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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 아들은
세 개의
신장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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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씩
Jun 12. 2024
이식을 받을 아들은 나보다 며칠 먼저 입원했다.
나는 수술 바로 전날 저녁 입원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네일아트를 제거하지 않고 그냥 갔다가 애를 먹었다.
"이거 다 떼어내셔야 해요."
보통의 대학병원처럼 이곳도 외진 곳에 있다 보니 부근에 네일 숍 찾기가 쉽지 않다.
결국 손으로 일일이 떼어 내야 했다.
간호사선생님들이 달라붙어서 손가락 하나씩 맡아서 제거했는데 아프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막상 수술실에서는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요"
라며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는 집게를 꽂는 곳만 지워도 된다고 했다.
어쨌든 네일아트를 지우고 와야 하는 기본적인 상식을 망각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내 수술이 첫 수술이었나 보다.
오전 7시에 수술을 시작한다고 하니 나는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거의 새다시피 했다.
아침 일찍 나를 데리러 온 직원은 이동침대로 나를 옮겨서 눕혔다.
그냥 이동하라고 말을 해도 될 텐데 말짱한 몸을 맡기려니 민망했지만 이때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나름대로 뭔가 매뉴얼이 있어서 그럴 테니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수술실로 가기 위해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가면서 처음으로 병원 천정 생김새를 찬찬히 봤다.
기분이 묘했다.
수술 시 아플 거라는 말을 사회복지사에게도 듣고, 환우카페에서도 봤던 터라 좀 겁이 났다.
나는 죽는 것보다 아픈 게 더 무서운 겁쟁이다.
"많이 아플까요?"
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아이 낳는 것만큼 아프다고 했던 수술집도의 말이 계속 떠올라서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수술실의 모습은 내 상상과 달랐다.
아들과 나란히 누워서 내 신장을 바로 옆의 침대에 있는 아들에게 얼른 가져다 이식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정말 순진한 생각이다.
아들은 다른 수술실에 있다.
11월이라 날씨가 쌀쌀하긴 했지만 수술실은 12월이나 1월은 되는 것처럼 많이 추웠다.
이동하면서 떨리기 시작한 몸은 수술대 위에서 조명등을 보며 기다리는 동안 턱이 딱딱 부딪히는 소리까지 내며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나를 본 간호사가 어디선가 담요를 가져다가 덮어 줬다.
수술실과 어울리지 않는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많이 춥죠? 조금만 참으시면 금방 잠드실 거예요."
몇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느껴졌고, 마취약이 들어간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점점 정신을 잃고 깊은 잠에 빠졌다.
나는 이 기분을 좋아한다.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
그러나 너무 아쉽게도 잠이 들자마자 바로 누군가가 나를 깨웠다.
"정신이 좀 드세요? 000님 숨 쉬어 보세요. 숨 쉬셔야 돼요."
저만치 멀리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르며 숨을 쉬라는 말이 아득하게 들렸다.
마치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나가듯 나한테 말을 무심하게 던지는 것 같았다.
자면 안 된다며 일어나 숨을 쉬라고 했지만 너무너무 잠이 쏟아졌다.
눈이 안 떠졌다.
이런 꿀잠을 자본 지 너무 오래된 것 같다.
숨을 쉬라는 소리는 점점 가깝게 들렸다.
근데, 숨을 쉬라니?
내가 숨을 안 쉬고 있나?
가만,,, 숨을 어떻게 쉬는 거였지?
가만히 있어도 숨이 안 막히는 것도 신기했다.
숨을 쉬려고 하니 그것도 에너지가 필요함을 느꼈다.
숨 쉬는 것도 이렇게 힘들 때가 있구나.
그러고 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시 이동형 침대로 옮겨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침에 왔던 복도를 다시 지났다.
정신이 들기 시작하니 어지럽고 속이 심하게 메스꺼웠다.
입원실에 도착하니 건장한 젊은 청년 둘이 나를 시트째로 들어 입원실 침대에 옮겨줬다.
통증은 아직 느껴지지 않았다.
입원실에서 날 기다리는 딸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마음도 안정이 되는 것 같고.
조금 후에 담당 간호사선생님이 와서 몇 가지 도구를 주고 갔다.
압박스타킹과 심호흡 기구, 소변통등을 주며 딸에게 사용법을 설명했다.
평소에는 아기처럼 뭐든 나한테 묻던 딸이 의젓하게 설명을 듣는 걸 보니 처음으로 든든함을 느꼈다.
조금 후에 수술을 집도한 외과 의사기 회진을 왔다.
"수술은 아주 잘 됐습니다.
어머니 신장이 건강해서 결과가 좋을 거예요.
앞으로 깨끗한 물 자주 드시고 이제 회복만 하시면 됩니다."
이 날을 위해 하나님은 열 달 전부터 술을 끊게 하셨다.
신장을 최적의 상태로 만드시기 위함이었다.
내 신장이 건강해서 수술이 잘 되었다니 이보다 기쁜 소식이 또 있을까.
이제 아들에게 할 도리를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타고난 간병 달란트가 있는 아이다.
내 표정 하나만 보고 말을 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알아서 척척 갖다 주었다.
"목말라? 입 좀 축일래?"
물을 먹지 말라고 하니 더 갈증이 났다.
입에 물을 머금고 있다가 뱉어내기를 수도 없이 하면서 실수인 척 약간씩 삼키기도 했다.
뱉어낸 물은 내가 봐도 역겨운데 딸은 어쩌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는지 대견했다.
소변통도 수시로 살피며 소변량을 체크해서 메모하고, 이따금 농담까지 던지며 기분까지 케어해 줬다.
'내가 죽고 나서 딸이 아플 때는 누가 케어해 주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 중 1순위는 아마도 자식일 것이다.
결혼적령기가 되어도 연애할 생각을 안 하고 있으니....
직장을 다니며 가끔씩 입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는 밥 먹고, 주는 옷 입고...
그렇게 누워서 좀 쉬고 싶었다.
이제 그걸 마음껏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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