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무슨 일 생기면 가족인 나에게 가장 먼저 연락이 오겠지 하며 지냈다.
가끔씩 집으로 날아오는 차량 관련 범칙금 납부서를 보면서 '살아 있군' 했다.
유일한 생활반응이었던 범칙금 납부서가 오지 않은지 두 달째다.
며칠 전 은행에서 체크카드 발급과 관련된 우편물이 왔다.
집에 없으니 우편함에 넣고 가라고 해 놓고는 갖고 가지 않으니 미사용으로 인해 카드 등록이 안된 모양이다.
신용카드 한 장도 없는 사람이 체크카드마저 없으면 많이 불편한데...라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어 보냈다.
우편함에 그대로 넣어놨으니 찾아가라고.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이 지나도 문자 확인을 안 한다.
원래 문자나 전화를 챙기는 사람이 아니기는 했지만 가출하고 난 뒤로는 꼬박꼬박 읽었는데...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내 모습이 나도 못마땅 하지만 걱정이 내맘대로 조절되는게 아니니 나도 힘들다.
남편이 휴대폰까지 신경 안 쓸 정도로 망가져 있는 건 아닐까.
그랬다.
예전 가출때도 남편은 절대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었고, 결국 답답해서 참지 못한 내가 전화나 문자를 하면 나를 위해 마지못해 들어와 주는것 같은 모양새였다.
상담사가 나를 단호하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했던 것도 바로 나의 이런 모습때문이었다.
나는 뭐가 그렇게 걱정되는 걸까.
정말 남편의 안녕을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만에 하나 생길 수있는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둘다 해당되는 것 같다.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들이 실질적으로 드러나니 더 불안해졌다.
현관 앞에는 등기우편 미수취 스티커가 종종 붙어 있었고, 등기우편물은 모두 차량압류예고였다.
법규위반도 남편이 한 것이고, 납부의무도 남편에게 있는데 염려는 모두 내 몫이다.
남편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강건너 불보듯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성격 급한 내가 나서서 해결하다보니 남편을 안일하게 만든것 같다.
35년전 크리스마스.
나는 남편과 결혼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따뜻한 겨울이었다.
내린 눈이 녹으면서 얼어 붙어 하객들은 고생했다는데 남편은 들떠서 신부화장 하고 있는 나에게 와서 떠들다가 직원에게 쫓겨났었다.
신나는 결혼이었지만 남편은 딱 거기까지였다.
첫번째 결혼 기념일부터 남편의 무관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집에서 자란 남편은 내 생일은 물론 자신의 생일도 챙기기 싫어했다.
케익을 사고 미역국을 끓여서 정성스레 준비한 생일상 앞에서 남편의 반응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앞으로 이런거 하면 생일에 집에 안 들어 올꺼야.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될일인데 저렇게까지 정색을 할일인가 싶어 속상해서 아무 말도 안나왔었다.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서 그럴꺼라 생각하면서 한해 두해 보내다보니 기대도 없어지고 나도 기념일에 대해 무디어졌다.
남편이 자라온 환경탓을 하는게 제일 속 편했다.
남편이 환갑이 되던 해에 생일은 그냥 넘겼지만 환갑은 챙겨줘야 할 것 같아서 넌즈시 말을 꺼냈더니 담박에 거절했다.
-국민학교 동창들끼리 모여서 환갑잔치 하고 놀기로 했어.
그건 괜찮은가보지?
어쩌면 그냥 집에서 하는 모든걸 싫어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외박도 자주 하고, 밖에서 술값 계산도 잘하면서 집에서만 인색한 사람이다.
집에 돈 쓰는게 그렇게 아깝냐고 하면 대노하며 억울해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들켜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원망과 측은지심의 양가감정 사이에서 남편은 나에게 나쁜놈이면서 불쌍한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