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델리 입성기
도착 다음 날 아침,
기차표를 끊기 위해 뉴델리
기차역으로 향하던 중
우연을 가장한 채 접근한
한 인도인을 만났다.
아무 의심없이
그의 과잉친절을 따라
인도정부관광청(?)이라
안내 받은 곳으로 들어섰다.
무언가에 홀린 듯
순식간에 결제까지 마쳤다.
무언가 찜찜한 마음에
숙소로 돌아와 알아 보니
가짜 정부인증서와 간판을 달고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사설여행사였다.
비행기 내리기 직전까지 읽었던
인도여행책에서, 온라인카페에서
그렇게 주의하라던 사설여행사
사기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이야.
그들은 나름 체계적이었다.
1단계
타깃이 확인되면 버선발로
마중나와 격하게 환영한다.
2단계
국적 확인 후 한국어를
띄엄띄엄 하며
친근감을 표한다.
3단계
아침은 먹었느냐 물으며
토스트와 차를 내어준다.
4단계
여행의 루트와 일정,
예산 등을 묻는다.
5단계
인도가 지금 성수기라
모든 교통편 예약이
어려울 거라 겁을 준다.
청산유수 같은 그들의 말에
그대로 넘어가 모든 교통편
예약을 맡기고,
큰 금액을 결제했다.
결국 우리나라 돈으로
대략 30만원 정도 손해를 봤다.
인도에서는 1개월 월급 정도
되는 큰 금액이다.
인도에서 호갱님이 될 줄이야.
국외여행을 얼마나 다녔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사기를
당할 수 있을까.
인도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첫날부터
큰일을 겪을 줄이야.
굳이 스스로의 변을 하자면,
유심카드를 구매하기 전이여서
인터넷으로 업체 정보를
확인하지 못했다.
아직 루피에 대한 화폐단위와
환율이 익숙치 않았다.
웃으며 다가오는 인도인을
순진하게 믿었다.
나름 여행의 고수라
여기고 살았는데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었다.
자만이었다.
그렇게 절망과 자책으로
하루를 넘겼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여행사를 찾아
최대한의 영어회화를 구사해
컴플레인을 걸었다.
불과 하루 전, 환한 웃음으로
그토록 반겨주었던 직원은
하루 새 이마에
석 삼자를 그리고 나타났다.
환불은 절대 불가하다며
목소리를 높이더니,
이 건을 대사관에 알리겠다 하니
그제야 목소리를 낮추고
협상에 들어갔다.
앞으로 갈 몇몇 도시의
호텔 바우처를 제공 받고
교통편 컨디션을 업그레이드하는
조건으로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곧바로 델리를 떠나기로 했다.
비싼 돈 주고 인도를 배웠다
생각하고 이 일은 빨리
잊기로 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했다.
앞으로 좋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진짜 인도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 푸슈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