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의 사각지대

딸아... 미안해....

by 한걸음씩

출산을 하고 인큐베이터에 아기를 두고 나온 산모 마음이다.

무균실에 아들을 두고 퇴원했다.


수술했던 왼쪽 옆구리 통증으로 잠을 잘 때 돌아눕지 못하니 불편한 것을 빼면 비교적 편안했다.

연차를 내고 병간호를 했던 딸이 입의 혀처럼 나에게 밀착 케어를 해 주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먹을 간식을 사다 나르며 중환자 떠 받들듯 했다.

여전히 집안 일거리들이 눈에 들어와서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회복하는 동안에는 눈을 감기로 하자.

내가 움직이면 딸이 병간호하는 보람도 없을 것 같았다.


"딸내미~ 엄마 산책 갈 건데 같이 갈래?"


움직일 수 있는데 집에만 갇혀 있는 게 답답해서 딸에게 산책이라도 하자고 했다.

신도시라 산책할 수 있는 편한 길이 많은 게 참 좋다.

좀 쌀쌀한 날씨라 옷을 여러 개 껴입고 나서자 딸도 후다닥 패딩점퍼를 걸치고 따라나섰다.

가끔씩 가는 카페거리를 따라 도란도란 딸과 대화하며 걷는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했다.

디저트가 맛있다며 가끔 들렀던 카페가 보인다.

평소에도 사람이 별로 없는 게 마음에 들어서 갔던 곳인데 그날도 역시 한산하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무래도 수술 후라 나는 커피 대신 허브차를 주문했고 딸은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했다.


"간호하느라 힘들었지? 너 덕분에 난 정말 좋았어. 어쩜 그렇게 간호를 잘하니?"


딸은 내 말에 기분 좋은 듯 웃으면서 이야기를 조잘조잘 이어갔다.


"힘든 건 별로 없었어. 난 1년도 할 것 같던데?

그런데 화장하지 않고 있는 게 오히려 힘들더라고.

그래서 집에 가서 씻고 다음날 온다고 했더니 큰 이모가 뭐라 했잖아.

나 그때 이모 너무 미웠어."


의외였다.

그런 마음이 들었었구나...

그런데 갑자기 딸의 눈이 빨개지더니 이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머 왜 울어?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딸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힘든 내색을 한 적도 없었고, 항상 웃으면서 잘 견디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엄마. 난 엄마 간호하는 건 정말 하나도 안 힘들어.

근데 엄마가 아픈 게 너무 싫고 억울했어.

엄마가 왜 아파야 되는데?

왜 말짱했던 엄마가 00 이한테 신장을 주고 아파야 하는데?

난 그게 너무 서운하고 화가 나"


투석을 하면서 힘들어했던 동생 모습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딸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한 달 동안 이식을 위해 검사다 뭐다 병원엘 왔다 갔다 할 때도 아무 말이 없던 딸이다.


"아니... 그게.... 갑자기 한 것도 아니고 너도 알고 있었잖아...."


"알아. 나도 알고는 있었지.

근데 엄마가 나한테 동의를 얻은 건 아니잖아.

가족 동의가 필요하다면서?

왜 나한테는 안 물어봐?

내 동의는 없어도 되는 거야?

나는 가족 아니야?

왜 맨날 엄마는 00이 엄마만 하는 건데!

왜 내 엄마는 아닌 건데?"


아......

정말 내 수술과정에 딸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딸에 대한 배려는 하나도 없었다.

연차를 내서 방간호를 해줄 수 있는지 묻는 게 전부였다.

머리를 크게 얻어맞았다.

멍하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도 눈물만 주르륵 흘리며 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엄마는 어릴 때도 00 이가 아프다고 맨날 나한테 챙기라고 했잖아.

나도 걔보다 한 살밖에 안 많은데 밥도 챙겨주라고 하고.

엄마는 내가 무슨 음식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매일 00이 좋아하는 것만 만드니까"


자라면서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았던 감정이다.

동생을 놓고 엄마의 편벽된 사랑에 대해 서운하다 말하는 것...

저런 말들이 갑자기 떠오른 건 아닐 테지.

살면서 계속 느꼈을 텐데 어떻게 담고 살았을까.

문제가 있는 자식이 하나 있으면 나머지 자식은 애정과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걸 간과했다.


사실 아들이 신장이 안 좋기는 했어도 놀거나 생활하는데 제약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니 딸의 입장에서는 말짱한 동생이 그걸 이용해서 누나를 편하게 부려 먹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많이 억울했겠네.


"그렇구나...

엄마가 정말 미안해.

정말 몰랐네.

어떻게 너한테 해야 너의 그 서운한 마음이 풀릴까.

정말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뭘 해달라고 하면 그게 뭐든 해주고 싶었다.

평소에 미워하던 동생에게 엄마를 뺏긴 것도 속상한데 엄마는 그 동생에게 신장까지 주었다.

아픈 몸이 되어서 그 병시중은 자기가 하고 있으니 이렇게 분하고 억울할 데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 당시만 해도 딸과 아들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원수지간이 따로 없었으니까.


"엄마가 사과해서 이제 괜찮아졌어"


진짜 할 말 없게 만드는 딸이다.

사과를 받으니 마음이 풀렸다고 한다.

정말.... 풀렸니....


그날.

그 자리.

그 분위기.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처음으로 딸의 얼굴을 제대로 본 날이고 딸의 마음을 제대로 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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