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나간 지 5개월.
그동안 남편은 나에게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나도 자동차 검사 안내문처럼 꼭 필요한 것만 사진으로 찍어 보냈을 뿐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배송된 남편의 체크카드도 아들에게 갖다 달라고 전화 한번 하더니, 아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그대로 우편함에 보관되어 있다.
아쉬운 게 없는 모양이다.
한 달에 한두 번씩 날아오는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 통지서가 내가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남편의 생활반응이었다.
그것도 우편함 안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어제는 갑자기 남편이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연락을 했다가는 당장 짐 싸들고 들어올지도 모르니 지금까지 견딘 별거의 시간들을 낭패로 버릴 수는 없고, 우편함에 있는 과태료 통지서를 모조리 들고 들어왔다.
위반 장소와 날짜, 시간까지 나와 있으니 남편이 어디로 다니는지 대충 파악이 되었다.
최근 한 달 동안은 독촉 고지서가 대부분이고, 새로 부과된 과태료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세금을 내지 않아서 번호판이 영치라도 된 건가?
자동차 등록 원부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한두 장이면 끝날 텐데 프린터로 계속 출력물이 나와서 총 일곱 장이나 되었다.
예상대로 압류는 세금, 주정차, 속도위반등 종류별로 수십 건이나 됐고, 초반에 내가 납부하며 해제한 것들까지 하면 더 많다.
내가 이때까지는 그래도 남편에게 신경을 썼구나...
과태료를 체크하는 나의 행동에 대해 말하면 열이면 열 모두 병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나도 뭐라고 설명은 못하겠지만, 우리의 끝을 이혼이 아닌 재결합으로 목표하고 있는 터라 내가 남편을 놓지 않는 것 같다.
어차피 마지막엔 내가 다 책임져야 할 내 몫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나의 이런 태도가 바로 '공동의존증'의 증상이라고 했는데, 하루아침에 달라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한 걸 어쩌겠나.
남편은 이름만 남편이지 나에게 놓아버리고 싶은 비행 아들과 같다.
어머니에게 자식은 어떤 의미일까.
아들을 내쫓은 며느리에게 어머니는 가끔 전화하셔서 안부를 물으시는 건 변함없다.
당신의 손주들 안부 끝에 아들 안부까지.
그러나 손주들이 결혼 안 한 건 걱정하면서 집 나간 아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남편과 통화할 사람이 아닌 건 내가 더 잘 안다.
남편은 원래 본가에서 오는 전화도 잘 안 받는 사람인데, 지금처럼 잔소리 들을 상황에서는 두말이 필요 없다.
그러니 시댁 식구들이나 시어머니나 용건이 있으면 당연히 나에게 전화를 했다.
며칠 전에도 전화 와서
-아범은 아직도 그렇게 사냐?
하며 물으신 게 전부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무관심한 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런 어머니가 지금 상황에서는 편하다.
통화가 길어지면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실 테고 그 말에 긁힌 내가 안 좋은 말로 어머니 마음에 생채기를 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오히려 나에게
-네가 불쌍해서 어떡하니.
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속아서 시집오는 바람에 결혼초에 매일 울며 살았다는 말씀을 하시며 나를 보면 당신 젊을 때가 생각나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지독한 자기 연민이 쫓겨난 아들보다 쫓아낸 며느리를 더 측은하게 여기게 한 걸까.
지금은 그때와 달라도 너무 다르니 오히려 당신 아들이 더 고생일 텐데 어머니의 자기 연민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남아있다.
같이 살 때보다 더 편하다고 해도 어머니는 당신 마음 편하라고 하는 며느리의 배려인 줄 아신다.
명절이나 생신, 어버이날이면 보냈던 돈도 남편과 별거 문제가 생기면서 보내지 않았다.
마음은 편하지 않지만 남편에 대한 분풀이를 아들 이렇게 키워 보낸 어머니께라도 하고 싶었다.
사랑을 조금 더 주실 일이지...
조금 더 품어주고, 조금 더 가르치실 일이지...
요즘 엄마들은 애들 먹다 남은 걸 남편에게 주는 걸 풍자한 영상도 가끔 나오던데, 어머니는 모성애가 없어도 어쩌면 그렇게 없었을까.
닭이 한 마리밖에 없어서 애들을 재워놓고 남편에게만 백숙을 해 줬다는 걸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어머니의 만행(?)은 남편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잠결에 맛있는 냄새가 나서 깼는데 일어나지도 못하고 자는 척하면서 먹고 싶은걸 억지로 참았다고 했다.
그런 부모를 보며 남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수저만 먹이더라도 자식을 깨워 먼저 먹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는 건 시부모님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모성애도 부성애도 없는 가정에서 그래도 이만큼 자라준 것이 감사한 일이다.
아버님은 손주에 대한 사랑도 없어서 평생 용돈은커녕 설날에 세뱃돈 한번 주신적이 없는 분이었다.
그나마 어머니는 내가 드린 봉투에서 돈을 꺼내 애들에게 쥐어주곤 하셨다.
남편은 요즘도 자다가 음식 냄새가 나면 잠이 깨곤 한다.
지나친 식탐이라며 남편을 나무랐지만 남편의 굶주린 삶을 생각하면 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남편이 조금만 가족의 구성원으로 책임지는 행동을 했더라면 내가 남편의 식탐을 채워줄 수 있었을 텐데.
시아버님이 가장의 모습을 제대로 보이지 못하고, 교육을 안 시켰다 해서 남편의 무능력과 무책임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남편은 그냥 도박중독자일 뿐이고, 남편과 아버지의 자격이 애초부터 없었던 사람인 거다.
연민과 동정에 휘둘려서 판단을 흐리지 않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쓰며 남편을 객관화하는 중이다.
남편이 나간 후 하루도 남편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아침마다 남편을 위해 기도하다 보니 매일 생각하게 되고, 남편차와 같은 종류의 화물차만 봐도 남편 생각이 난다.
식당에서 만나는 공사장 인부들을 봐도 생각이 나고.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거니?
잠은 또 어디서 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