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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Jun 19. 2024

좋은 간병인을 만난다는 것

신장을 공여한 나는 비교적 방문객의 출입에 대해 딱히 제한이 있지는 않았으나 이식을 받은 아들은 거의 멸균에 가까운 독방에서 혼자 지냈다.

면역억제제를 투여하다 보니 감염에 취약한 상태라서 씻는 물조차 수돗물이 아닌 증류수를 사용했다.

간병인도 일단 들어오면 출입이 금지되어 온종일 아들과 방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병원에 붙어 있는 간병인 파견 업체에 연락해서 미리 간병인을 구해 두었기에 수술시간에 맞춰 간병인이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아들을 돌보기로 했다.


출산의 고통 어쩌고 하면서 수술통증에 대해 잔뜩 겁을 줬지만 진통제 덕분인지 그렇게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메스꺼움이 상상을 초월해서 계속 구역질이 날 때마다 배에 힘이 들어가서 수술 부위가 땅기는 느낌이 들었다.

수술 전 금식이라 아무것도 먹은 게 없는데 구역질을 하려니 더 괴로웠다.

간호사선생님에게 고통을 호소했더니 구역질을 가라앉게 해주는 약이라며 링거를 꽂은 줄에 놓아주었다.

주사를 맞을 때마다 혈관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주사액 느낌이 묘하게 짜릿함을 느끼게 했다.

마취주사를 맞을 때처럼 나를 편안하게 해 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 때문일까.


정신이 좀 들 즈음 아들에게서 영상통화가 왔다.

표정이 밝고 힘이 있어서 수술을 한 환자가 맞나 싶었다.

그런데 내 얼굴을 본 아들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이냐 물으니 엄마 얼굴을 보니 그냥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나서 때아닌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연출하고야 말았다.

아들의 컨디션을 물으니 몸이 너무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엄마, 사람 몸이 원래 이렇게 가벼운 거였어?"


투석을 하는 동안 얼마나 몸이 무거웠으면 그런 말을 할까 싶은 게 안쓰러운 마음에 또 눈물이 났다.

아들은 정말 예후가 좋은 편이다.

보통 이식 수술을 하고 난 당일에는 누워있거나 어지러워서 휠체어로 움직인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은 몸이 너무 가벼워서 혼자 걸어서 왔다 갔다 하니 간호사선생님도 놀랐다고 한다.

젊음이란....



아침 일찍 수술하고, 점심때를 지나 해가 산으로 급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창으로 보며 오랜만에 마음이 여유롭고 편하다고 느껴졌다.

그때 아들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딸에게 대신 좀 받으라고 했더니 자기 병실로 급히 좀 와달라고 한다며 딸이 다녀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야 특별히 뭘 할 게 없으니 어서 가보라고 했다.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급한 일인 것 같아서 묻지도 못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랬대?"


마음이 급하니 전화를 건 딸에게 나도 모르게 따지듯이 물었다.

내용은 그랬다.

아들에게 가보니 나와 다르게 아들은 수액을 여러 개 주렁주렁 달고 있더란다.

들어가는 양이 많다 보니 당연히 소변양도 많았을 테고 간병인이 소변통을 비우기가 무섭게 계속 소변통에 소변이 차오르니까 아들에게 짜증을 냈다.

그러면 소변통을 하나 더 달라고 하든지 하면 될 것을 그게 아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환자에게 짜증을 내면 어쩌라고...

그러면서 자기 못하겠다며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소변통은 차서 소변이 바닥으로 넘쳐흐르고 당황한 아들이 울면서 누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수술 후 아무리 몸이 가볍다고 해도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을 만들다니...

몸만 조금 움직일 수 있다면 내가 가서 간병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마취약 때문인지 목도 칼칼해서 말소리도 잘 안 나오고, 딸은 아들에게 가 있으니 할 수 없이 간병인 파견업소에도 내가 통화를 해야 했다.

애초에 내가 간병인 파견업체와 통화를 했으므로 딸에게 설명하느니 그 에너지로 내가 하고 말지 싶어서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간병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화기로 들리는 억센 조선족의 사투리를 들으니 아들에게 짜증을 냈을 모습이 상상이 됐다.


"내가 간병하면서 이렇게 소변통이 자주 차는 사람 처음 봤어요.

나는 못하겠으니까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그리고 내가 여기 도착한 시간부터 지금까지 계산해서 통장으로 보내주세요"


내가 말짱한 몸이었더라면 그렇게 쉽게 송금하진 않았을 것이다.

딸이 나에게 "엄만 항상 세상에 컴플레인할 자세로 사는 사람 같다."라고 할 만큼 따지기를 잘하는 나였으므로.

그러나 나도 제정신이 아닌 데다가 아들의 상황을 듣고 나니 


"이만큼 주시면 안 돼요. 다른 데보다 더 힘들었으니 조금 더 줘야 해요."


라는 말에 냉큼 웃돈을 송금해주고 말았다.

내 옆에 누가 있기만 했더라도 그 간병인이 요구하는 대로 송금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그녀가 요구하는 대로 송금을 해 줬다.

그러고 나서 파견업체에 연락을 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일단 송금을 하지 말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아니라며 간병인과 직접 통화할 테니 아직 송금하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이미 송금을 해버렸으니 후회가 됐다.

내가 이렇게 판단이 흐려지다니...


다행히 파견업체에서 다른 간병인을 보내 주었고, 이분 또한 조선족이었으나 아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돌봐 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아들은 스스로 일어나 일상 활동을 했으므로 간병인이 딱히 뭘 해줘야 할 건 없었다.

달고 있던 링거도 많이 제거되어 소변양도 줄었고, 씻는 것도 아들이 혼자 했으므로 식판을 옮기는 일 정도만 해주면 되었다.


나중에 간병인 후기를 신장병환우카페에 올렸더니 소개를 해 달라고 하는 회원이 좀 있었다.

아파서 연약해진 사람이 간병인의 횡포까지 견디려면 얼마나 힘들까.

그러니 이런 간병인 이야기를 들으면 나라도 연락을 하고 싶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간병인은 인기가 많았던지 다음 스케줄이 이미 예약되어 있어서 못한다고 했다.

집이 있어도 가지 못하고 숙박을 하며 일을 하는 간병인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이전 09화 나는 하나. 아들은 세개의 신장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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