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의 도시, 도요오카 (2) 도요오카를 거닐다

2025년 제6회 도요오카 연극제 방문기, 그 첫째 날

by 시나브로

루틴 관리를 위해 투두 앱을 쓰고, 틈만 나면 시계를 들여다 볼만큼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는, 흔하게 말하는 파워 J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냐면, 그건 아니다. 그저, 정리나 계획 없이 행동을 취하는 걸 선호하지 않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도요오카 방문 일정에는 공연을 관람하는 시간과 지인들 만나는 것 이외에 굳이 다른 일정을 만들지 않았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었을뿐더러, 이번 여행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쓰지만, 소일거리는 끊임없이 있었다는 건 안 비밀).




기차 안에서 구글 지도를 켜고 도요오카 시내에 있는 다이소 위치를 확인했다. 한국에서 오미야게 (お土産*)로 가져온 과자를 담을 종이 가방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편의점에서 구입할 때만 해도 다른 봉투는 없어도 되겠지 싶었는데, 당장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물건만 건네는 게 영 볼품없이 느껴졌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방에 짐을 푼 다음, 가장 먼저 다이소를 찾아 나섰다.


*일본어로 토산품이란 뜻을 가진 단어. 보통 타인의 집을 방문하거나 만날 때 주는 선물을 지칭함.


바깥은 짧게 비가 내린 다음이라 계속 흐렸다. 도요오카는 특별히 높은 건물이 없어서 고개를 들면 어디든 뻥 뚫려 있어서 하늘이 잘 보였다. 도시 계획을 짤 때부터 일부러 구획을 긋고 시작한 건지 지도에 나온 길들이 반듯반듯했다. 연극제가 한창이긴 했지만 길거리는 어딜 가나 한적했다.



다이소나 스키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프랜차이즈는 도요오카 시내에서도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숙소는 역 근처에 남쪽이다 보니 다이소까지 가려면 걸어서 10분 이상 가야 했다. 그래도 종이가방 없이 과자만 줄 순 없지 않나. 열심히 다이소까지 걸어갔다.




도요오카의 아케이드

아케이드 상가


일본은 오래된 아케이드 상가(가 많다. 내 또래는 아케이드 하면 크*이지 아케이드라는 게임부터 떠올릴 텐데, 그 아케이드와 같은 스펠링을 가진 건축 양식 중 하나를 일컫는다.


* 양 쪽에 점포가 즐비하면 그 위를 아치형 지붕이 덮고 있고 길게 이어지는 상점가를 아케이드 상가라고 한다.


중심부에서 많이 떨어진 동네라 그런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가 많았다. 시골 동네의 비극이라고 해야 할까. 흥미로운 장소로 보이는 가게 중에는 아예 폐점한 곳도 더러 있었다.



아케이드 상가 안에 있는 가게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히구라시 HIGURASHI'라는 카페였다. 외부만 봐도 들어가 보고 싶게 생긴 장소였다. 가게 문 유리에 쓰인 문구에 따르면 적어도 90년은 넘은 가게였다. 아케이드는 공연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중에 지나갔던 지라 다음날 꼭 방문하겠다고 다짐하고 안녕했다.



아케이드 상가 중심부에는 도요오카 시청이 있다. 이때 시청에서는 프린지 페스티벌과 야외 마켓이 한창이었다. 마침 내가 갔던 시기가 나이트 마켓이 진행되는 기간이기도 해서 밤에는 더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도요오카 시내는 어딜 가든 오래되어 녹이 슨 신호등이 있었다. 신호등이 달린 전주에는 나무를 점령한 이끼 같은 넝쿨식물이 붙어 있어 마치 이제는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극장을 가는 길목에는 다리가 있었다. 도요오카 시내를 유일하게 흐르고 있는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였다. 가는 길목에는 황새의 도시인만큼 황새 동상이나 황새가 그려진 표지판이 보였다.



오래된 작은 정류장과 이발소 건물, 그리고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놀이터. 극장을 가는 동안 사람을 마주친 건 아케이드 상가뿐이었다.




아케이드 상가의 밤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목에는 나이트마켓이 한창이어서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도요오카 시민들이 다 모여있는 것만 같았다. 연극제 프린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고 푸드 트럭이 즐비했다. 운 좋게 나이트마켓이 운영되고 있어서 잠시나마 그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황새의 도시, 도요오카 (1) 도요오카에 입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