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글

by steloy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매번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건 글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죠.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내가 쓰는 글이 과연 좋은 글일까, 혹은 글이라고 불릴 수 있을만한 내용의 나열일까. 이런 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이런 궁금함이 먼저 생각나죠. 과연 그렇다면 뭐가 좋은 글일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절박한, 정확한, 아름다운 글이 좋은 글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절박한 글이라는 건 진실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처음이라고 남겨져 있는 기록은 알 테미라 동굴에 있는 암각화라고 알려졌습니다. 그 암각화는 가장 오래된 것 중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 그림에서부터 서양 미술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 그림이 단지 유물로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 그림 안에서 절박함이 담겨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표현하고 싶은, 어떤 좋은 도구도 틀도 개념도 없는 상태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절실함이 돌을 긁음으로 나타내어진 겁니다. 그 표현에 대한 절박함은 진실성에 대한 이야기가 됩니다. 이후로 나오게 되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은 모두 여러 의미에서의 진실성. 그러니까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인 거죠.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박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진실성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사람들이 누군가를 좋아해서 연애편지 같은 글이나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건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것에 대한 절박함인 거죠.


그리고 두 번째는 정확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좋은 글은 정확하게 쓰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하다는 건 문장의 구성에 대한 이기도 하고 문법에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문장 혹은 문맥 글의 행간 글 전체가 유기적으로 꾸며져 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주제가 작가가 의도된 곳에서 나타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올바른 문법이 필요한 거죠. 접속사 문장부호 하나하나가 너무 어렵고도 중요합니다. 게다가 저는 한글 문법이라는 게 너무 어려워서 매번 힘듭니다. 어떤 단어를 쓸 껀지 어떤 표현을 할 건지, 접속사 문장부호 하나 고르고 선택하는데 계속 고민하고 고치고 또 고치는 게 글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글, 단어, 표현, 묘사 등등 글로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새 몇 질투가 나는 작가들이 있는데 질투의 이유 중 대부분은 그들의 글이, 표현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다워서 읽고 있자면 부러워서 화가 날 것 같은 작가가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표현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야기하는 내용이 같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서 글이 아름다워질 수 있고, 누구도 읽고 싶지 않은 재미없고 평범한 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글 자체에서의 맛이 느껴지는 글 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구성요소가 각자 따로 가 아닌 게 절박함은 그러니까 진실함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선 정확해야 한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정확한 것은 아름답고, 그것이 아름다워지려면 절박하게 정확하려고 애써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보통 글을 쓰는 사람은 절박함에 더 끌리고, 글을 배우는 사람은 정확함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름다움에 매료되곤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글은 바로 글 쓰는 사람 그 자신입니다. 작가가 알고 느끼고 배우고 경험한 것 그 이상을 쓴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형식이 달라져도 문체나 구성이 바뀌고 글이 길거나 짧거나 상관이 없습니다. 글은 글이 쓰인 그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글로 세상과 대화를 하는 거죠. 예술사조 형식에 여러 가지 것들 있는데 고딕이라든가 로코코라든 가르 레상스, 모더니즘, 형식주의 뭐 그런 것들. 이것들은 누가 정해서 오늘로 로코코가 끝났으니 신고전주의 시작 곧이어 안상 주의 대기. 이런 게 아니고 수많은 작가 미술가 음악가들이 자기 작품과, 세상과 계속 대화하면서 서로 대립하기도 하고 설득되기도 하면서 점점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은 살아 숨 쉰다는 말입니다. 내 공책에 써놓고 나만 보면 나 자신과의 대화. 이렇게 게시판에 써 놓으면 누굴지 모르는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인 겁니다. 이런 대화에서 중요한 건 누군가 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말하는 걸 누가 보길 원한다는 것. 한마디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받기를 희망한다는 의미 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글은 참 무거우면서 어마어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조건들을 외에도 많은 요소가 있지만. 글쓰기가 쉽지만은 않은 건 글은 글 자체로서 살아있다는 겁니다. 써진 순간부터 글은 의미와 또 다른 새로운 의미로 진화, 변화하기도 합니다. 작가가 의도해서 그렇게 변할 수도 있고, 의도치 않아도 글을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글은 또 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건 한계를 넘어 새로운 세상에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글을 쓰는 나와 크기를 알 수 없는 지금까지 존재 해왔고 잎으로도 계속될 영원함에 대한 그것들을 마주하자니 부담스럽고 어려운 부분도 많지만. 밑에 ok버튼을 누르면 이 글은 여기 올라가겠고. 하나의 다른 세계와 대화를 시작됩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글 쓰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서는 글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저자는 글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글을 쓰죠. 하지만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하는 질문은 왜 쓰는가 라는 질문과 무엇을 쓰는가에 대한 질문에 관한 답변입니다. 아름다움이란 솜씨의 문제이고, 솜씨는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죠.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싶어 함의 욕망, 소위 말해 창작에 대한 욕구는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됩니다. 그 아름다움은 여러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영원성과 지속성에 대한 염원, 때로는 순수한 미에 대한 찬미, 혹은 기술적으로 기능적으로 완벽함에 대한 동경 같은...


그리고 사실 세상에는 듣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와 밝히지 않아도 되는 비밀이 있습니다. 사실 내 것은 어느 쪽 인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그저 좋아하니까 라는 이유로 또 쓰고 고치고 다시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입니다.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들로 아무렇게나 말하고. 그리고 더욱 제대로 된 것을 말하거나 쓸 수 있을 것 인가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하면서. 어떤 것이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제대로 판단하고 구별할 수는 없지만. 확신하고 모른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런 말도 채 말을 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어리석게 생각하며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은 우습고 가볍다고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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