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의 득과 실

by 한걸음씩

그동안 남편이 꿈에 나타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웬일인지 꿈에 보였다.

꿈에서도 남편은 바람을 피웠다.

연예인처럼 젊고 예쁜 여자가 남편의 내연녀라는 불가사의한 일이 꿈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웠다.

남편은 내연녀의 손녀를 봐준다고 토닥토닥 다독이며 TV를 보고 있었는데 (그놈에 TV는 꿈에서도 껌딱지다)

나는 바람피운 남편의 행동보다 아기를 돌봐주는 모습에 몹시 화를 냈다.

우리 아이들은 안아주지도 않고, 그렇게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할 때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면서 내연녀의 손녀를 봐주는 남편을 용납할 수 없었다.

바람피우는 것에 대해서 관대했던 건, 바람을 피우면 잘 씻고 건강관리도 하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꿈이라고 해도 현실의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씁쓸했다.

남편의 청결하지 못한 것과 자기 몸을 방치하는 것에 어지간히 질렸나 보다.


남편은 자기 몸에 대해서 관리를 정말 안 한다.

고혈압과 당뇨를 달고 살지만 잠자면서도 과자를 먹는 습관과 흡연으로 앞니가 다 빠졌는데도 치과에 가지 않는 것으로 여러 번 다투기도 했다.

내 카드로 병원비를 계산해도 좋으니 임플란트를 하든지 틀니를 하든지 하라고 하면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얼마나 산다고. 이대로 살다 죽지 뭐.


이제 고작 예순일곱 살이 할 말은 아니지.

게다가 고혈압 약은 꼬박꼬박 챙겨 먹고 혹시라도 잊은 날에는 나에게 갖다 달라고까지 하는 사람이면서.

나 들으라고 그렇게 말한거다.


남편이 다시 집으로 오게 될 때는 상태가 더 안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

발도 제대로 안 씻는 사람이니 당뇨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고, 치아가 더 빠져서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겠지.

신기하게도 나는 남편의 몸이 망가지면 차라리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고 케어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일도 못할 테고, 돈이 없어서 도박도 안 할 테니 지금처럼 남편을 미워하며 화를 내기보다 오히려 남편을 불쌍하게 볼 것 같다.

일 할 때보다 오히려 남편을 용납하고 잘 보살필지도 모른다.

이런 내 생각에 대해 상담사는 '미저리'라는 영화의 주인공 같다고 했다.

그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내가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 혹시 사이코패스일까.




남편이 집으로 다시 오려면 딸을 독립시켜야 한다.

딸과 함께 다녔던 가정상담소를 통해 딸이 남편과 나 사이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걸 알았다.

너무 미안했고, 이혼하지 못하고 남편의 계략(?)에 끌려다니는 나를 답답해하는 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남편이 나가던 날 나는 딸이 독립하기 전에는 절대 재결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딸이 비혼인 이유의 상당 부분이 남편과 나에게 있다는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불안이 일상이 되어 버린 딸은 불안할 것 같은 상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성격이 됐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에서 굳이 '결혼'이라는 불확실한 환경을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혼한 사촌 자매들의 사소한 에피소드를 들을 때마다

'내가 그래서 결혼을 안 하는 거야. 얼마나 다행이야.'

라며 어떤 이야기든 기-승-전-비혼으로 결론 짓는다.


딸에게 남자라는 존재는 '무능력한 바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남편의 무능력과 무책임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지만 그 문제를 극대화시킨 건 나였으므로 결국 딸이든 아들이든 현재의 모습 뒤에는 나와 남편이 있다.


남편 없는 요즘 우리 집은 어떤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하다.

남편이 나가고 나니 함께 살면서 느꼈던 불편함이 하나 둘 꼬리를 물고 계속 보인다.

이 시간들이 너무 좋아서 남편이 영원히 안 돌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많지만, 딸도 내가 결국 남편과 재결합할 거라고 믿고 있다.

이런 안정된 상황에서 딸이 독립을 생각할리 만무하기에 나는 임대 아파트 분양 공고를 눈여겨보고 있다.

딸은 나갈 생각을 안 하지만 나는 딸을 독립시킬 계획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만의 독립적 공간이 생기면 딸도 생각이 달라질 것일 테고, 또 그래야 남편이 들어올 수 있다.

물론 남편은 이 모든 계획에 대해 전혀 모른다.

그저 별거에 대한 불편함과 원망만 있을 것 같다.


딸은 내가 남편과 그렇게 자주 싸우지 않았다면 아빠를 지금처럼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아빠가 싫은 가장 큰 이유는 엄마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딸은 어지간하면 아빠와의 마찰을 피하면서 불편을 최소화했다.

샤워 중에도 소변 보겠다며 노크를 해대는 남편을 피해 딸은 다들 잠자리에 든 밤 열두 시가 되어야 씻으러 들어가는 식으로 자신을 맞추면 그만이었다.

식사도 남편이 먹고 나면 나중에 딸이 나와서 먹었고, 남편이 집에 있으면 자기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딸은 불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조금 신경쓰면 되는것쯤으로 여겼다.

그게 남편의 문제행동이었다는 것은 상담사를 통해 알았다.

성인이 된 딸이 샤워 중인데 노크하며 소변을 보겠다는 게 말이 되냐며 상담사는 나를 심하게 꾸짖었다.

잔소리해도 듣지 않는데 어떡하겠냐는 나에게 그런 행동을 용인한 것이 나의 우유부단이라고 단정했다.

억울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상담사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기에 할 말이 없었다.




-아빠는 나가고 없는데 쓰레기는 왜 더 많이 나오는 거지?


어제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묶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더니 딸이 깔깔대며 웃었다.

정말 그랬다.

남편과 함께 살 때는 20리터 종량제 봉투를 채우는데 2주 정도 걸렸다.

지금은 열흘도 안되는 것 같다.

이유는 단순하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딸도 나도 집에 일찍 들어오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들리는 TV소리, 거실에 깔려있는 이불과 바닥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과자봉지, 그릇들,

이불 위에서 리모컨을 손에 들고 졸고 있는 남편....

남편이 있을 때는 집안의 조명도 유난히 어둡게 느껴졌다.


저녁 운동을 나가면 딸과 나는 취침시간 직전까지 밖에 있다가 들어와서 씻고 자기 바빴다.

식탁에 앉아서 대화를 하는 것도, 간식을 먹는 것도 남편이 쓸데없는 간섭과 참견으로 분위기를 망쳐서 웬만하면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집이 천국이다.

딸과 나는 1년 내내 다이어트라는 명분으로 저녁상을 과하게 차리지 않는다.

한 가지 음식만 해서 먹어치우는 식이다.

그 한 가지 음식을 만드는 나는 요리가 즐겁다.

딸은 나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가끔 간식을 사 올 때도 있고, 함께 마실 차를 사다 놓기도 한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쓰레기가 많아진 게 사실이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내가 편안함과 자유에 익숙해져서 남편을 받아 들이는 걸 거부하게 될까 하는 것이다.

여전히 내 안에는 남편에 대한 측은지심이 남아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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