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민둥산: 억새가 피운 인류세의 산

[강원도 정선]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

by STEMin
- 소요 시간: 서울역 출발 기준 약 4시간 30분 (운전 3시간 + 등반 90분)
- 주요 동선: 서울 → 정선 민둥산 입구(45분) → 거북이 쉼터(45분) → 민둥산 정상(1,117m) / 돌리네 구역


[1] 민둥산: 억새가 피운 인류세의 산

시간: 서울역에서 민둥산 입구 주차장까지 운전 약 3시간(200km) + 등반 90분

여정: 민둥산 입구(45분) → 거북이 쉼터(주중 주차 가능, 45분) → 민둥산 정상/돌리네

여행팁1: 입구에서 시작 시 경사가 심하고 미끄러움, 등산화 필수

여행팁2: 거북이 쉼터부터 억새밭이 시작하므로 이 지점에서 시작을 권장(단, 주중에만 주차 가능


정선 남면에 위치한 민둥산(해발 1,117m)은 이름처럼 ‘나무가 드문 산’이다. 그러나 이 ‘민둥’은 자연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조선 후기 화전민들이 나무를 태워 밭을 일구고, 일제강점기에는 석탄 채굴로 숲이 사라졌다. 이후 경작이 중단된 자리에 억새가 자연적으로 확산되며 초지 생태계가 복원되었다. 지금의 민둥산은 인간의 이용과 자연의 회복이 반복된 결과로, 산업과 생태, 그리고 시간이 공존하는 인류세(Anthropocene)의 지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민둥산 입구에 주차하고 산길을 올랐다. 길은 정비가 잘되어 있지만 경사가 급한 구간이 많아 등산화를 신는 것이 좋다. 민둥산 초입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함께 자라는 혼효림으로, 숲이 짙고 낙엽층이 두꺼워 흙이 부드럽다. 중간 지점부터는 숲을 벗어나면서 시야가 탁 트이고, 산허리에는 개간된 배추밭이 나타난다. 인간의 손길이 스쳐 간 흔적이다.


거북이 쉼터를 지나면 풍경이 달라진다. 나무가 사라지고 은빛 억새가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이 초지는 경작과 방치가 반복된 산지에서 자연적으로 복원된 2차 천이의 결과로, 인간의 이용과 자연의 회복이 맞닿은 지점이다. 가을이면 능선 전체가 은빛 물결로 변하고, 이곳에서는 ‘정선 민둥산 억새축제’가 열린다.


정상에 오르면 백두대간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억새의 물결 아래에는 인간의 흔적이, 그 아래에는 4억 년 전 바다의 기억이 잠들어 있다. 민둥산은 약 4억 년 전 고생대 바다의 해양퇴적층이 지각 변동으로 융기해 형성된 산지다. 당시 바다에는 삼엽충, 산호, 갑주어가 살았고, 이들의 석회질 잔해가 쌓여 오늘날의 석회암 지층이 되었다. 이후 일부 지각이 장기간의 압력과 열을 받아 단단한 편마암으로 변성되면서, 석회암과 변성암이 공존하는 옥천대(Okcheon Belt) 특유의 복합 변성대가 만들어졌다.


능선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움푹 팬 땅, 돌리네(Doline)를 볼 수 있다. 석회암은 겉보기에는 단단하지만, 오랜 시간 물과 이산화탄소를 만나면 서서히 용해된다. 이렇게 생긴 지하의 빈 공간이 무너지면서 지표가 함몰된 것이 돌리네다. 민둥산의 정상부와 사면 곳곳에 남은 돌리네는 고생대 해양 환경이 지표로 드러난 사례로, 한반도 지질 진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단서다.


흥미롭게도 이 석회암은 인류 문명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석회암을 고온에서 열분해하면 생석회가 되고, 점토와 함께 다시 가열하면 시멘트가 된다. 자연이 물과 시간으로 바위를 녹였다면, 인간은 불과 기술로 바위를 다시 굳혔다. 민둥산의 돌과 시멘트의 돌 사이에는, 자연과 문명을 잇는 순환의 고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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