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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Sep 25. 2024

불편한 자매입니다.

[갈수록 더할지도 모르는...]

일찍부터 외도로 딴살림을 차린 아버지.

어린 6남매와 가난한 살림을 꾸려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독해진 엄마.

그런 가정에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은 기적이겠지.

우리 오누이들은 그래서 마음이 건강하지 않다.

아픈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며 기대고 사는 건 글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아픈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며 살수 밖에 없다.


6남매 모두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며 살 때는 모든 게 수면 아래에 있어서 몰랐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가끔 험담은 해도 앞에서는 참고 살았기에 화목한 남매들인 줄 알고 그걸 자랑삼아 살았다.

6남매 중 가장 가난했던 내가 그나마 감정표현을 거르지 않고 했었는데 '쟤가 사는 게 힘들어서 저러지'라며 그냥 용납해 줬던 것 같다.

우리 모두 위장된 화평 속에 속고 살았다.


외도녀와 함께 살던 아버지의 임종 때 그 화평은 산산조각이 났고, 나는 그 일로 남매들과 2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연락도 하고, 가끔 엄마 집에 모여 놀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물 같은 그들과 섞이지 못하는 기름 같다.

형제 둘은 아니더라도 자매 넷은 서로 생일도 챙겨주고 시간이 날 때면 근교에 나들이도 함께 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다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만나도 살얼음판 위에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싸우지만 않아도 잘 지내는 거라 여기며 만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게 잘 안된다.

평소 사람을 사귈 때도 형식을 싫어하고 마음이 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가식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 거르지 않고 질러 버리는 말 습관 때문에 차가운 사람이라는 말도 듣고, 가끔은 무섭다는 소리도 들었었다.

물론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말을 안 하고 있으면 먼저 말 걸기가 어렵다는 말은 여전히 듣는다.

내가 드러내는 까칠이라면 동생은 선택형 까칠이다.


이번에 동생이 보험에 가입하고 싶다며 내가 알고 있는 보험설계사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동생 성격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별로 내키지 않았다.

동생도 자매들과는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려 조심하는 편이지만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되는 자리에서는 말을 별로 가리지 않는 편이기에 소개해주면 나에게는 득 보다 실이 많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동생에게 소개를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보험설계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연락처를 동생에게 주겠다고 하니 지인은 요즘은 보험 가입이 예전 같지 않아 어렵다면서 상대적으로 가입이 쉬운 보험사를 알려줬다.

동생에게 그 보험사에 가보라고 하고 대화를 맺었다.


우리 남매들의 성격들을 보면 모양은 다르지만 저마다 결핍으로 인한 상처들이 보인다.

공통점은 낮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각자의 성격대로 다르게 나타난다.


상처를 들여다보기 싫어하는 언니는 깊은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직업과 스펙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우리의 조언 듣기를 싫어한다.

언니와 대화를 할 때 주제는 주로 다른 사람이야기다.

대화가 재미없어서 술기운이 아니면 길게 이야기를 끌어가기 힘들다.


매사에 부정적인 말을 잘하는 동생 1은 엄마에 대한 원망이 남매들 중 최고다.

엄마가 가정을 버리지 않았기에 우리가 보육원에 가지 않고 가족으로 남아 있는 것에 대해서도 당연한 것이라 여긴다.

그런데도 경제적으로 엄마를 가장 많이 챙기는 모순적 모습을 갖고 있는 걸 보면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가 싶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아빠의 외도로 부성애의 사각지대에 있던 동생 2는 속에 있는 응어리를 잘 풀어내지 못하는 성격이다.

갈등이 생기면 참고 넘기는 회피형에 가깝다.

그 동생 또한 자신의 속내를 깊이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가장 심각한 건 동생 3이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부재중이라서 아버지를 동네 아저씨정도로 생각한다.

아버지 임종 때 외도녀로부터 아버지를 모시고 온 것에 대해 가장 반대하기도 했다.


나는 남매들의 모습을 골고루 갖고 있는 집합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를 닮은 두 애들이 나에게 객관적 조언(이라고 쓰고 돌직구 쓴소리로 해석)을 해주면서 내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엄마라 깊은 얘기를 할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던데 내가 얼마나 포악했는지는 짐작하게 한다.


사는 게 힘들어서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그런 상황이라고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는 6남매 중 내가 제일 속이 넓다고 하지만 착한척 하는건 많은 식구들 중 눈에 띄고 싶은 나의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자매들은 나의 실체를 알기에 말도 안 된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편해져야 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그 반대다.

늙으면 경험도 풍부해지고, 포기도 빨라서 어지간한 인간관계는 물 흐르듯 편해질 줄 알았는데 가치관이 정립되고 보니 말이 안 통하거나 성격이 강하면 만남을 꺼리게 된다.

아니,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아진다.

대인관계를 양으로 승부하던 젊은 때와 달리 이제는 한두 사람만 남더라도 제대로 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나도 내가 사귀기 편한 성격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렇다고 내가 잘못됐으니 내가 참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굳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친구든 형제자매든 너무 자주 만나서 속속들이 속 얘기를 나누는 것이 그다지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닌가 보다.

연중행사처럼 일 년에 너덧번 만나서 즐거운 얘기만 하는 편한 사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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