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때 까지인가
이식수술을 한지 만 4년이 지났다.
공여를 한 나는 일 년에 한 번씩 혈액과 소변검사로 남은 신장의 기능에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아들은 두어 달마다 검사를 하고 면역억제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약을 처방받는다.
시간을 맞춰서 공복과 식후에 챙겨야 할 약이 한 보따리지만 투석을 했던 때를 생각하면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챙겨야 하는 갑상선과 고지혈증 약만으로도 귀찮아하는데 아들을 생각하면 불만이 쏙 들어간다.
이식 후에 아들의 식욕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으로 늘었다.
투석당시 50kg이 채 안되었는데 현재는 70kg이 넘으니 걱정이 된다.
병원에 갈 때마다 '혹시나'하는 불안감이 있지만 별 이야기가 없으면 또 방심을 한다.
주치의가 체중에 대한 경고를 좀 했으면 좋으련만...
아들은 오히려 뚱뚱해진 지금의 몸을 마음에 들어 한다.
몸이 왜소할 땐 주변에서 너무 함부로 대해서 기분이 상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저씨 비주얼이 된 지금은 무조건 존대를 한다며 이제 비로소 나이대접을 받는 기분이란다.
육체적 질병도 힘든데 여러 가지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는 걸 늘 뒤늦게 알게 된다.
처음 이식 수술을 하고 나서는 자기의 생체리듬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자주 했고,
성격까지 바뀐 것 같아 적응이 안 된다고 했다.
극외향형의 아들은 어디서든 말을 잘하고 유머 감각이 풍부했다.
왜소한 몸에 비해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것 같아서 이유를 묻기도 했다.
"널 어딜 보고 만나는 거야? 키도, 얼굴도, 돈도 다 아닌 거 같은데?ㅋㅋㅋㅋ"
지금 생각하면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말 때문인 것 같다.
그러던 아들이 수술 후에는 카페에 가서 주문도 못할 정도로 대인기피가 심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증상들이 많이 좋아졌다.
가끔씩 잠자다가 갑자기 더워져서 잠이 깰때가 있단다.
갱년기 여성의 장기를 받아서 그런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떠는데 그것도 전혀 근거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아들이 나의 성격과 식성을 많이 닮아 가는걸 자주 느낀다.
몸이 기억한다는 말의 그 '몸'에는 장기도 포함이 되나 보다.
아들은 취직도 했다.
중소기업이기는 하지만 규모가 작지 않고, 복지제도도 나쁘지 않다.
아들의 전공은 광고분야인데 현재 하는 일은 프로그램 개발 분야다.
이식 수술 후 장애인 공단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개발 관련 교육을 국비로 6개월 정도 받았다.
당시 강의를 하던 교수의 추천으로 지금의 직장에 들어가게 됐다.
요즘은 기업이 장애우를 고용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데 그게 작지 않은 금액이다.
아들도 이식환자라 경증장애우에 해당되므로 기업에서는 메리트 있는 선택일 것이다.
건강관리 잘 해서 이제는 평범한 삶을 살기만 바란 아들에게 또 한번 위기가 왔다.
회사에서 진행한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부분의 이상소견이었다.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해 보라는 처방을 받았다.
"엄마. 나 너무 불안한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려는 현실이 되어 암진단을 받았다.
이식한 신장때문에 조영제 투약을 못하니 CT 촬영도 할 수 없다.
전이상태를 전혀 진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그대로 열어봐야 아는 상황이다.
왜...또...아들인가.
왜.....
아들에게 폭풍이 휘몰아쳤다.
이식까지는 이미 예상 했던 일이라 충격이 견딜만 했다.
그러나 암은 달랐다.
의료파업이 한창이던 그때 대학병원은 진료예약조차 어려웠다.
다행스럽게 주변에 이미 수술한 사람들이 있어서 암전문 병원을 소개받았다.
진료 2주후 수술이 잡혔고 노심초사 걱정했던 전이는 없었다.
지금은 회복이 되고 있지만 예상치 않은 후유증들이 자꾸 나타난다.
평생 기도하며 살아야 하나보다.
하루는 기분이 좋고 컨디션이 날아갈 거 같다고 해서 조증 아니냐고 할정도라면
다음날은 침잠이다.
심각하게...
며칠전 아들을 만나 차를 마셨다.
최근 두달간 생활비를 천만원을 썼다고 했다.
많이 놀랐고 걱정도 되어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나이도 있는데.... 돈을 좀 모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알아서 할께"
잔소리의 전부다.
아들은 지금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눈을 뜨면 새로 나타나는 부작용 증세도 아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누르고 있다.
그 터널을 지나는 동안 아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천만원을 쓰든 일억원을 쓰든 빚지지 않은 것이 고맙다.
견디는 것이 고맙다.
그 어떤 것도 생명보다 소중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