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병이 깊다.
신장이식과 갑상샘암 때문만은 아니다.
질병이 너무 오래되다 보니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성격이 아들의 성격이 돼버렸다.
그러니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안 좋은 경우가 늘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미리 낙심한다.
그걸 나무랄 수 없다.
이식하기 전에는 한 번도 몸이 가벼웠던 적이 없었고, 이식하고 살만해지니 찾아온 갑상샘암과 수술 후유증으로 생긴 부갑상선 기능 저하증까지 아들은 모든 불행의 깔때기 끝이 자기를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약을 먹지 않으면 온몸이 저리고 이로 인해 감각이 없어질 때도 많다.
그런 아들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아들은 늘 그런 말을 했다.
-나처럼 투석하고, 이식도 하고, 갑상샘암까지 걸린 사람이 있다면 나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나만 이렇게 당하는 것 같아서 외롭고 억울해.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건 나도 늘 생각했었다.
정말 견디기 힘들 때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하며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면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아들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도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더 힘든 질병을 가진 사람조차 아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지금 걷고 있는 길 위에 혼자 있다는 것이 아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난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도뿐이었다.
어제 아들에게서 톡이 왔다.
주말에 교회 수련회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주고 싶다고 했다.
글자에도 표정이 있는지 잔뜩 상기된 아들의 얼굴을 마주 하는 듯했다.
삶이 아들과 판박이로 찍어 낸 듯 너무 똑같았다는 집사님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초등학생 때 요관역류로 수술한 것과 청년 때는 투석을 하다가 아버지의 신장(아들은 엄마인 나의 신장을 받았다) 공여로 살아난 것이 똑같았다.
그뿐 아니라 연상인 여자 친구와 연애하여 결혼한 것까지 끼워 맞추려 해도 어려운 정말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분은 결혼 전 여자 친구 집에서 건강문제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3년을 기다리다가 허락을 받고 결혼했는데 아들이 아직 미혼인 것만 빼면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집사님은 이 병이 상대방 집에서는 충분히 결혼을 반대할 사유가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견딜 수 있다고 했단다.
반대의 과정에 당사자도 힘들지만 더 힘든 사람은 여자 친구이기에 아들이 중심을 잘 잡고 굳건하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에게 전해줬다.
집사님의 간증도 놀라웠다.
청년 수련회에 자기가 갈 필요도 못 느꼈고, 당일에만 잠시 다녀올 상황이라 안 가는 게 낫지 않나 하고 갈등했다고 한다.
자신이 쓸모가 없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수련회장으로 향했는데, 아들과 대화를 하고 나서 자신의 쓸모가 바로 이거였다는 확신이 드니 돌아오는 길이 너무 기뻤다고 했다.
눈물이 났다.
눈물의 색깔은 감사, 감동 뭐 그런 거 같다.
아들을 살린 그 분을 보내주신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아들이 그분에게도 쓸모를 알게 한 사람이라는 말에 감동이 몰려왔다.
아들은 자기 안에서 해석되지도 않고 풀 수도 없던 숙제가 이제 비로소 해결된 것 같다고 했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한걸음 앞서 간 그분의 이야기가 어느 누구도 주지 못할 위로를 아들에게 주었다.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라며 번호교환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감사한 건 그분이 아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다는 것이다.
가난과 질병, 그리고 행복하지 않은 가정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항상 물먹은 솜처럼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가끔씩 한숨처럼 내뱉는 아들의 탄식을 들을 때면 표현하지 못할 아픔으로 눈물을 삼키며 속으로 울었던 날은 셀 수도 없다.
집사님의 존재만으로도 아들은 위로는 물론 새 힘을 얻어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건강진단서를 갖고 오라는 여자 친구의 아버지를 만나는 일에 대해 예고편을 보고 나니 막연히 갖고 있던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나 보다..
불안은 앞을 볼 수 없을 때 생기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으면 타격은 있겠지만 타격감을 줄일 수는 있다.
-엄마가 기도해서 들어주셨나 봐.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아들 녀석은 기도를 안 했나 보네.ㅋㅋㅋ
왜 이제야...라는 말은 옳지 않다.
지금이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더 일찍 만나도, 더 늦게 만나도 오늘의 해석처럼 유쾌 상쾌 통쾌한 결과는 아니었겠지.
아들의 감동 스토리를 더 듣고 싶지만, 설날에 만나기로 했으므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독립한 아들의 1순위는 내가 아니라 여자 친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