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바닷가 그리고 라면가게

by steloy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입김이허공을 맴돌다 사라진다. 코끝이 시렸다. 바람이 멈춘 것 같았다. 눈은 너무 천천히내려 도무지 지면에 닿을 수 없어 보였다. 손을 내밀어 눈을 잡아보려 해도 모든 감각이사라진 듯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닷가였다. 정신없이도망쳐왔지만 언제나 같은 바닷가였다.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필름 카메라였다. 카메라 안에는 언제나 그 안에 자신이 있어야 하는게 당연하다는 듯이 필름이들어 있었다. 필름 카운터는 35를 가리키고 있었다. 1장 어쩌면 2-3장 정도를 더 찍을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기에 라면가게가하나 있었다. 허기를 느껴서일까. 아니면 무엇인가 있다는 사실이 기뻐서였을까. 혹은무엇인가 있다는 게 두려워서였을까. 로모의 파인더로 라면가게를 바라본다. 평범해보인다는 게 이런 것을 말하고 있는 듯. 라면가게는 평범해 보였다. 오히려 바닷가가주변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라면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어서오세요.”

그렇게 그 안에서 나를 맞이한 건 바로 ‘너’였다. 나는 흠칫 놀랐다. 표정 하나 바뀌지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의 모습에 더욱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네가아닌가. 맞는데 모른척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어지러웠다.

“자리에 앉으세요.”

그렇게 ‘너’ 인 것만 같은, 아니.. ‘너’는 나를 자리로 안내했다. 가게 안은 한적했다.두개의 테이블이 있었고 테이블마다 주변에 두개의 의자가 놓여있었다. 테이블 위에는간촐하게 꾸며져 있는 장식들이 있었다. 한쪽 벽에 벽난로가 있었고 마침 불을 지피고있었다. 가게 안에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엘리엇 스미스 인가요..? 지금 나오는...”

“네 엘리엇 스미스에요, angle in the snow라는 곡이죠. 좋아하세요?”

사실 엘리엇 스미스를 잘 알지는 못했다. 몇 영화에서 그의 노래가 쓰였다는 사실과자신의 집에서 키친 나이프로 자신의 가슴을 찔러 생을 마친. 마지막으로 포스트잇에’I'm so sorry-love, Elliott. God forgive me’ 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 정도만 알고있었다. 목소리가 가늘고 가끔 음정이 맞지 않는 그의 목소리는 불안함을 가지고있으면서 무언가 알수 없는 애절함이 있었다. 그 애절함은 어디서 부터 비롯되는 걸까.

“사진 찍으러 오셨나봐요? 많이들 사진 찍으러 오곤 하던데... ”

‘너’는 내 카메라를 보고 그렇게 물었다. 사진을 찍느냐고. 손에 카메라가 있으니사진을 찍는다고 대답을 해야겠지만.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나 자신이 사라진 것같았으니까. 여전한 것, 변하지 않는 것, 그런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너’와 헤어지고 난 다음. 아마 그때 부터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라면.. 시켜야겠죠. 메뉴판을 주시겠어요?”

나는 ‘너’ 가 물어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었다.
라면가게에 들어와 라면을 주문한다. 이것은 당연한 클리쉐였다. 나는 당연하게 행동했다.

“사실.. 메뉴는 따로 없어요. 라면, 하나에요. 너무 솔직한 라면가게죠.”“라면.. 이면 되죠. 하나 끓여 주시겠어요?”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나오거든요.”

정말 말한 그대로 라면은 금방 나왔다. 정말이지 솔직한 라면이었다. 집에서 막
끓인듯한 라면. 그 흔한 대파나 계란도 넣지 않은 그런 라면 이였다. 라면가게에서 이런무성의한 라면을 팔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내 실망한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너’는 다른 테이블로 가서 내가 오기 전에 보고 있었던 책을 읽기시작했다. 빨리 먹고 나가버리자고 생각했다. 왠지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기대하던그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라면가게라면, 아니 적어도 ‘너’라면 나에게 이렇게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라면이 끓여져서 나온 시간만큼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언가 말을 하려 했던 ‘너’의 말은 듣지 않은 채
주머니에 있던 돈을 꺼내서 테이블에 내려 놓고 황급히 도망쳐 나왔다. 생각해보면.
왜 소심하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던 것일까. 내가기대했던 라면은 그게 아니었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나는 너무도 다른 라면을기대했던 것일까. 상상 속에 있는, 그래서 현실에 있을 수 없는 그런 라면을기대했는데 그런 기대에 들어맞지 않았던 라면에 화가 났던 걸까. 실망했던 걸까.그냥 하나의 라면 이였을 뿐인데, 도대체 난 왜 그랬을까.

우린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이야기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그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왜 그렇게말을 했을까. 가끔은 후회되는 이야기도 있고. 생각하고 있자면 너무 즐거운 이야기들.
아 그게 마지막이었구나. 근데 그때 왜 그랬을까. 라고 떠올리게 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사실 그렇게 마지막은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도망쳐나와도 여전히 그곳은 바다였다. 영원히 그 바다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파도가넘실거린다. 수평선이 일그러진다. 하늘과 바다는 어디서부터 하늘이 끝이 나고.
또 어디서부터 바다가 시작 되는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태양은 뜨거나 지고 있었고.바람이 불어왔다. 바닷내음이 코를 자극했다.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다시 파도 소리가 들렸다.


찰칵.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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