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는 100% 부모책임

by 한걸음씩

아들은 요즘 정신과와 상담소를 동시에 다니고 있다.

불안증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많이 버거운 모양이다.

이틀 전 아들과 함께 교회에 가면서 요즘 근황에 대해 물었다가 아들에게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

자신에게 있는 불안의 원인을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어릴 때 나의 부재 때문이라고 했다.


아들이 초등학생 때 나는 가정에 불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때가 남편과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때였다.

지금의 남편이 수동적 무능이라면 그때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무능을 표출했다.

생활비를 잘 주지 않는 건 물론이고,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주사를 부리며 나를 못 자게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주지 않으려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게 하고 싸웠어도 소리까지 차단할 수는 없었다.

그런 남편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로 밖에서 풀었다.

술친구도 많았고, 모임도 많았다.

돈이 없다 보니 모임에 나가기보다 주로 술을 사겠다는 사람들을 만났었다.

얻어먹기만 하는 나도 술상대로는 괜찮았는지 불러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체력이 받쳐주는 게 신기할 정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셨다.

남편의 술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나도 술로 풀었다는 아이러니는 사실 내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늦을 때면 아들이 전화를 자주 했다.

나중에는 귀찮아서 안 받은 적도 있었던 것 같고, 못 들어서 안 받은 것 같기도 하다.

희미했던 그때 일들을 아들은 또렷하게 기억해 내며 상담사에게 이야기했다고 했다.


-엄마가 전화를 안 받으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나쁜 사람들에게 납치당한 건 아닌가 하고 무서워서 울었어요.


전화를 안 받은 일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건 내 기억일 뿐이고 아들은 아니었다.

모두의 기억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겠지.

중요한 건 아들의 마음에 그것이 상처로 남았다는 거다.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아들은 어른이 되었고, 상처도 함께 자랐다.

이미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아들은 엄마가 사과할 일은 아니고 자기가 치료받아야 할 일이라고 했다.

나의 사과가 아들의 발목을 잡은 과거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에 나는 이렇게 기도 했다.

혹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죄가 있으면 생각나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싶다고.

아들의 상담 내용은 기도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고, 아들을 위한 기도의 제목이기도 하다.

부모가 자녀에게 져야 할 책임은 이렇게 끝이 없는 무한대의 집합체인가 보다.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났더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라고 생각하면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는 말은 절대 핑계가 될 수 없었다.

인생이 한편이 영화라면 그때의 필름은 싹둑 잘라내서 편집하고 싶었다.

남편 때문에 힘들다며 부르짖을 때 아이들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내 인생의 오점이고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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