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번째 카메라는 로모였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디지털카메라가 나오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때에도 사람들을 매혹하는 많은 카메라가 있었지만 나는 로모가 좋았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무척 엉터리인 카메라입니다. 사용자의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인 카메라죠. 자동도 아니고 뭔가 애매한 경계에 놓여 있는 카메라입니다. 초점을 맞추기 어려워 자주 흔들리고 뿌연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로모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엉뚱한 것에서 더욱 매력을 느끼곤 했습니다. 누군가는 상업적으로 잘 포장된 마케팅에 사람들을 홀린 거라고 합니다. 그래도 로모를 쓰는 사람들은 로모가 손안에 있는 순간은 자신이 왕가위나 빔 밴더슨 같은 감독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죠. 어쩌면 로모가 그들을 열광시킨 건 자유로움 이때 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좋다는 기준은 필요 없었습니다. 형태나 형상으로서의 완성보다는, 그저 감정적으로 좋다는 느낌에 빠지는 겁니다. 잘 찍은 사진, 메시지가 담겨 있는 사진도 있지만. 한편으로 뭔가 불완전한 것에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바로 그때 하루키의 소설에 열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그랬던 겁니다.
카메라를 들고 여러 가지 것들을 필름에 담았습니다. 꽃이나 그림자, 사람들, 음식 등등. 그중에서도 매번 찍을 때마다 아쉽고 매번 뭔가 제대로 사진을 찍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 언제나 처음으로 담고 싶은 건 바다였습니다. 많은 피사체는 조금씩 혹은 확연히 변하고 사라지지만 바다는, 하늘은 그대로 있어 보였습니다. 눈을 감아도 고개를 돌려도 항상 그곳에 있었죠. 하지만 고심한 끝에 셔터를 누르면서도 절대로 바다를 제대로 담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순간을 낚아챈 것에 만족했지만. 어떤 것에도 변함이 없다는 것은 두려움이었고 한편으로는 지속성에 대한 경외심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내 손에 있던 카메라들은 계속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정말 사고 싶었던 카메라를 열심히 돈을 모아서 산 뒤 기뻐했던 날도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점점 찍고 있는 피사체들도 조금씩 바뀌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도 조금은 변했습니다. 치기 어림과 불완전성은 점점 틀과 형식 그리고 완벽함에 대한 갈망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처음 느꼈던 즐거움은 생각이 나지 않고 더 완성된 결과물과 그걸 위한 장비와 여건을 찾고 있었습니다. 한계나 능력의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이렇게 마음 상해가며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게 부담이 되었던 거죠. 그래서 그만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잘 안 되는걸 굳이 애쓸 필요 없다고, 이제 그만 하자고 나 자신을 설득했습니다. 어쩌면 비겁함이었을까요. 아니면 현실적인 타협이었을까요.
그때 정신없이 찍었던 바다와 하늘은 소름 끼칠 정도로 여전합니다. 푸른 세계의 경계, 하나의 세상이 시작되는 것 같아 마구 뛰어들었던 기억이며, 한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나 자신이 사라질 것 같은. 여전한 것, 변하지 않는 것, 그게 아직도 남아있는지 아프게 물어봅니다.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파도에 눈물을 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