슬픔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들이 슬펐을까. 누군가를 찍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옮기는 것이고, 그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공간을 찍음은 삶의 한 부분을 훔쳐오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언젠가 어딘가 있을 장면을 생각한다. 그들은 숨 쉬고, 말하고, 일하고, 다투고, 사랑하고, 걷고, 뛰고, 울고, 웃는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수많은 행동 과수를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을. 모두들, 무엇이든, 그것이 비록 언젠가는 사라지더라도. 그리고 잊힌다 하더라도. 바로 지금 살고 있는 것. 그 놀라운 세계에 채 다가가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보고 사진으로 담는 나는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파인더 뒤에 머리를 조아리며 숨어있는 나는 피사체인 그들과 거리를 둔 채 아무런 소통을 하지 못하고. 그들의 삶과 인생을 옮기는 관찰자도 무엇도 아니었다. 그런 나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의미 없는 내가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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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연다는 건 두 개의 세계가 만나는 것과 같다. 나는 사진이 그저 아프지만은 않다고 느낀다. 사진은 말한다. 그 안에는 이야기가 있다. 남겨진 사진들이 그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한때 사람이 너무 많은 곳에 가면 무서웠다. 수를 셀 수 없는 그 사람 마다이 야기가 있으니까. 그 사람마다 생각이 있으니. 그것들을 떠올리고 있으면 자리에 털 썩 주저앉아 펑펑 울어 버릴 것만 같았다.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사람이니까. 사람이라서. 그래서 모두가 너무 소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 쓸데없이 눈물이 많은 나이기도 하지만 그전에는 잘 몰랐던, 어쩌면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에 대해 마주하고 있자니 거기서 오는 현실감이 새삼 서글퍼서 눈물이 맺히기도 하고. 그렇게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살아있어서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기록을. 수많은 삶의 방식을 남긴다는 건 모두 다른 모양과 다른 배경으로 사람의 공간을 둘러싸면서 시작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 떨어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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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진은 눈과 마음에 드러난 대상을 담고 있었다. 필요한 건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고. 그다음에 자연스럽게 그걸 왜 찍었는가 대한 물음이었다. 그 이유는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어도. 사랑하기 때문 아닐까. 치기 어린 답이지만 순간을 기억한다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을 사랑하려는 의지니까. 바로 그런 마음, 혹은 태도니까. 결코,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랑이라서 소중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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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시 질문해본다.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할까?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하고, 무엇이 좋은 사진일까? 이런 질문에 과연 그런 게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냥 좋아하는 것을 찍으면 되는 걸까. 꽃이 좋으면 꽃을 찍고. 그림자에 매혹되면 그걸 찍으면 되는 걸까. 만약 누군가가 너무 좋다면. 그래서 기억하고 싶다면. 그를 찍으면 그러면 되는 것 일까. 사진 장비가 어떻고, 심도나 노출 구도 그런 것이 중요한 걸까. 그냥 찍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 그때 셔터를 누르면 되는 것 일까. 그 순간을 남기면 되는. 짧은 셔터 안에 기록된 추억을 기억하면 되는 걸까. 그렇게 기억되는 추억은 즐거울까. 생각만 해도 콧잔등이 시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이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을까. 추억은 추억이라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뿐일까. 아니면 어떤 것이라도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은 자의적 오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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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어가는 자들과 함께 죽는다. 보라, 저들은 떠나고, 우리는 저들과 함께 간다. 우리는 죽은 자들과 다시 태어난다. 보라, 저들은 돌아와, 우리를 데려간다. (t.s.elliot)”


우리는 매 순간마다 이 세계가 소멸하고 또다시 태어난다는 기적적인 상황을 가정하거나 아니면 현재에까지 계속 뻗어오는 실재를 과거로부터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은 추억이고 기록이다. 순간은 아름다워서. 그래서 막연히 보고 있으면 슬퍼진다. 우린 이 순간을 영원히 잊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가 있었던 장소는 영원히 사라질 테니까. 의미 없는 그 사진들은 기록일 수도 있고 기억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진은 이야기가 되고 우리라는 존재는 쉽게 죽지 않는다. 오래된 사진이 그것을 가르쳐준다. 사라질 시간, 장소, 그리고 나에 대해서. 어쩌면 내가 내 안에 함몰되어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 죽은 자들과 다시 태어나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길 기대하며. 부디 그러기를 바라며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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