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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Jun 26. 2024

이런걸 해피엔딩이라고 하는거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누가 병문안을 오는 것이 귀찮게 느껴진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몰골을 보여주는 것도 싫고, 편하게 누워 잠만 자고 싶은데 손님을 맞이하는 것 같은 부담감을 갖고 싶지 않다.


이식수술을 했다는 말을 회사와 가족 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가족에게도 병문안이 불가하다며 오지 말라고 했다.

오지 말라고 한 이유에는 딸이 불편해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집 앞에만 나가도 화장을 하고 나가는 딸이기에 초췌한 모습으로 있는 것이 조금 힘들었나 보다.


"병간호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는데, 샤워 못하고 화장 못하는 게 너무 힘들어.

출퇴근하면서 간호해 준다면 1년도 할거 같아."


그 마음이 전달된 것일까?

수술을 집도한 주치의는 예정된 퇴원일보다 이틀 먼저 퇴원 허락을 해줬다.


"컨디션 어떠세요?

회복 결과가 생각보다 빠르네요.

오늘 퇴원 수속 하셔도 되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 급하잖아요.ㅋㅋㅋ

하지만 나는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으므로 회진이 끝나자마자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퇴원이라는 말에 없던 힘까지 생기는 것 같았다.

혹시나 병문안을 올지 모르니 가족들에게 퇴원 사실을 알려줬다.

그리고 sns에도 나의 수술과 퇴원 이야기를 올렸다.

입원기간 동안 미리 작성을 해 두었다가 퇴원일에 맞춰서 글을 올렸는데 그때부터 난리가 났다.

왜 미리 말을 하지 않았느냐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병문안의 수고와 나의 육체적 쉼을 위해 알리지 않았노라고 부지런히 변명을 했다.

그랬더니 생각지도 못하게 카카오페이와 통장으로 위로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받기에는 부담스러운 큰 금액들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사랑을 받을만한 사람이었던가?

눈물이 핑 돌았다.

돈을 좋아하는 나는 돈을 받으면 감동을 크게 받는다.

오죽하면 딸도 엄마 다루기는 누워서 떡먹기라며 돈만 있으면 된다고 할 정도다.


1,500만 원가량의 수술비는 남편이 감당했다.

책임감도 없고 무능한 남편이라고 무시했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의 몫을 제대로 해 냈다.

이식 전부터 나는 의례히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남편이 너무 무심한 것 같아서 


"당신도 검사해 봐. 

내가 안되면 당신 신장 이식해 줘야지."


라고 말을 했을 때 남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던 걸 기억한다.


"나는 고혈압도 있고, 술도 많이 먹어서..."


라고 말끝을 흐렸지만 나는 남편이 겁을 먹은 걸 알고 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남편은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둘째를 낳고 단산할 때도 남편은 이런저런 이유를 둘러대며 불임수술을 내가 하도록 유도했다.

어차피 내가 제왕절개 수술을 했으므로 하려고 했지만 남편이 그렇게 말을 하니 한편으로는 얄밉기도 했다.

그러니 신장을 하나 떼어낸다는 것이 남편에게는 사형선고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자동차를 사기 위해 모았던 돈을 고민하지 않고 병원비로 내놓은 것도 신장을 주는 것보다 훨씬 쉬웠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나는 오히려 신장을 주는 편이 쉬웠다.

수술비를 마련하라고 했다면 걱정이 많았을 것 같다.

신장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신장암으로 떼어 낸 지인도 있는데 나는 건강한 신장을 갖고 있어서 자식까지 살릴 수 있으니 이거야 말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내가 이식에 대해 갖는 부담감보다 주변에서 인정해 주는 부분이 훨씬 컸기 때문에 대단한 인정을 받는 것 같았다.


아들이 면역억제제를 투여하기 때문에 건강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식을 하고 건강하게 잘 사는 사람들도 많고 아들 또한 수술 예후가 좋으니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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